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ARCHIVE」, 작별이라는 또 다른 서막

: 작 서준

by 포도상점

희곡 「ARCHIVE」 - 서준 작

러닝타임 90분

배우 총 6명 (여자 3명, 남자 3명)





최근까지 너무 고전적인 작품만 리뷰한 것 같아서, 이번에는 최근의 작품을 리뷰해보려고 한다. 이 작품은 항해라는 프로젝트성 극단의 창작극으로 보게된 극이다. 내용적인 측면보다는 스토리의 전체적인 플롯이 나름 깔끔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사실은 필자가 참여한 극이었다. 하하… 다만, 리뷰를 함에 있어서 추억 보정은 일절 배제하고 희곡 자체만으로 판단할 것이다. 또한 2개의 측면에서 극의 특징점과 신선한 부분을 다뤄보려고 한다. 최종적인 희곡은 거의 대본의 형식으로 해당 리미티드 공연에 대해서 핏하게 작성이 되어있어서, 이 부분은 최대한 제외하고 다루어 보겠다.


60대 여성이 나와서 청심환을 두 개나 먹을 정도로 긴장한 상태로 본인 소개와 이 장소의 소개를 한다. XRMD 라는 구식 기억 현상기를 이용해서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준다고 한다. XRMD는 '아카이브'라는 말을 인식해서 작동하는, 마치 '시리'같은 느낌의 기계이다. XRMD를 이용해서 본인의 기억의 현상을 시작한다. 상자를 들고 등장하는 박규광, 정윤주가 나타난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듯한 그들은 안부를 주고 받다가, 곧이어 강지필이 등장한다. 강지필은 숙제를 다했냐고 묻고, 유경은은 다 해갈 것이라고 하지만, 무언가 망설이는 듯하다. 아줌마가 된 경은을 보면서 다같이 웃다가, 경은이 인물에 대해서 한명씩 소개를 시작한다. 지겹도록 붙어다녔던 그들은 강지필이 선생이고, 나머지는 그의 제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나긴 아이스브레이킹을 끝으로, 강지필이 이야기를 시작하긴 해야하는데, 어떤 이야기를 시작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다가, 정윤주가 수업듣던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떻냐고 하자 좋은 생각이라며 그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한다. 경은이 버튼을 누르자 3명이 상자에서 옷을 꺼내서 입는다. 상자는 그들의 기억 주머니인 듯 싶다.


수업의 장면으로 기계가 장소를 바꾸고, 경은이 기억 속의 나이가 되어 상영된다. 곧 이어 강지필이 수업을 시작한다. 웃고 즐겁게 수업을 진행하는 중에, 강지필이 비지스의 홀리데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이에 대한 가사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수업은 영어 수업인 듯 싶다. 규광은 새벽까지 시다일을 하느라 졸고, 문장에 대해서도 경은은 못 배웠다고 놀리지 말라며 농담을 주고 받고, 윤주는 못하겠다며 기가 죽는다. 이에 지필은 그것이 무엇이든 너희들이 해석하는 그대로가 너희들만의 답이 되는 것이라며 격려하고, 이를 숙제로 내어준다. 아마 최초에 나온 숙제라는 것이 이 내용을 말하는 것 같다.


다음 문장을 이어서 설명하게 되고 즐거운 수업 분위기를 이어간다. 학생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지필은 자세하고 꾸준히 설명하고, 학생들도 앞선 문장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있었으나 잘 따라가려고 노력한다. 괴로워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는 지필은 수업을 끝내고 간단하게 안부를 묻는데, 윤주는 출판사 일을 지원했으나 중졸의 이유로 떨어지고, 경은은 식당 일 중 손님과 다투게 되어 해고됐고, 규광은 어머니께서 수술을 마쳤지만, 일단은 지켜봐야한다는 등의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안부를 나눈다. 이때 갑자기 기계가 멈추면서 화면이 꺼지고 부품이 교체되어야 한다는 에러 메세지를 말한다. 그런 뒤에 잠시 세 인물의 서사를 담은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가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이다. 각자의 내면의 독백이 끝나고는 다른 장면으로 넘어간다.


정윤주: 어떻게든 살려고 버티다 보니, 지금은 잘 안보여요.
박규광: 여러분이 보시기엔 그냥 제가 한 행동이 정당한 행동이다, 이런 식으로 변명하는 놈으로 밖에 안 보이시겠죠. 이해합니다.
강지필: 이게 당신들이 그렇게 외치던 대한민국입니까?

박필남과 박은혜의 집으로 장소가 바뀌었다. 은혜 어머니는 외출 중이고, 영희 어머니가 반찬 통을 가져다준다는 연락을 시작으로 탈주범들이 돌아다니니 조심하라는 이야기가 오간다. 이때 영희 어머니인줄 착각하고 노크 소리에 문을 열어주지만, 영희 어머니가 아닌 유경은, 정윤주, 박규광, 강지필 4명이 흉기를 들고 들이닥친다. 가족을 제압한 4인방은 아이러니하게도 무릎을 꿇고 3일만 지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필남은 승낙하며 무기를 내려놓고 말하라고 하며 상황을 정리한다.


