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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느려도 괜찮다고 믿기까지

by 윤하루

나는 늘 신중했다.
아니, 조심스러웠다.
누군가는 단호하게 앞을 향해 걸었지만, 나는 늘 멈칫했다. 생각이 많았고, 그래서 행동도 말도 더뎠다.

내가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진 않을까.
내가 내린 결정이 나중에 후회로 돌아오진 않을까.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가능성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생각이 많다는 건, 때로 나를 보호하는 벽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벽이 나를 가두기도 했다.

“그냥 해봐.”
주변에서 듣던 그 말들이 나는 어려웠다.
‘질러보는’ 순간마다 마음속에서는 수십 번의 질문이 오갔다.
이게 맞을까?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발표를 앞둔 교실에서, 심장이 뛰었다.
“내 말이 틀리면 어쩌지?”
친구들은 자신 있게 손을 들었지만, 나는 늘 숨을 죽였다.

회의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머릿속 문장이 수차례 바뀌었다.
“이건 너무 당연한 얘기 아닐까?”
“분위기에 맞지 않으면 어쩌지?”

말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내 마음속에 쌓여갔다.
그리고 나는 점점 작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조심성은 단점이 아니에요. 그만큼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려는 마음이잖아요.
다만, 그 마음에 스스로가 너무 지쳐버리면 안 되는 거예요.”

그 말은 내게 위로였다.
조심성은 나쁘지 않다.
생각이 많다는 건 사려 깊다는 뜻일 수 있다.
나는 조금씩 그걸 이해해갔다.

물론, 나는 여전히 빠르게 결정하지 못한다.
말 한마디도 여러 번 곱씹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 느림이 부끄럽지 않다.

나는 왜 이런 성향을 갖게 되었는지 안다.
어릴 때부터 “틀리지 마”, “실수하지 마”, “예의 바르게 행동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행동이 괜찮을까?’라는 질문이 늘 앞섰다.

혹시 너도 그런가?
무언가 하려는데 마음속에서 수많은 질문들이 튀어나와 멈칫한 적.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나를 조금씩 받아들이려 한다.

빠른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은 고민 없이 나아가는 것 같다.
많은 걸 경험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들만의 속도가 있듯, 나도 나만의 속도가 있다.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리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지금은 그렇게 믿는다.

그 믿음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아마 빠르게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그것이 나에게 가장 정직한 걸음임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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