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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bear May 29. 2023

정의란 무엇인가 리뷰

 저자:마이클 샌델


 이 책의 리뷰 방향은 저자가 생각하는 정의의 관점을 최대한 압축적으로 소개해보고자 한다. 크게 세 가지의 정의론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공리나 복지의 최대화 두 번째는 자유주의 세 번째는 미덕과 공선이다. 두 번째 자유주의는 자유지상주의적 자유와 평등자유주의적 자유가 나뉘는데, 칸트의 자유와 롤스의 자유를 소개할 것이다.

 

 첫 번째: 공리의 최대화

이 주장의 핵심은 간단하다. 공리주의의 핵심인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와 같이 질적인 요소는 고려하지 않는 우리가 흔히 아는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말한다.) 말 그대로 다수가 행복 것이 사회적으로 볼 때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의 최대장점은 사회 정의에 대한 판단을  수치화시켜 계산하는 것이니, 쉽고 빠르고 직관적이다. 반대로 단점 역시 수치화시켜 계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떠한 개인의 희생으로 다수에게 이익이 돌아가면, 개인의 희생이 어떠한지 상관없이 사회전체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에 인권 따위는 무시해 버릴 만 여지가 많이 존재한다.(공리주의가 반드시 개인의 인권은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고 그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두 번째: 자유주의

자유지상주의적 '자유'는 쉽게 말해 기계적 자유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경제학적으로 예로 들면 고전학파의 마인드이다.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면, 시장에서의 활동을 통해 어떤 부류는 많은 부를 축적할 것이고 다른 부류는 그렇지 않을 것인데  정부가 여기에 대해서 부를 재분배하거나 하는 등의 간섭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칸트가 말하는 '자유'는 위에 언급했던 자유보다 상당히 엄격한 개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내가 배가 고파서 배를 채우려고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데, 햄버거를 먹을지 피자를 먹을지 두 가지 선택 중에 하를 선택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어떤 생물학적 법칙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 본질적으로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로 내가 자유로우려면 어떤 생물학적 법칙, 물리법칙이 아닌 스스로가 부여한 법칙에 의해서 행동해야 한다. 즉 스스로 부여한 의무 따라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부여한  도덕법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것이 보편적 준칙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자유롭고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보았다.(내가 부여한 어떠한 도덕 법칙이 있는데 그러한 것이 반사회적인 행동을 상정하고 있다면 이것은 옳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롤스가 말하는 '자유'는 쉽게 말해서 임의적 요소가 배제된 부분에서의 '자유'를 말한다. 롤스는 단순히 각 개인의 '합의'한 행동은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합의를 한 각 개인 사이에 힘이 불균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롤스는 우리가 사회적으로 어떤 합의를 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그 합의가 되어야 하는지 설명한다. 예를 들어 내가 살아갈 사회는 개인이 남자, 여자 부자 혹은 가난한 사람 등등 내가 임의로 선택할 수 없수 없는 정말 원초적으로 평등 상황에서 결정하는 것이 진짜 자유로운 행동이라고 보았다. 그러한 관점에서 롤스가 생각한 정의는 '임의'적인 요소가 배제되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칸트와 롤스가 말하는 자유의 공통적인 특징은 우리는 자유로운 선택권을 지닌 독립된 존재라는 것이다.


 세 번째: 미덕과 공동선

미덕과 공동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추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자격 있는 사람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재화를 공정하기 배분하기 위해서는 각 재화의 텔로스 즉 목적을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슨 말이냐면 어떠한 의사결정을 할 때 올바른 목적이 있으니 그 목적대로 의사결정이 행해져야 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누가 최고급 샤프를 가져야 하나? 와 같은 물음이 있을 수 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가져야 한다와 같은 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미덕, 어떤 것이 공동체를 위한 선인지 판단하고 그것에 영예를 부여한다.

 

 세 가지의 정의론 중 샌델교수님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정의론은 세 번째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찰하는 정의다. 왜 그런 것인가 하면, 우선 공리주의는 위에서 언급했듯 쉽고 간단하다. 대신 모든 걸 계산해서 판단하기 때문에 개인의 인권이 무시될 여지가 크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자유주의적 정의론이 미덕의 배양과 공동선의 고찰에 밀린 이유는 전자가 설명하기 까다로운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국가적 차원의 배상문제를 생각해 보자. 일본과 같은 전범국들이 피해를 입힌 나라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만약 자유주의적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대답하기 쉽지 않다. 자유주의 셋 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데, 내가 행하지도 않는 책임을 사과하고 배샹해야 한다고 하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내가 소속한 나라나 집단에 대해서 애국심과 연대의식을 느낀다고 한다면 사과를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다. 즉 애국심과 연대의식 같은 것들의 텔레스가 올바르다고 한다면, 그것을 배양해야 할 미덕으로 본다면 전범국들에게 사과를 요구 할 당위가 생긴다.


 짧게나마 개인적인 감상평을 한다면 나는 칸트나 롤스의 자유주의에 더 마음이 쏠린다. 세 가지 정의론 중 셋 다 완벽하게 작동한다고 생각하면 세 번째 방법이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내는데 나 또한 동의한다. 하지만 내 성향은 위험기피자에 가깝다. 어찌 됐든 세 번째 방법은 결국 어떠한 판단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르게 작동하지 않았을 때, 우리는 끔찍한 일들을 무수히 겪었다. 특히 전체주의, 파시즘, 나치즘으로 필두한 세계전쟁이 그렇다.  물론 셋 중 하나를 굳이 꼽자 한다면 내 마음이 두 번째 정의론에 가깝긴 하지만 현대 사회가 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가 떠오른 만큼 세 가지 정의론 중 단 하나만을 택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세 가지 정의론 중 절충되거나 필요에 의해서 섞일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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