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였나요. 아니면 벽이었나요.
동생. 아버지 심박수가 0으로 떨어지셨다네...
토론토 401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던 아침 9시. 그 말뜻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아니다. 알았음에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라는 표현이 정확할 거다.- 무심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차량 안 껌뻑거리는 전자시계를 바라봤다. 정각 오전 9시. 망치로 뒷머리를 맞았을 때의 그 멍함이 아니었다. 마치 솜사탕으로 만들어진 머리가 뜨거운 끓는 물에 녹아내리는 듯한 불안한 "축축함"과 급격한 "상실"사이의 그 어떤 것이었다.
순간 내게 떠오른 건 단 한 가지 만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시간으로는 밤 11시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차마 동생에게 전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 분명한 누이의 전화에 고작 나는 그렇게 답했다.
"그러니까 한국시간으로 밤 11시네요. 그렇죠 누님?"
분명 평소와 같은 길이었지만 왕복 12차로의 그 넓은 고속도로가 한 곳으로 좁아지고 있었다. 수많은 차들이 나로부터 멀어지고 있었고, 커다란 교통표지판들의 글씨가 흐려지고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7개월간의 중환자실 무의식 환자로의 투병생활을 마치고 눈을 감으셨다.
하루 한번 뜨는 당일 출발 대한항공 직항 비행기 표는 구할 수 없었다. 미국을 경유해 인천으로 가는 23시간 동안 눈물보다는 한숨이. 아픔보다는 저려옴이. 그리움보다는 아련함이 밀려왔다.
2022년 12월 22일. 청주에는 폭설이 내렸다. 인천공항서 리무진버스를 타려는 순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 청주폭설이라 버스 타면 언제 도착할는지 모르니 기차를 타시게. 아버지가 모셔진 충북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먼저 도착해 있던 고향 친구 놈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바꿔 탄 ktx가 오송역에 도착한 순간. 나는 눈이 많이 오기로 유명한 토론토에서도 보지 못한 장면과 맞닥뜨려야 했다.
"눈이 예쁘게 온다. 참 많이 온다"
평소면 삼십 분이면 갈 그 길 속에 한 시간 반을 가다 서다 하는 택시 속에 있었다. 길이 미끄러워 오늘 영업 끝났다며 투덜거리다 결국 정치권 이야기로 옮겨간 기사님의 울분은 거의 피토하며 마이크 잡고 있는 민주투사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내리는 눈만을 바라보며 혼잣말뿐이었다.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진짜 궁금한 게 있었는데 묻지를 못했네..."
아들보다 잘난 아버지여서 부족한 아들이 안쓰러웠던 당신께 궁금합니다 아버지.
한평생 답답해 하면서도 당신께 의지하며 기댄 듯 살았음이 분명한 그 무엇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나요. 아버지.
내 맘대로 살아가는 막내아들에게 당신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고, 부족한 아들이 꿈꾸던 작은 소망조차 꾸지 못하게 했던, 한 발자국도 내 생각한 곳으로는 갈 수 없는 단단한 "벽"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답답하고 두텁고 높디높은 "벽"이었습니다. 기대고 있다 문득 정신 차려보면 그것은 "벽"이었습니다.
그러다 넘어지고 엎어지고 깨지고 나면 벽이라 답답하던 당신은 어느덧 커다란 산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높은 산에 숨었고, 기댔으며, 한숨 돌리며 쉬기도 했더랬습니다.
그때는 "산"이라 느꼈지만 당연한 "산"이어야 한다고 생각 들었기에. "감사하다"라기보다는 당연한"익숙함"이 그냥 편하기만 했더랬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당신의 심박수가 0으로 떨어졌다는 간곡한 표현으로 에두른 누이의 한마디를 듣는 순간. 아버지. 죄송하게도 좁아지는 고속도로와 멀어지는 차들과 흐려지는 표지판의 글씨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거였습니다. "벽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다리던 뉴욕의 텅 빈 공항 그 덩치 큰 흑인과 함께 앉아 있던 공항 대합실서 문득 밀려오던 또 하나의 감정은"산이 사라졌다"였습니다. 시간을 두고 떠오르던 두 개의 궁금증은 아버지 당신을 만나러 가는 이 길에 더욱더 궁금하기만 했습니다.
아버지 무엇인가요. 이 상실감의 대상이... "벽"인가요? "산"인가요?
택시기사님의 열변이 웅얼거림으로 들리기만 하던 그 택시 안. 그 두 가지 풀리지 않는 어려운 질문들로 어지럽던 그 시간이 지나고 병원 장례식장. 다른 이의 아버지가 아닌 바로 내 아버지의 영정 사진이 올려진 장례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너무나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아버지께 묻고 싶었던 그 질문의 답이 내 가슴속 저 아래부터 쿵쿵거리며 울리고 있었다.
사라져 버렸던 그것은 "벽"도 "산"도 아니였다.
나는 그것을 환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며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내. 가. 사. 라. 졌. 다.
당신은 "벽"도 "산"도 아니었음을. 아버지. 왜 그때는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
"나는 너다"라고 아버지. 왜 그리 무표정으로 알아주기만을 바라셨나요.
"벽"도 "산"도 되어 보지 못한 아들 가슴 치며 가시는 길 그저 뒷모습 이렇게 바라보고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