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좀 드릴까요.

가지 좀 드릴까요.

by 하정



거기 아닌 사람들은 들어가 봐요. 그래야 어디서 떨어지려는지를 알지. 205동 창문들. 어차피 안 보여요. 거 쫌 들어갑시다. 방금 들은 경관님 피셜: 자살시도자가 있었으나 방금 구조됨. 헐. 언제 구조. 설마 우리가 못 본 거. 그럴 리가. 화장실도 안 가고 지켜봤는데. 그러니 이 엄동설한에 엘베 전면 교체가 웬 말이냐고요. 25층 아파트를 한 달 동안 계단으로 오르내리라니, 나도 뛰어내리고 싶다. 6층 구순 할머님은 중심상가 파크모텔 한 달 끊으셨다네요. 헉. 구순에 모텔은 좀.ㅋㅋㅋ. 왜, 지난봄에도 한번 그랬잖아요. 그 집인가. 봄,가을. 투신이 무슨 시즌이야 . 에이씨, 집값 떨어지게 뭘 자꾸 뛰어내려.


그렇다. 상습이다.

우리 아파트 205동엔 상습 자살시도자가 산다. 상습이라는 단어에 담긴, 단 한 번을 치밀하지도 대범하지도 못했던 한 인간의 어설픈 우울이 잊을만하면 집값과 함께 떨어지는 곳. 아파트 단톡방. 205동 앞으로 두 개의 공기 매트리스가 깔리고 소방대원들과 119구조대가 함께 온 것이 저녁 8시경. 사다리가 각층의 베란다 창을 타고 수직으로 올라간다. 그와 함께 톡 방의 댓글도 폰의 왼쪽 모서리를 따라 실시간 솟구친다.

자가가 아니어서 저렇게 맘 놓고 떨어지려는 거지. 자기 집이었어 봐, 집값 무서워 어디 난간에서 신발 한 짝 날리겠냐고요. 그래서 월세래요. 전세래요. 저기 월세 아닐까요. 월세 요즘 많이 올랐다던데. 월세도 오르는 판에 엘리베이터 교체한다고 계단으로 다니라고 하니 홧김에 그냥 확. 뭐 이런 거 아닐까요. 그나저나 구조 대원들은 뭔 죄래요. 구조하러 계단으로 뛰어올라가야 하니ㅋㅋㅋ. 그래서 몇 층인데요.


그를 본 적이 있다. 205동 1202호. 지난여름 205동 옆 텃밭에서 짧고 둥그런 가지를 따던. 그는 내게 저기 가지.. 가지 좀 드릴까요. 라고 물었었다. 나는 그 아침, 헤드셋을 끼고 이제 막 여섯 그루의 계수나무 아래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그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저 누군가 슬쩍 다가서는 기척을 느꼈을 뿐이었고 그러다가 단지를 돌아오는 두 번째 동선에서 두 손 가득 가지를 들고 서있는 그를 보았다. 작고 왜소하고 앳된 얼굴로 여섯 그루의 계수나무 중 세 번째 나무, 아마 그쯤에 서서 그가 내게 물었었다. 저기 가지.. 가지 좀 드릴까요.


아파트에서 해마다 각 세대에 나눠주는 상자텃밭에는 각 호수가 적혀져 가지나 상추 같은 것들이 자란다. 어느 호수의 텃밭이 잘되고 있는지, 무슨 거름을 쓰길래 저 집 가지는 저렇게 주렁주렁 달리는지, 어느 놈팽이가 우리 가지를 훔쳐 갔냐며 텃밭에 CCTV를 달아야 한다는 성토까지, 아파트 만남의 광장, 주민운동기구존에는 아파트 내 모든 사연들이 모여든다.

아니 그래서. 그 집이라고. 205동 12층 2호. 병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조용하게 생겨서 어떻게 매번 그런대요. 학교는 겁나게 좋은 데를 나왔대요. 그렇게 성실했다던데. 그 뭐야, 조현병 뭐 그런 거 아닐까요. 세상에 무서워서 어떻게 산대. 엄마랑 둘이 산다는데, 그 집 엄마가 집을 못 비우잖아요. 나가면 그냥 확 떨어질까 봐서. 쯧쯧.

수평의 바를 위에서 아래로 잡아당기면 다리가 수직으로 들리는, 어깨 전면 삼각근과 중간 삼각근을 강화시켜준다는 머신에 앉아 나는 205동 12층 2호 창을 올려다본 것도 같다. 그들은 그 집을 그렇게 불렀다. 천이백이호가 아닌 십이층이호.


지면에서 우리 집 현관까지의 계단의 개수는 정확히 160개. 솔직히 그것밖엔 안된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한 세 번쯤 세어 보다가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만 6년이 안된 새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전면 교체라니. 도대체 얼마나 허접한 기계를 썼으면 이 모양이냐며 분개하는 사람들은 전세나 월세. 그래도 이제라도 교체해서 다행이라며 한 달이면 금방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가. 여덟 개를 오르고 계단참에서 방향을 바꿔 다시 여덟 개를 오르면 이제 겨우 한 개 층을 올라온 것이다. 올해 두 번의 관절염 수술로 휠체어를 타시던 6층 할머니의 파크모텔은 방음은 잘 되는지. 다시 계단 여덟 개를 수직으로 오르고 방향을 바꾸면 길고 좁은 통창으로 그 집이 보인다. 천이백이호가 아닌 십이층이호. 인간이 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높이는 11미터. 십이층은 그보다 높은 높이인가. 그는 이제 가지를 나눠주지 않는다. 지금 그의 텃밭엔 아무것도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방향을 바꿔 다시 여덟 개. 이렇게 숨을 몰아쉬어 본 적이 언제였는지. 저기 가지.. 가지 좀 드릴까요. 그는 그렇게 물었었다. 그도 이렇게 계단을 오를 것이다. 여덟 개와 하나의 계단참과 다시 여덟 개의 연속. 그리고 지금 나를 흔드는 것은 수직과 수평이 만나면 추락이 되는 그런 아이러니. 수직으로 자유낙하해 수평의 계수나무 아래로. 아마도 그의 시도는 성공할 것이다. 여섯 그루의 계수나무가 가장 아름다울 봄, 어쩌면 어느 가을 그때에.

그는 그렇게나 성실했던 상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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