필남은 식사를 제안하고, 지필이 괜찮다고 하지만 필남이 강하게 권유해 같이 식사를 하게된다. 필남이 식전 기도를 올리고 나서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한다. 그 뒤에 4인방이 치우는 걸 맡기라고 하고는 각자 식사 뒷정리를 한다. 이때 뒷 정리 중에 규광과 경은의 싸움이 일어나고 지필이 강하게 저지한다. 이에 분위기가 굉장히 날카로워지는데, 필남이 술을 권유한다. 지필은 승낙하게 되고, 술자리가 시작된다. 필남은 캪틴 큐를 따르며 농담을 건내고, 분위기가 조금 풀어진다. 그리고는 술을 어느정도 마셨는지, 경은과 규광이 속에 곪아있던 아픔을 말하기 시작한다. 필남이 위로를 건내고, 여기까지 오게된 경위를 조심스래 물어본다. 지필은 대한 그룹 2세가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없음 판결이 난 사건을 꺼내고 우리 쪽은 아무도 없었다며, 그 재판의 당사자 였다는 말을 꺼낸다. 이후는 말하지 않는다. 이에 필남은 파도와 바람이 있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격려한다.


박필남: 너희들은 서로의 파도가 되고 바람이 되어라. 그러면 아무리 흔들려도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게 될거다.


과하게 마신 듯, 필남은 자리를 정리한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술에 취해 더 마시자고 하지만 이내 자리가 정리된다. 정윤주와 박은혜가 자리에 둘만 남게되고 서로 속을 터놓고 대화하게 된다. 은혜는 다방에서 일하고 탈주범인 윤주이지만, 그 내면의 순수함을 엿보고 윤주가 살아있다고 말한다.


박은혜: 언니는 껍데기만 살아있는 상태거든. 그래서 네가 참 부러워. 그리고 또 한편으론 미안해.


은혜가 원망스러운 세상에 대해서 괜찮다며 위로하고, 다음에 같이 놀러가자는 말을 하는데, 이후에 윤주가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는 어떻게 죽는 게 멋있을까라며 웃으며 말한다. 이때 지필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하며, 상황을 정리시킨다. 지필은 주변을 좀더 지켜보겠다고 나가고, 남은 각자는 잠을 청하려고 한다. 서로가 농담을 꺼내면서 사과하고, 웃고 떠들면서 잠에 든다.


날이 밝고, 경찰이 문을 두드리며 찾아온다. 이때 4인방은 다시금 도주를 결정하고 준비를 갖추기 시작한다. 박필남과 박은혜는 식사를 권하지만 지필은 먹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밤이 되고, 은혜가 지필에게 아무일도 없이 무사히 빠져나가기를 바란다며 격려하고 지필은 감사의 말을 꺼낸다. 이때 들어가려던 은혜를 붙잡고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의 마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달라고 말하며, 은혜가 기도한다. 직후에 상황이 바뀌면서 인질극이 시작된다.


경찰은 은혜를 인질로 잡고 있는 지필에게 자수하라고 하지만, 지필은 강하게 거부하며 세상과 대화하고 싶다고 하지만 묵살당한다. 지필은 위협 사격을 하고, 1시간 뒤에 봉고차 한 대를 대기시키라고 하고 집안으로 돌아온다. 4인방은 무릎을 꿇고 가족들에게 사죄하고 경은에게 차가 준비되어 있는지 확인해보라며 내보낸다. 경은이 돌아왔지만, 되려 지필은 경은에게 위협 사격을 한다. 이에 경은이 왜 하필이면 나였나며 그냥 쏘지 그랬냐며, 왜 살렸다며 물어본다. 윤주와 규광도 경은을 보내기로 마음먹었었고, 결국 경은은 자수 처리된다. 이때 상황이 정리되는 듯 싶었으나, 규광과 윤주가 화장실에서 자살한다. 이에 지필이 경찰들 앞으로 나오고, 그들과 수업할 때의 부르던 노래인 비지스의 Holiday를 틀어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한다. 강지필은 경찰의 총격을 맞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죽었고, 이후에 법정에서 박은혜는 인질이었으나 자결 직전에 윤주와 규광이 건내 준 종이를 읽으며 정상참작을 부탁한다. 그리고는 처음 화면으로 바뀌며, 그대로 규광, 지필, 윤주가 서있고 경은이 기억 속의 일을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 말을 한다. 그리고는 현재의 경은이 그때의 경은으로 바뀌며 그 날의 일들을 하나하나 잊지 않고 사죄하며 살아가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죽은 사람인 3명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다.


유경은: 우리에게 한번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그땐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어. 지금까지 고마웠어. 잘가, 나의 파도, 나의 바람.


경은이 운영하고 있는 옛 기억을 현상하는 현상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듯 하다. 구조적으로 특이한 점이 보여 그런 부분을 짚고, 연출적이나 상황적으로 돋보이거나 돋보일 수 있는 부분들을 말하고 싶다.


