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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onto Jay Dec 13. 2022

1979년 여름 청주여고 버스종점.

 이제는 내려야 한답니다.

"꼬마야 내려. 버스종점 왔어 빨리"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솜사탕 입에 문 달콤한 꿈을

창가에 기대어 잠시 꾸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질척한 침들이 입가를 타고 내려와 거의 목덜미까지 내려온 걸 보면.


이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몽롱함이 피곤함과 살짝 버무려져 옵니다.

 

롯데껌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훅하고 풍겨오는  버스안내양 누나의 입에서 익숙한

쥬시후레시 롯데껌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기껏해야 스무 살 남짓이었을 버스안내양 누나는

빨리 내리지 않고 잠들어 있는 9살 꼬맹이 하나가 무척이나 거슬렸나 봅니다.

공연히 큰소리로 내가 앉은 맨 뒷자리 창을 힘껏 두두리며 소리칩니다.

빨리 내리라는 듯 "오라이~ 오라이~"를 연신 갈라진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혼자 잠이 덜 깨 휘청거리듯 그렇게 어딘지 모를 흙바람 날리는 그곳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눈앞 대충 지어진 가건물.

무서워 보이는 기사 아저씨 서너 명만이 담배를 물고 그 앞에 서성입니다.


큰일 났습니다.

작은 간판 하나 보고야 말았습니다.


버. 스. 종. 점. 휴. 게. 소


당시 국민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맞벌이 부모님이 오시기 전까지 동네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번호의 버스가 계속 돌고 돈다는 엄청난 비밀을 발견합니다.

청주여고. 충북도청. 그리고 다시 청주여고. 분명 버스 앞 표지판에는 그렇게 쓰여있었습니다.


"타자!" 다시 여기로 돌아온다.  이 버스는 돌고 돈다.

주머니 속 동전은 단 한 번의 "타는 것"을 허용할 뿐이었지만

다시 돌아온다는 저 확실한 글자의 약속이 믿음직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정글 속 밀림으로 들어가듯 다 큰 형아처럼 의기양양하게 오른 버스였습니다.


몰랐습니다.

"종. 점"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다시 타려면 그만큼의 동전이 또 필요하다는 걸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황. 황당. 낭패.


그때의 아홉 살 어리숙한 꼬마 아이가 느낀 기분을 표현하는 저런 멋진 단어들이 있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흐른 뒤였습니다.


다리에 힘이 빠지며 후덜 거리기 시작했고 약간의 메스꺼움은 어지러움을 동반했고

애써 괜찮으려 힘주었던 작고 여린 주먹 안에는 때 구정물 삐질거리며 새어 나오도록

진땀이 뚝뚝 흘러나옵니다.


버스종점 기사 아저씨들은 피던 담배를 마치 내 가슴 짓이기듯

양발로 사정없이 비비며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하고 있었고.

쥬시후레시 롯데 껌을 짝짝 씹던 버스안내양 누나는 커다란 풍선을 입 밖으로 만들더니

"" 하는 소리와 함께 단물 빠져 맛없다는 표정으로 야멸차게 뱉어버립니다.


그래서 물어볼 수도 도움을 청할 엄두도 내보지 못합니다.

아저씨 피던 담배꽁초 될까 봐.

안내양 누나 씹던 단물 빠진 껌이 될까 봐.


얼음땡 놀이의 얼음이 되어버립니다.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흙바람 날립니다. 해가 지는 것 같습니다.


1979년 여름 청주여고 버스종점 그곳에

더 이상은 움직이지 않는 버스와 콧물 눈물범벅이 된 아홉 살 아이 하나 서있습니다.



*아직도 눈에 선 합니다*

눈부시게 흰 카라의 세일러복을 입고 검정 가방을 든 분명 우리 누나보다 예쁘게 생긴 그 누나.

지금은 60이 다 되어 손자. 손녀. 있을지도 모르겠요.

버스종점 그 무서운 곳에서 울고 있던 내게

집에 가야지. 하며 버스 탈 동전 몇 개 쥐어 주던 그 손과 눈을 기억합니다.

청주여고 학생이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이름 모를 누님.

혹시 사십 년 전  여고 앞 버스종점에서 울고 있던 그 모자란 아이를 기억하시나요.

그 아이도 벌써 50이 되었습니다.

가끔 살아가다 너무 지쳐 힘이 들 때 누님 생각이 나곤 합니다.


"집에 가야지"


한마디 전해줄 당신이 또 보고 싶습니다.


바람의 노래 song by 조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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