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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ronto Jay Dec 17. 2022

내 아들? 아니 니 아들!

여보는 좋겠다. 아들 있어서.


"딱 한 발자국이라도 나가면 는거야! 다시는 그 문으로 못 들어올 줄 알아."

아내의 단호한 목소리가 대법원 상고심 판결문을 낭독하는 대법관과 똑 닮아있었다.


내 명의로 된 아파트 현관에서 나는 공연히 한쪽이 사라진 운동화를 찾기 위해 버둥대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분명 시간을 벌기 위한 "남편 놈"의 마지막 자존심을 잃기 싫은 몸부림이었다.


현관 구석에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어져 있는 저 신발은 분명 "나 여기 있소"하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나는 애써 외면한 채 신발장만을 헤집으며 "이래서 못 나가고 있다"를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시작된 말싸움이었다.


남는 장사인가. 이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번개처럼 스쳐가던 이 셈법은

무엇이 나에게 더 이득이 되는가 따지는 소위 "경제의 효율성 법칙"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가는 건 밑지는 장사였다.


밤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 

등기부등본에 분명 "나는 너 꺼입니다"라고 나라에서 증명한 이 집에서 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층간소음이라고 믿고 싶었던 그 쿵쾅거리는 소리는.

내 심약한 가슴속에서 울리는 소음이었고. 

그것을 마치 들었다는 듯이

방문 삐쭉 열어 아빠의 다음 행동에 궁금해하던 아이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내 다리는 티브이 속 어느 코미디언의 "숭구리당당 숭당"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아빠가 신발을 못 찾는다.

알려 줘야 엄마에게 잡히지않고 아빠가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문틈 사이 아이는 손가락으로 현관 구석 뒤집어진 신발을 가리키며

"저어기 있다"를 계속해서 알려주고 있었다.


그 순간 문틈 사이 아이의 몸짓이

가수 이은하의 예전 노래 중 나오는 "멀리 기적이 우네~"의 디스코 손동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아빠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는 이 아빠의 마음을 하나도 헤아리지 못한 채.

답답한 듯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저기 있잖아 저기!!! 를 반복하며 눈을 껌뻑거린다.


이미 알고 있는 그것을 찾는다면 나는 신고. 열고. 나가야만 했다.


감당 불가의 상황이 두려워지자 공연히 아이에게 소리쳤다.

"들어가 있어!!!"


사실 이렇게 외쳐야 했다.

"야! 나가면 죽는거야! 알어?"

하지만 하지 못했다. 하고는 싶었다.


평소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고 있었기에 빨리 엄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도와줘야 한다는.

갸륵한 마음의 아이는 하나도 무섭지 않은 아빠의 외침을 못 들은 척.

기어이 방문을 열고 나와 "아휴 아빠 여기 있다니까"를 읊조리며 현관까지 와서 신발을 들어 보인다.


별로 썩 고맙지 않은 아이의 행동에 애써 감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신발을 신고 신발장을 닫고 허리를 펴고 눈에 힘주고 서있었으나.

그다음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대체 감이 오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 딱 하나였다.

"남는 장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다는

솔직히 말해 "뒷감당을 하기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때. 나를 도와줄 단 하나의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내 눈앞에 서있는 이 아이. 바로 내 아들이라는 작지만 소중한 존재였다.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아빠 가지 마"를 외쳐줬으면 좋겠다를 생각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답답한 아내의  엄청난 잔소리에 자신의 명의로 된 집조차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이 사내이지만.

또 다른 "" 이 소중한 아이를 위해 자존심을 접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 정.


"숭고하다."라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핑 돌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바라봤다.

통 넓은 바지를 입을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오른발을 집안 아이 쪽 현관문턱까지 내밀었던 것 같다.


잡아주길 바랐다. 솔직히.

울어주기를 바랐다. 정말로.

엄마 미워를 외쳐주기를 바랐다. 진심으로.


그러나 이 아이는 진심으로 아빠를 사랑했나 보다.

신발까지 자기가 찾아주었기에 이제는 나갈 수 있게 된 아빠가.

엄마에게 잡히면 죽을 수 도 있기에.

기어이 살리고 싶었나 보다.


그리곤 알았다.

이 아이는 내 아들이라기보다는 " 아들"이었다 라는 것을.


아빠의 마음도 모른 체 그냥 저 남자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이듯 나지막이 내게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


"아빠... 뛰어."





바보처럼 살았군요 song by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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