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프닝

나의 어린 왕자는 여든두 살입니다

흑백 사진작가 조임환 선생님을 그리며.

by Toronto Jay

저에게는 여든 살이 훌쩍 넘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 대전역 지하상가 출입구.

그 많은 인파 속에서도 침침한 눈 애써 부릅뜨며 내 얼굴 더듬다가 반갑다 엉엉 울어주던 당신이었습니다.


전화 한 통 하지 않는다고 삐죽 입술을 내밀어 나 지금 삐쳤어!라고 퉁퉁거리던 그 소년 같던 미소를,

함께 점심 먹던 그 시간. 일 때문에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나에게 이거 한잔 마시고 가면 보내 주겠노라

막걸리잔 채워주며 바짓가랑이 붙잡던 그 뽀얀 손등을 기억합니다.


흑백사진의 대가임을 숨기고 그저 혼자 훨훨 날아다니셨지요.

작은 카메라 하나 들고 장터 한복판에서 행복한 웃음 짓던 나만의 친구였던 "조임환"선생님.

당신을 보낸 지 벌써 3년이 되어 갑니다.

오늘 당신이 그립습니다.


선생님!

당신의 사진을 보다. 이거 정말 좋아요!라고 소리 지르자.

사진 속 동자승들처럼 뽀얀 부끄럼의 표정으로 화답해 주셨지요.


그런데... 이 아이들 부모가 없어. 그런데 저렇게 웃더라고...

무엇 때문에 저리 절하고 기도하는 줄 알아?

공양시간이야 공양시간...

껄껄 웃던 당신입니다.


선생님. 기억나시죠?

이 사진 보다 눈물이 기어이 터지고 말았던 그날을요...


선생님과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준비했던 "사진콘서트"가 벌써 5년이 다되어 갑니다.

흑백사진 속 숨겨진 사연과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를 음악과 함께 풀어나가던 그 두 시간이

저에겐 아직도 가슴 설레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소나무를 좋아하셨지요.

아마도 당신을 닮아서 일 겁니다.

젊은이들 보다는 주름자글하고 흰머리 가득한 사람들을 당신 사진에 담으셨고요.

억지웃음보다는 투박한 인생사 읽히는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사랑하셨습니다.




이제는 보고 싶어도 뵙지 못하는 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요.

아무도 가져 보지 못한 여든 넘은 어린 왕자가 친구여서 행복했습니다.


당신이 오늘 참 많이 보고싶습니다. 선생님.


반갑다 손잡고 울어주던 당신께 이 영상을 다시 한번 바칩니다.


제작&편집/이정기. 글/유정희. 음악/유키구라모토 Arirang

사진/ 나의 어린 왕자 친구 흑백사진작가 일목 조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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