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프닝

홈런. 너는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혼자만의 비밀.

by Toronto Jay

"좌축~좌측~좌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투볼 노스트라이크 한복판 높은 볼을 그대로 당겨 넘겨버립니다!


프로야구의 백미는 누가 머라 해도 "홈런"입니다.

노련한 투수가 아무리 경기를 잘 이끌며 철벽방어를 해도

타자가 점수를 내지 못하면 이길 수 없는 것이 "야구"입니다.


프로야구 중계방송 캐스터를 10년 넘게 해왔습니다.

지역방송 TV와 라디오 프로야구 캐스터로 10년. 서울에서 3년.

참 많은 야구경기 현장에 있었습니다.

가장 높은 곳. 가장 편한 곳.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10여 년.

그렇게 야구장은 나의 사무실이었고, 놀이터였고, 삶의 현장이기도 했죠.


그런 나에게도 가장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홈런"이 나오는 그 짜릿한 순간.

그것을 가장 먼저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날의 타자 컨디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감독. 코치였을까.

투수의 공을 어쩌면 타자보다 더 잘 보고 있던 공을 받던 포수였을까.

아니면

배트에 공이 맞는 순간 "무겁다"라기 보다 오히려 "가볍다"고 느꼈던 그 공을 때린 타자였을까.


순서가 머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저는 항상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과연 누구였을까요?


선수 감독들을 인터뷰 핑계로 참 여러 명 귀찮게 따라다니며 물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상치 못한 의외의 답변이 나옵니다.

그 누구도 아닌 "투수"다 라는 대답이 가장 많습니다.

그것도 던진 공이 타자에게 날아가 정통으로 배트에 맞는 순간이 아니라

투수의 손에서 공이 빠져나가는 그 짧은 찰나.

그 짧은 순간에 투수는 벌써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앗! 실투다!

혼잣말 되뇌기도 전 어김없이 터지는 "딱!"소리.

홈런이 나온다는 겁니다.


중계를 하는 캐스터나 해설위원이

어려운 공 참 잘 받아쳐냈다. 대단하다며 타자를 칭찬하는 그 순간이나.

야구장이 떠 내려가듯 홈런타자에게 환호하는 관중들의 함성 속에서도.

고개 숙인 투수는 자신의 실투로 홈런을 맞았다는 사실을

"이미" 비밀처럼 제일 먼저 알고 있었다는 거죠.


인생 참 비슷합니다.

죽을듯 힘든 일들과 이겨내기 어려운 삶의 언덕을 마주하며

내가 이런 상황을 만든것이 아니다 라며 애써 외면 하고.

남들도 네 탓이 아니다라며.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는 없었다 위로 하지만.


백팔번뇌 상징하듯

실밥 108개로 꿰메진 야구공을 잘못 던진 사람은 "나"였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 그럼에도 또다시. 마운드에 오릅니다.


남자라서 웃어요 song by 김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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