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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라는 말이 버릇처럼 붙을 때

by 윤하루

“괜찮아요.”
언제부턴가 입에 붙었다. 딱히 괜찮지도 않은데, 말해버리고 나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어 편했다. 누군가의 사과에도, 내 속이 울컥할 때도, 대답은 늘 그랬다. “괜찮아요.”


사실은 조금 서운했고, 조금 외로웠고, 조금 기대했는데.
그런 감정을 꺼내는 일이 부끄러워서, 나만 유난스러워 보일까봐 꾹 눌러 삼켰다.
그래서 무난하고 안전한 말 하나로 나를 덮었다. 버릇처럼. 방어처럼.


그런데 문득, 내가 너무 자주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혹시 나는, 괜찮지 않은데 자꾸 나를 속이고 있는 걸까.


생각해보면, 진심을 말할 타이밍은 늘 놓쳤던 것 같다. 그 순간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또 꺼내기엔 애매해졌다.
'지금 말하면 괜히 징징거리는 것처럼 보일까?'
'이미 지난 얘긴데, 굳이 왜?'
그렇게 마음은 꾹꾹 눌린 채, 어느새 익숙한 말만 튀어나왔다. "괜찮아요."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는 진짜 괜찮은 거야, 아니면 그냥 그렇게 말하는 거야?"
그 말이 오래 맴돌았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조차도 진짜 괜찮은 건지 잘 모르겠는 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내 안의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진짜로 괜찮은지, 아니면 그저 그런 척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려 했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괜찮지 않은 순간에도 괜찮다고 말해버리는 버릇은, 나를 보호하는 동시에 나를 더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왜 자꾸 괜찮다고 말하는지 생각해봤다. 내가 두려웠던 건 누군가의 동정도, 무심한 시선도 아니었다. 나 자신이 내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고 한다. 괜찮지 않을 땐, 솔직히 말해보려고. 아직 서툴지만, "오늘은 좀 힘들어"라고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누군가의 다정한 말보다, 내 진심을 외면하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가끔은 그 ‘괜찮아요’라는 말이 정말 진심일 때도 있음을, 스스로에게도 인정해 주려고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때로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가도 된다는 위로를 주는 말이니까.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들이, 조금씩 늘어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진심으로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길, 조용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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