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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우정에도 '우아한 거짓말'이 숨어있진 않나요?

김려령 작가의 『우아한 거짓말』을 읽고

by 영혼의 속삭임


김려령 작가의 『우아한 거짓말』은 겉으로 항상 밝아 보이던 이천지의 자살을 중심으로 우아한 거짓말이 빗어낸 비극을 다룹니다. 엄마와 언니(만지)는 천지가 왜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의문을 품고 진실을 추적합니다. 뒤늦게야, 천지가 반에서 화연이라는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친구였던 미라와도 멀어져 힘들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심지어 천지가 도움을 요청하는 듯한 말들을 건넸음에도 모두 흘려들었다는 걸 알게 된 엄마와 언니는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짓말에도 새빨간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 그리고 우아한 거짓말이 있듯이, 이 책에서는 속마음을 감추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선택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외롭지 않다, 슬프지 않다” 하고 말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외로운 이들이 등장합니다. 또한 그 거짓말을 눈치채면서도 묵인하거나 방관했던 주변 사람들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궁지로 몰아넣는 은근한 폭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합니다.

소설 속 천지는 죽음을 택합니다. 늘 밝은 모습이었기에 누구도 그녀가 그토록 힘들어했다는 걸 알지 못했습니다. 이 상황은 “겉으로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속은 무너질 수 있다”라는 걸 잘 드러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 미라의 시선 역시 주목할 만합니다. 미라 역시 주변 아이들이 누군가를 “재수 없다”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정말 그렇게 느껴지게 되는 후천적 각인효과에 천지를 배신하게 됩니다. 믿고 계속 말하다 보면 그 말이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 사실처럼 굳어지는 현상이지요.

그만큼 말에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누구나 10명 중 2명은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을 싫어할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괴롭힘당하거나 배신당해도 오히려 “저 2명은 그냥 나를 별 이유 없이 싫어하는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천지는 이 간단해 보이는 사실조차 활용할 겨를도 없이, 홀로 모든 슬픔을 견뎌야 했습니다. 작품 속에서 엄마와 언니가 뒤늦게야 “천지가 했던 여러 말이 사실은 SOS 신호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책에서는 천지가 언니에게 “나이테를 봐야 나이를 알 수 있다는데, 그럼 나이를 알려면 나무를 잘라야 하나?” 하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겉만 볼 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잘라야만 드러나는 진실에 대한 상징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천지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그녀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처럼, 내면이 상처받고 무너져도 겉만 번지르르하면 속마음은 절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이 책을 읽은 뒤에는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속담을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조심스럽게 건넸다면 위로가 되었을 말 한마디가, 무심코 내뱉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천지가 죽은 후, 그녀를 힘들게 했던 주변 인물들이 과연 진정한 사과를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사과가 늦은 용서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천지가 마지막에 5개의 실타래에 쪽지를 남기고 떠났다는 설정은, 끝내 그녀가 주변 사람들을 끝내 용서하고 떠났음을 암시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우아한 거짓말』은 “우아하게 포장된 거짓말”이 부른 비극을 통해 교묘한 소문, 사소한 언행이 얼마나 깊은 생채기를 남길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거짓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심어린 관심과 말 한마디입니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조금 더 따뜻해지길. 아래는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명대사들입니다.


“조잡한 말이 뭉쳐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혹시 예비 살인마는 아닙니까?” (23p)


“공기청정기는 있는데, 왜 마음청정기는 없을까?” (37p)


“뻔히 알면서 당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어. 그거 그냥, 당해주는 거야. 아직 돌려줄 때가 안 됐으니까.” (119p)

“활을 쏜 사람한테 뒤끝이 있을 리가요. 활을 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질질 흘리고 다니는 사람, 아직 못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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