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다르듯 가상일(규정과 매뉴얼)과 현장의 실제일은 동일하지 않다. 따라서 규정과 매뉴얼만으로는 현대사회의 안전은 지켜질 수 없다. 항상 변화하는 환경과 조건에 맞추어 모든 매뉴얼과 규정을 만들 수도 없으며 그 상황을 예측할 수도 없다. 그런 이유로 가상일과 실제일 간의 격차 제로화는 불가능하므로 사고 제로화를 주장하는 제로 비전(Vision zero) 안전정책은 사실상 허구이다.
더구나 인간행동의 변동성도 늘 공존하므로 가상일과 실제일 간의 경계와 격차는 더욱 커지게 된다. 자신과 조직의 부정적인 영향을 피하기 위해서도 현장의 실제일은 변동되며, 현장의 효율성과 생산성 향상의 이유로 격차는 더욱 커진다. 격차가 커지면 리스크라는 불확실성도 커지므로, 어디에나 항상 존재하는 이러한 격차와 경계를 최소화/분산화/최적화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안전안심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현재까지 우리가 배운 안전대책은 실패와 사고로부터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제거하고 예방하려는 시도만을 편향적으로 배웠다. 리스크라는 불확실성 요소에는 긍정과 부정요인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지만 리스크의 사전적 의미인 위험과 부정적인 요소로만 간주하여 모든 리스크를 제거하는 정책만을 배웠다. 따라서 긍정요소까지도 모두 제거하여 결과적으로 시행착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귀중한 경험들도 원천 제거함으로써 우리의 상황대응 능력은 점점 약화되었다.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능력을 요구하며, 그 능력은 해당시스템 상황의 본질과 부합해야 하므로, 어제의 모든 개념과 도구는 오늘의 상황에 대응하도록 재해석하고 재정립해야 한다.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책임과 의무는 우리 모두에게 있으며, 안전의 일차적인 책임은 각자에게 있으므로 최우선적으로 스스로 안전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주변의 각종 리스크에 대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집중하기보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상호 간 소통능력을 향상해야 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세상이나 제도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스스로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