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도착한 어느 아버지의 편지
내가 아는 그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가끔씩 내게 보내오는 글은 참으로 다정했고,
묵직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는 아마 가족들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글 속에서는, 말 대신 더 깊은 감정을 건네곤 했다.
쇼셜미디어도 하지 않고, 인스타도, 블로그도 하지 않는 사람.
어쩌면 오히려 그래서 더, 글 하나하나가 귀하고 진심 같았다.
그는 요즘, 가족과는 영어로, 자신은 한국 뉴스를 보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문득문득 생각이 날 때면 내게 메일을 보내곤 했는데,
얼마 전 받은 그의 글은 이러했다.
제목: Bathroom?
어딜 가냐고 물어도
아들은 우물우물 대답을 흐리며 집을 나선다.
그래도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들의 뒷모습이 좋다.
키 큰 아들의 뒷모습은
키 작은 내 결핍을 치료해준다.
그래, 그 정도 당당한 체격이면 됐다.
이젠 아주 조금만 더 내게 친절하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어
네 식구는 서로 눈치를 본다.
세 명은 말 없이 양보하고
기회를 잡아 볼 일을 보는데
아들은 유독 세 명을 찾아 일일이 물어본다.
이게 나는 고맙다.
하루 중 유일한 아들과의 대화다.
길게 대답하고 싶지만 시크하게 말한다.
"No."
속으로는 아들이 더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예상대로 아들은 곧장 돌아서
화장실로 들어가
콧노래를 부른다.
점점 커지는 콧노래,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로
열창하는 그의 사춘기.
내가 내 아버지에게 그러 했듯
무심한 아들은 무심하게
사춘기를 통과해 간다.
그래, 말 안 해도 좋다.
짜증 내도 좋다.
즐겁게 노래 부를 수 있는 삶을 살아다오.
그의 글을 읽으며 생각했다.
말로 다하지 못하는 그 마음 뒤엔,
어쩌면 말보다 더 깊은 사랑이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고,
외로움 속에서 함께 있음에 안도한다.
나는 그가,
그 가족 속에서
더 단단한 안정을 느끼기를 바란다.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은 전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