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온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지방 순회 세미나에서 발표할 영어교육 원고와 슬라이드를 만드는 데 집중하려 애썼지만, 머리는 멍하고 손은 무거웠습니다. 방 안 공기는 답답했고, 키보드 소리는 머릿속에서 울리는 시계 초침처럼 성가셨죠. 그러던 그때, 아이가 갑자기 열이 나며 배가 아프다고 울기 시작했어요. 억눌렀던 긴장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했죠. "왜 하필 지금?"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습니다. 아이를 부축해 응급실로 달려가며 머릿속은 뒤엉킨 생각들로 가득했어요. '큰 병은 아니겠지?' '내가 진짜 엄마가 맞긴 한 걸까?' 응급실의 차가운 공기는 숨을 막히게 했고, 불빛은 눈앞에서 번쩍거렸습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내 머릿속은 공중으로 던져진 공들처럼 뒤엉켜 이리저리 날아다녔어요.
'이러다 모든 걸 놓쳐버리는 건 아닐까?' 불안은 점점 커져 나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만 같았습니다.
'저글링을 실패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으로 평생 저글러로 살아왔습니다. 삶의 무대 위에서 일, 가정, 공부라는 세 개의 공을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돌리고 또 돌렸죠. 공중에 날아오른 공들이 리듬을 잃지 않도록 손끝을 긴장시키고, 숨조차 조심스레 고르며 살아왔습니다. 저글링이란 본디 그런 법이니까요.
모든 공을 동시에 띄우며 끝없이 균형을 맞추는 기술. 그러나 공중에서 아름답게 회전하던 공들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공이 흔들릴 때마다 나머지도 그 리듬을 잃어갔고, 손끝은 땀으로 미끄러졌습니다. 결국, 공들이 나의 손을 벗어나기 직전.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 공들이 다 떨어진다면?’ 결국 모든 공이 손에서 떨어질 듯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글링을 꼭 이렇게 해야만 할까?
그래서 룰을 깨기로 했습니다. 왜 공은 공중에만 떠있어야 하죠? 왜 두 손만 써야 하죠? 저는 공 하나를 손에서 내려놓아 바닥에 굴려 보았습니다. 바닥에 굴러가는 공은 제 손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다른 공은 팔꿈치 위에 올려놓기도 하고, 책상에 잠시 올려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손은 가볍고 움직임은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공을 꼭 내가 혼자 돌릴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었죠.
어떤 공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건네주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었죠. 저 스스로 먼저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내는 법을 배워야 했고, 그들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함께 돌리기 시작하니 리듬이 달라졌습니다. 혼자서 고군분투하던 저글링이 이제는 함께 나누는 일상의 균형으로 바뀌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깨진 룰은, 모든 공이 동일한 중요도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공은 작고 가볍게 다루어도 괜찮고, 어떤 공은 굳이 돌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공을 내 손에서 놓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저글링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저글러로서의 삶도 한층 풍요로워졌습니다.
이제 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저글링을 합니다. 공은 손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굴러가기도 하고, 누군가와 공유되기도 합니다. 가끔은 공을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괜찮습니다. 가장 중요한 공만 손에 쥐고 있다면, 나머지는 제자리를 찾아가겠죠.
저글링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자기만의 저글링을 위해 기존의 룰을 깨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덕분에 저글링은 이제 단순한 기술을 넘어, 제 삶을 표현하는 독창적인 예술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