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록: 10대의 사유일기 - 13

자기규정에 대해

by 이상우

나는 예전부터 나에 관한 글을 써왔다. 그도 그럴게, 난 쓰고 싶었다. 내 생각을 글로 나타내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 쓰려는 글도 그런 연유에 기인한 글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제각기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격, 뿐만 아니라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이런 것들은 ‘나’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 지 확실하게 나타낼 순 없다. 다소 선천적인 우리의 의지가 결여된 요소에 근거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난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실현시키는 행위만이 ‘나’라는 존재를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무의식과 본능과 같은 요소들이 온전한 우리들의 자유를 탈취해가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의 의지가 완전 결여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외의 것은 나를 (확실히) 나타내진 않는 것이다. 물론 타인에겐 다소 다르게 보일 수 있다. 그들에겐 우리의 존재가 그저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그 자체로서 우리의 존재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즉,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는 근본적으로 너무나도 다른 것이다. 내 자신은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행하는 나 자신을 보며 실시간으로 내 존재를 해석하고, 만들어나가지만 타인은 내 행위에서 도출된 - 또는 선천적인 결과값 - 결과를 통해 나를 규정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타인은 우리의 껍데기만을 보고 우리를 판단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신에 대한 타인의 의견, 생각, 시선에 그렇게 연연하고 고통받는 걸까? (여러 가지 관점이 있겠지만 여기선 많은 관점을 제한하겠다)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나 스스로가 자신을 규정하고 있지 못하거나, 그 수준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자기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면 남들에게 휘둘리고 끌려다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도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이 보는 나는 그저 내 껍데기 부분일 뿐이고 그렇기에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왜냐고? ‘나’에 대한 믿음, 확신이 없으니까. 무언가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생기기 위해선 그만한 ‘스토리’가 전제돼야 한다. 단순히 놀고, 먹고, 싸는 게으른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의지를 갖고, 그 의지가 향하는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 나가는 그런 스토리가 말이다. 이러한 스토리는 백지였던 ‘나’라는 존재에 색을 칠하고, 계발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나의 존재를 스스로 규정해 나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나 자신을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은 남들의 시선과 말에 주눅 들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과 말이 본질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스스로 규정해 나가는 사람의 삶은 풍부하다. 나 자신을 규정해 나가기 위해선 많은 경험을 하고 그 경험치를 성찰이란 형태로 흡수해야 한다. 즉, 자기 자신을 계발해 나가는 것이다. 나 자신을 계속해서 계발해 나가는 삶이 어찌 풍요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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