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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움 Jan 30. 2023

반려동물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2022년 4월 1일은 우리 가족에게는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 저녁에 7년간 집안에서 키우던 고양이 ‘둘리’를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게 맞을까? 가출한 게 맞을까? 둘 다 맞는 표현이다. 사건은 순 십간에 발생했다. 서울에서 양평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양평읍의 낯선 마을에서 둘리는 스스로 창문 버튼을 누르고 달리는 차 안에서 뛰어내렸다. 창문버튼을 누르면 문이 열린다는 것을 알 정도로 둘리는 똑똑했다. 왜 뛰어내렸을까? 


문제는 남편이 차에 실은 휘발유이었다. 휘발유를 양평읍에서 사서 차에 실자마자 둘리는 그 냄새가 싫어서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둘리야 조금만 참아. 이제 다 왔어." 다독이며 빨리 시골집에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하였다. 하지만 둘리는 페인트냄새가 참을 수가 없었나 보다. 갑자기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그 동작은 정말 번개처럼 빨랐다.  모두 다 우리의 잘못이었다. 


페인트를 차 안에 실은 남편. 

창문 잠금장치를 풀은 운전자 큰 딸. 

둘리가 뛰어내릴 때 잡지 못한 나. 

누구 하나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랑한 만큼 죄책감도 컸다. 

둘리는 그렇게 홀연히 우리를 떠났다. 가슴이 너무 아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당장 차에서 온 가족이 내려 밤새도록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고양이를 찾는다고 말하면 반응이 다양하다. 그 과정에서도 상처를 많이 받았다. 


아직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생각하고, 함께 산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 보였다. 왜 괭이를 찾냐고 묻는 분, 그렇게 소중한 고양이를 왜 잃어버렸느냐고 야단치는 분, 고양이가 비싼 고양이라서 찾느냐고 묻거나 고양이는 찾기 어려운 동물이니 찾지 말라고 충고하는 분도 계셨다. 반면에, 비슷한 고양이를 보았다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서 제보해 주거나 심지어 포획 틀을 우리 집까지 직접 가져다준 고마운 분도 계셨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가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이 저조한 데,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에서도 마찬가지임을 확인하였다. 



모든 사람이 나의 감정과 고통에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의 다름에 대해 인정과 존중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둘리의 평소 모습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모든 일이 둘리를 찾는 일에 집중되었다.  매일 잃어버린 곳을 갔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둘리 사진을 올리고, 버스 정거장, 마트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전단지를 부착하였다.  동네 캣맘들을 수소문하며 만나고 다녔다. 서울에서 고양이 탐정도 불렀지만 넓은 양평 땅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정말 내 체력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였다.  하루종일 찾다가 저녁에 소득 없이 집에 돌아왔을 때의 허전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를 원망하며 피폐해져가고 있었다. 




가장 위로가 되던 말

"잘 살고 있을 거야"



둘리를 잃어버리고 한동안 우울증에 걸렸다. 반려동물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처음에는 죄책감. 뒤이어오는 먹먹함과 우울증. 이야기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둘리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건 딸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의 지인들은 "네 잘못이 아니야" 등등 따뜻한 말을 건넸지만 가장 힘이 되었던 말은 "어디서 인가 잘 살고 있을 거야."이었다.  아마도 그 말을 믿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기만 한다면 여한이 없다. 내가 이리 애가 타는 것도 7년간 쌓은 정도 정이지만, 둘리가 겪을 고통 때문이다. 둘리는 유난히 입맛 까다롭고 따뜻한 곳 좋아하는데, 길고양이의 삶에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한국에서 길고양이의 삶은 얼마나 고단한데... 모든 마을에는 길고양이가 있었다. 하나같이 고단해 보였다. 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사람도 있지만, 차별하거나 학대하는 사람도 있다. 무서운 사람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녀야 한다. 피해야 하는 것은 사람뿐이 아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서 자기 영역을 침범하면 전쟁을 치르듯이 서로 치열하게 싸운다.  식량을 위해, 영역을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 길고양이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우리 둘리도 길에서 태어났고, 길고양이처럼 생겼지만 둘리가 길에서 산 것은 7년의 삶 중 한 달도 안 되었다. 길고양이의 삶을 경험하지 못했다.  밥도 없고 물도 없고 날도 춥고. 둘리가 생존할 수 있을까? 둘리를 잃어버린 지 일 년이 되어간다. 


돌이킬 수만 있다면 4월 1일로 돌아가고 싶다. 


자동차 창문에 잠금장치를 했더라면, 창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차 안에 페인트를 싣지 않았더라면. 우리 아이는 똑똑하니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좀 더 조심했더라면 하는 후회들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지금 둘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시 만난다면 지난 7년간 우리와 함께 살아주어서 행복했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이 말도 전하고 싶다.

 

“둘리야, 잃어버려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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