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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말을 흉내낼 때

by 윤하루


낮엔 괜찮았던 마음이 밤이 되면 다시 흔들린다.

그 조용한 틈을 타서, 생각이 말을 흉내내기 시작한다.

나는 입을 다물고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단어들이 흘러나온다.

속삭이지도 않았고, 발성도 하지 않았는데

그 말들이 어딘가 ‘말한 것 같은 느낌’으로 내 안에 남는다.

말하지 않았는데 말한 것 같고, 생각했을 뿐인데 누군가 들었을까 싶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고,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소리는 그저 지나간 바람, 움직이는 물건, 어쩌면 환청에 가까운 착각.

그 순간 나는 묻는다. “방금 그건 내가 말한 걸까? 아니면 그냥 생각이었을까?”

질문은 반복되고, 대답은 없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그래도 난 말하지 않았어’라는 말을

수없이 속으로 되뇌인다.


생각이 말을 흉내낼 때, 가장 힘든 건 구별이다.

내가 입을 열었는지, 그냥 속으로 떠올렸는지조차 헷갈리는 순간들.

입술이 살짝 움직였던 것 같기도 하고,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확신은 있지만

그래도 마음 한쪽은 계속 불안하다.

“정말 괜찮은 걸까?”

“혹시 누가 들었을까?”

“혹시 나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냈던 건 아닐까?”


이 찝찝함은 오래 간다.

짧게 스친 생각은 금세 사라지지만,

그 생각이 남긴 찜찜함은 몇 시간이고 머릿속에 맴돈다.

마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나타난 듯, 그 말은 계속해서 돌아온다.

그리고 그 말이 다시 내 마음을 흔든다.


사실 말한 게 아니라는 건 안다.

나는 입을 다물었고, 그 순간에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밖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건 단지 지나간 생각일 뿐이다.

그럼에도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생각이 말을 흉내냈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다시 긴장하고,

또 다시 확인하고, 조용한 방 안에서 천천히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금은 그 혼란을 ‘생각이 말을 흉내낸 것’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엔 그게 말인지, 착각인지조차 몰라서 더 무서웠다.

하지만 이제는 구별할 수 있다.

‘지금은 속생각이야.’

‘입 밖으로는 말하지 않았어.’

‘이건 불안이 만들어낸 왜곡일 뿐이야.’


그렇게 말해주는 나 자신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아직도 찝찝함은 남지만,

예전보다 덜 흔들리고, 덜 의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순간들을 계속 참고, 견디고,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건 생각이었고,

말을 흉내내던 생각이었을 뿐이다.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고, 그게 지금 내가 붙잡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는 그런 생각이 지나갈 때마다

“아, 또 흉내 내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그래서 너무 놀라지 않고, 너무 오래 붙잡지도 않는다.

그저 “또 그랬구나,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며

지나가는 걸 허락한다.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건 중요한 진실이다.

내가 붙잡을 수 있는 현실의 가장 강한 끈이다.

그리고 그 끈을 붙잡고 있으면

언젠가는 더 가볍게, 더 확실하게

그 모든 순간을 지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지금도 나는 그 연습을 하고 있다.

오늘도, 생각이 말을 흉내내고 있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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