과거의 기록: 10대의 사유일기 - 9

냉정함을 잃었을 때 상기하라. 무너져 내린 처절한 네 모습을

by 이상우


사람은 인식이 확장, 성장함에 따라 흔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오늘은 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가끔 내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볼 때가 있다. 나는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진 꽤나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많이 소심하지도 않았고, 그 누구와도 잘 지냈던 것 같다. 내가 이럴 수 있었던 이유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 세상을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은 어린아이의 순수함 때문이지 않았나 싶다. 순수함. 그렇다. 그저 내 내면은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도화지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시련은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되었다.

내 내면은 새 도화지와 같았기에 도화지를 채워가는 색깔들이 마냥 신기하게만 느껴졌고, 그와 동시에 약간의 경외감마저 들었다. 그저 흰 도화지였던 것에 새로운 색깔이 더해져 가는 것. 그것은 어린 나에게 있어서 충격 그 자체였다. 어떨 땐 고통이라는 색깔이, 재미라는 색깔이, 후회라는 색깔이 나라는 존재를 채워가면서 점점 나에게 있는 순수함은 그 빛을 잃어가게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 얼굴에 약간의 그늘이 드리워진 게 말이다. 순수함이란 어쩌면 양날의 검일지도 모른다. 세상 만물을 그저 있는 그대로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근사한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내 의지를 꺾이게 만드는 요소들까지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나에겐 친구가 있었기에,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문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찾아왔다. 크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현실을 뒤로할 만큼 매력적인 것에 매료됐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애니메이션이었다. 사실 애니는 옛날부터 봐왔었고, 꽤나 내가 좋아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뒤로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소드 아트 온라인’이라는 애니는 조금 달랐다. 데스게임이라는 소재, 그 속에서의 플레이어들의 내면의 변화, 그리고 사랑.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면서 내 내면을 두 방망이질했다.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마음이 쓰리면서도 그곳에서 달콤함이 흘러나왔고, 안쓰럽게도 나는 그것을 이겨낼 수 없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비현실이 현실을 짓뭉개버렸다. 비현실의 것을 좋아하고, 원하게 될수록 현실의 것은 하찮고 필요 없는 것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나와 타인 사이에도 알 수 없는 벽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은 현실과 비현실을 이루는 일종의 경계선이었다. 비현실 속에 있는 나와, 현실 속에 있는 타인. 그렇기에 두려워지는 것이었다. 내가 비현실 속이 아닌 현실 속에 있을 땐 느낄 수 없었던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같은 현실 속에 있을 때 느껴졌던 동질감이 어느새 나와는 다른 존재, 미지의 것을 마주했을 때의 두려움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마주해야 할 때 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때부터 나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찾아왔다.


코로나는 나와 타인의 벽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행동했기에 각각의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는 지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또한 학교수업이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두려움은 끝없이 증폭되었다. 이런 상황에 있어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기엔 행동할 용기가 없었고, 행동한다고 해도 과연 내가 구원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기준에선) 나는 비현실의 공간에 있었고, 타인은 현실의 공간에 있었기에. 그렇기에 나는 비현실에 더욱 마음이 갔다. 그저 쾌락을 추구했고, 육체에 내 영혼을 맡겼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고등학교 3학년 첫 등교일이 찾아왔다. 나는 도저히 반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두려웠다. 너무나도 두려웠다. 이젠 버티는 것도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이 이후로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꽤나 소란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다행히 학교의 배려로 등교만 하고 집에 가도 된다는 입장에 서게 되었고(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나는 나를 마주하는 시간, 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처음부터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똑같이 쾌락을 추구하고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는 절망적인 순환의 연속. 그렇지만 전보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똑같은 생활 속에서도 새로운 게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시간’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자면 내가 타인과 벽을 형성하고, 육체적 본능에 휩쓸렸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기간. 약 4년이었다. 4년 이상의 시간을 나는 육체적 본능에 휩쓸려 보낸 것이다. 이때야 비로소 인지할 수 있었다. 무너져 내린 처절한 내 모습을. 그렇기에 이젠 더 이상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이 이후로 나는 매일 적어도 2시간 이상 책을 읽는다. 그리고 육체적 본능에 지배될 것 같을 땐 이 말을 되새긴다.


‘냉정함을 잃었을 때 상기하라. 무너져 내린 처절한 네 모습을.’ 그리하면 놀랍게도 알 수 없는 힘이 생기는 것만 같다.

물론 이러한 다짐이 이미 두려움에 잠식된, 상처받은 나를 완전하게 바꿀 수 없다는 건 사실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조금씩 나의 내면을 회복시키고 용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까지, 사이의 벽을 허물고 다시 그들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내가 영원히 나 자신을, 내 운명을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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