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프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ronto Jay Dec 15. 2022

홈런. 너는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혼자만의 비밀.

"좌축~좌측~좌측~ 담장을 넘어갑니다!"

투볼 노스트라이크 한복판 높은 볼을 그대로 당겨 넘겨버립니다!


프로야구의 백미는 누가 머라 해도 "홈런"입니다.

노련한 투수가 아무리 경기를 잘 이끌며 철벽방어를 해도

타자가 점수를 내지 못하면 이길 수 없는 것이 "야구"입니다.


프로야구 중계방송 캐스터를 10년 넘게 해왔습니다.

지역방송 TV와 라디오 프로야구 캐스터로 10년. 서울에서 3년.

참 많은 야구경기 현장에 있었습니다.

가장 높은 곳. 가장 편한 곳.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10여 년.

그렇게 야구장은 나의 사무실이었고, 놀이터였고, 삶의 현장이기도 했죠.


그런 나에게도 가장 궁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홈런"이 나오는 그 짜릿한 순간.

그것을 가장 먼저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날의 타자 컨디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감독. 코치였을까.

투수의 공을 어쩌면 타자보다 더 잘 보고 있던 공을 받던 포수였을까.

아니면

배트에 공이 맞는 순간 "무겁다"라기 보다 오히려 "가볍다"고 느꼈던 그 공을 때린 타자였을까.


순서가 머 그리 중요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저는 항상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과연 누구였을까요?


수 감독들을 인터뷰 핑계로 참 여러 명 귀찮게 따라다니며 물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상치 못한 의외의 답변이 나옵니다.

그 누구도 아닌 "투수"다 라는 대답이 가장 많습니다.

그것도 던진 공이 타자에게 날아가 정통으로 배트에 맞는 순간이 아니라

투수의 손에서 공이 빠져나가는 그 짧은 찰나.

그 짧은 순간에 투수는 벌써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 실투다!

혼잣말 되뇌기도 전  어김없이 터지는 "딱!"소리.

홈런이 나온다는 겁니다.


중계를 하는 캐스터나 해설위원이

어려운 공 참 잘 받아쳐냈다. 대단하다며 타자를 칭찬하는 그 순간이나.

야구장이 떠 내려가듯 홈런타자에게 환호하는 관중들의 함성 속에서도.

고개 숙인 투수는 자신의 실투로 홈런을 맞았다는 사실을

"이미" 비밀처럼 제일 먼저 알고 있었다는 거죠.


인생 참 비슷합니다.

죽을듯 힘든 일들과 이겨내기 어려운 삶의 언덕을 마주하며

내가 이런 상황을 만든것이 아니다 라며 애써 외면 하고.

남들도 네 탓이 아니다라며.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는 없었다 위로 하지만.


백팔번뇌 상징하듯

실밥 108개로 꿰메진 야구공을 잘못 던진 사람은 "나"였다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가장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 그럼에도 또다시. 마운드에 오릅니다.


남자라서 웃어요 song by 김장훈





매거진의 이전글 내 아내는 악처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