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되다 만 것」, 강 건너 불구경

: 작 강병준

by 포도상점

희곡 『되다 만 것』 - 강병준 작


러닝타임 15~20분

배우 총 3명 (무 2명, 남 1명)






작년 하반기, 광운대학교 '광운극예술연구회'의 가을 단막극제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그중에 제일 첫 번째 순서로 위치했던 작품인데, 나름 신선했던 작품이었다. 연출적인 부분도 그렇고, 스토리텔링 부분도 기존 연극과 좀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본을 읽어보게 되었다. 제목부터 보자면 <되다 만 것>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인격적으로 좀 덜된 것의 이야기인 것 같다. 단막극인 만큼 그 내용도 길지 않다. 15분 내외의 러닝타임이었으므로 짧게 내용을 짚어보겠다. 극에는 장 과장, 악마, 천사가 등장한다. 극은 누구 하나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고, 3명이 거의 동일한 분량을 가져가면서 악마가 조금 더 할당되어 있다. 여기서 악마의 첫 대사를 시작으로 극이 전개되는 것 같다. 천사와 악마는 구면인 것 같은 정도의 친근함을 보인다. 악마는 연극이 시작함을 알림과 동시에, 본인이 말하고 있는 것이 대본의 것임을 명확히 아는 듯한 얘기를 한다.


자자! 연극 시작하자구! 조명 감독님! 조명 틀어주세요! 아! 너무 밝잖아요! 조금만 어.. 어어.. 그래 이제 됐네!


천사는 천사 교육을 막 마친 졸업생이다. 천사 교육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모든 천사가 받는 교육인 것 같다. 둘이서 장 과장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장 과장은 회사의 일로 피로감에 찌든 사람이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탱하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다. 이때 장 과장의 '다시 태어나고 싶다.'라는 말을 듣고 악마가 현실에 나타난다. 악마는 단순 변덕과 재미를 위해서 장 과장을 과거로 보내주겠다고 말한다. 천사는 악마의 말은 원칙에 어긋난다며 원칙 아래에 있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라고 말한다. 원칙이 없는 자유는 그저 혼돈일 뿐이라면서 장 과장에게 악마의 말을 듣지 말라고 설득한다. 하지만 결국 장 과장은 악마의 제안에 넘어가고 과거로 돌아간다. 악마는 23살로 돌아가서 살아온 장 과장을 현재 시간에 병원에서 맞이한다. 장 과장은 미래의 일어날 일들을 토대로 대단히 성공한 CEO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산부인과에서 딸만이 태어나기를 고대하던 장 과장은 딸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으며 악마에게 물어본다. 악마는 딸의 영혼을 대가로 과거로 돌아간 것이라며 장 과장에게 되레 화를 낸다. 장 과장은 천사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하지만 천사는 원칙에 어긋난다며 거절하고, 악마를 제외한 인물들이 모두 절망한다. 이때 관객에게 방백 하며 퇴장한다. 천사의 의미심장한 말로 극은 마무리된다.


연극 끝났어요. 조명 감독님, 조명 꺼주세요.


먼저 신선한 점은 인물들의 대사가 꽤나 코믹하다는 점인 것 같다. 천사와 악마가 있는 만큼 현실성은 좀 떨어지며, 설명이 필요할 부분 같은 경우에도 많이 생략이 되어있다. 가령 ‘천사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운다’라는 암시적인 부분, 서로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르겠는 악마와 천사에 대한 설명, 장 과장을 설득하는 부분에서 천사만의 고유한 논리가 없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런 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일종의 관객의 인물에 대한 몰입이나 상황적인 설득성을 가지려고 희곡이 있는 게 아니라 마지막 방백을 관객들에게 말하기 위한 작가의 빌드업으로 보인다. 희곡 내에 장소에 대한 설명이나 인물의 내면, 행동 지시문 등이 적고 흐름 단위로 거칠게 작성되어 있다. 실제로 봤던 연극의 연출이 본 희곡의 작가였는데, 작가가 구상한 극 구성과 필자가 읽으면서 상상한 극 구성이 많이 다르다. 이는 창의력의 영역이고, 비교하면서 읽는 게 나름 재밌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마지막의 악마가 방백을 하는 장면에서 실제 극은 매우 에너지가 높고 감정을 많이 사용하며 무대 중앙에서 말했었는데, 실제로 대본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악마가 되레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하면 앞에서 보여줬던 농담들이 진짜 악마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은 연출의 차이이므로 실 연극도 재밌게 보았다.


이런 걸 제4의 벽이라고 하지.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다들 아까까지는 즐거웠잖아. 왜 이렇게 죽상이야? 남의 인생이잖아? 연극이잖아? 다들 이 방 나가면 남이사 어떻게 되든 신경도 안 쓸 거면서. 아휴 되다만 천사 같으니라고.

대본 내에서 악마는 조명 감독, 연출, 무대 팀 등의 연극을 올린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다. 이는 이것이 연극임을 계속해서 상기시켜 주고 마지막에 관객에게 연극인데 뭐 하러 그렇게 집중하냐는 말과 연결된다. 이런 식의 흐름은 꽤 신선하면서 멋진 것 같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게 느껴진 아쉬움은 있지만, 대본 전체적으로 기존의 것들과 차별점이 명확해서 즐겁게 읽었다. 신선한 흐름이었고, 기회가 된다면 작가님과 필자의 생각을 대화로 비교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희곡이었다.



W. 에디터 아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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