먼저 최초에는 기억 현상 장치는 저장된 사용자의 기억을 현상하는 것으로 이해를 했으나, 나오는 인물과 소통이 가능한 점에서 약간의 모호함이 있다. 여기서 수업이 끝난 직후에 영상 내의 세 명의 독백이 이어지는데 이는 실제의 기억이 아니므로 완벽한 기억을 형상화 한다기 보다는 경은의 시점에서의 기억을 재구성한 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영상은 경은이 상영을 목적으로 재구성한 영상이라는 뜻이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 현상소 영상의 내용을 다루므로 경은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지, 혹은 만들어냈을 때의 상황과 생각을 생각하면서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 번만 읽어보았을 때에 이해도가 약간 떨어진다. 최초에는 그런 점을 고려해서 경은이 중간 중간에 나와서 상황을 설명했으나 북가좌동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완벽히 해당 상황의 재현이기 때문에 통일성이 떨어져서 구조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 다만 기억을 현상하는 장소라는 참신한 소재가 인상적이고, 경은이 현재의 경은과 과거의 경은을 오간다는 포인트가 연출적으로 다양한 방면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돋보이는 것 같다.


플롯 구조의 특이한 점이 장소의 참신함에서 나왔다면, 인물 구조의 특이한 점은 중심인물이 있다기 보다 모두가 중심인물로 보인다는 점인 것 같다. 갈등 자체가 매우 직관적으로 작성이 되어있고 해당 상황에 대해서 인물의 내면 또한 갈등 상황 자체에 대해서 잘 표현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인물의 내면의 독백이 자주 보이는데, 열심히 살지만 녹록치 못한 자신의 삶의 상황, 탈주범으로써의 자신의 상황 등의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인물의 생각이 그 내용을 이룬다. 독자 입장에서는 인물의 생각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점이 좋은 부분인 것 같다. 다만 독백이나 대화 등에서 인물 간의 관계에서 나오는 생각 및 갈등은 크게 없어보이며, 박은혜의 경우 껍데기만 살아있는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면은 상황과 결부되었을 때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없지않아 있다. 행동들에 대한 이유는 잘 보이나, 인물 간의 관계성 및 대화로 풀어냈다면 좀 더 희곡의 장점이 살아나지 않았을까?


연출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현재와 과거의 경은이 오가는 부분에서 시도해 볼만한 것들이 많을 것 같다. 이동의 자연스러움과 명확성이 반대관계로 생각되기가 쉬운데, 어떻게 만들어낼지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또한 조명과 음향에 대한 내용이 명확하게 적혀져 있어서 어떤 조명과 음향을 사용하는 가에 따라서 극의 구성이 많이 바뀔 것 같다. 가령, 캪틴 큐를 마시기 시작하는 부분에 음향이 흐르며 조명이 들어온다는 상황 지시문이 있는데, 어떤 음향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뒤의 박필남의 스탠스가 많이 바뀔 것 같다. 또한 현상 기기에 대해서도 기기의 형태에 따라서 상황의 연출이 달라질 것 같다. 기계의 위치, 모양, 크기에 따라서 연결되는 부분들에서 나오는 연출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드는 관건이 될 것이다.


경은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에 언급한 '평생 기억하고 사죄하며 살아가겠다.'를 실천하기 위해서 기억 현상소를 운영했다. 당시에는 과분하게 힘든 상황에서 4명이 서로의 힘이 되어 주며 악착같이 살았다. 하지만 힘든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더 큰 시련이 닥쳐 4명이서 모종의 범죄를 저지르고는 탈주범이 되어 도망자가 되었다. 도망자가 된 경은은 다른 3명의 의지로 자수하게 되고 혼자 살게 되었다. 현상소에서 재구성한 영상을 계속해서 사람들과 함께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계속해서 과거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내 경은은 악착같이 살았지만 신에게 버림받은 것과 같은 인생인 것이 아니라, 불운한 날들임에도 그 속에 4명이 같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인생이라는 항해 속에서 파도와 바람은 필연적인 것임과 동시에 어찌될지 모르는 그야말로 미지수이다. 그 곳에서의 불운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서야 비로소 울고, 웃고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던, 행복한 여행이었음을 깨닫는다. 지옥같았던 과거임에도, 한번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녀의 과거와의 작별 인사를 통해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 마지막의 작별 인사는 끝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다. 그녀는 지금을 기점으로 새로운 유경은이 되어서 앞으로를 새로운 작별과 함께 살아나갈 것이다.


무언가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가 되면 보내주게끔 되어있고, 보내주고 나면 새로운 것이 찾아온다는 메세지가 여운이 남는다. 필자가 전하고 싶은 메세지는 이런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을 다시금 읽으니 마치 경은처럼 예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누군가는 음악을 통해서 상황을 기억하고, 음식을 통해 장소를 떠올린다. 극에 참여했을 때 울고, 웃고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필자에게 매우 소중한 극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W. 에디터 아마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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