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직업일기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이든... 세상의 이치랄까? 이런 세상의 이치를 새삼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하면서 더욱더 뼛속까지 깊이 깨닫고 있는 나는 현직 외국항공사승무원이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그 다른 어떤 직업들보다도 장점과 단점이 매우 뚜렷하다. 그래서 그렇게 어렵게 승무원이 된 후, 모든 승무원들이 이 명확한 장단점으로 인해서 그 다음 인생의 챕터를 어떻게 써 내려가야하는지, 과연 그만 두고나서 내 스스로가 이 직업이 주는 장점들과 비행을 그리워하지는 않을 지를, 몇 개월은 좋을 지라도 그 이후에 펼쳐질 새로운 미래에 대해 두렵고 후회하지는 않을 지를 짬이 차고나면 매 순간마다 걱정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고.
승무원이 주는 단점은 무엇이 있을까? 여러분들도 다 알겠다만, 현직으로서 좀 더 자세하게 정리해보자면..
첫째. 식습관으로 인해 건강 관리가 매우 어렵다는 것. 처음에 비행을 시작하고 몇 개월간은 미친듯이 비행이 끝나면 라면을 찾았더란다. 지금도 가끔 그렇지만, 많이 초반에 비하면 나아졌다. 기압으로 인해 장기가 쪼그라들었다가 유니폼을 벗고 땅에 내리면 갑자기 허기가 확 드는데, 그럴 때 밥을 먹고 피곤해서 바로 잠들고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목구멍이 따갑고 그렇다. 그렇다. 평생 살면서 겪어본 적도 없던 역류성 식도염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기내음식이 방부제도 많고 몸에 안 좋은 것을 잘 알기에 비행기에서는 잘 안 먹는다. 그러니 이렇게 안 좋은 식습관이 나도 모르게 건강을 헤치고 있는 중이다.
둘째. 시차과 다양한 출퇴근 시간으로 인해서 건강이 망가진다. 스케줄 근무 상 출퇴근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특히나 밤을 새야하는 오버나잇 턴어라운드 비행과 야간에 출발하는 늦은 비행들의 경우는 여전히 아침형 인간인 나를 괴롭게 만든다. 잠을 못자고 출근하는 날이 많으니 일하다가도 실수할까봐 내 스스로를 채찍칠하기도하고, 그렇게 미친듯이 일하고 정신차리자고 다짐하면서 비행을 한다. 그렇게 비행이 끝나면 나의 바디클락 (신체 시계)은 정말 망가져버린다. 남들은 출근할 시간에 나는 퇴근하고 자고 일어나니 남들은 이제 퇴근하는 시간에 눈을 뜨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리고 다음 날 스케줄은 갑자기 저녁 출근이 아닌 아침 출근으로 시간이 확 바뀌는 경우가 많으니 잠과 시차의 싸움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셋째. 몸이 정말 중요한 내 재산이 되어버린다. 물론 당연지사 사람에게 건강이란 제일 중요한 것이 맞다. 허나 직업상으로 본다면, 확실히 내가 이전에 근무했던 직업들보다는 이 승무원이라는 직업에서 요구하는 내 신체란 정말 중요해짐에는 틀림이 없다. 일하다가 허리를 다치기도하고, 발을 다치기도하고, 어디하나 나도모르게 멍 들고 찢기기가 일수다. 특히나 허리를 다치면 정말 정말 남은 인생에 있어서 치명상이니 그 어떤 직업들보다도 몸이 내 인생의 중요한 재산이 되어버렸다. 몸을 쓰는 게 주요한 일이다보니 이건 참... 그렇다.
넷째. 가족들과 친구들 등 소중한 인연의 경조사에 참여하기가 너무 어렵다.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거지만, 많은 경조사들이 생겨나는 중이다. 장례식, 결혼식,생일 등등 말이다. 그럴 때마다 소중한 인연으로서 참석하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스케줄 근무상 그게 참 어렵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족과 인연들의 소중함을 알게되는 시기가 나를 포함해서 누구든 다 찾아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 혼자 소외되는 것처럼, 참여를 못하는 내 스스로가 참 그렇다. 이 직업이 나를 가로막는 느낌이랄까.
다섯째. 승무원은 특수한 경력이다. 때문에 이 승무원 경력을 과연 승무원이 아닌 다른 직업에서 환영해줄지는 의문이다. 하늘 위에서 날아다니는 직업, 그 어떤 직업보다도 자유로운 직업인데 이를 환영해주는 직업이 과연 서비스직의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어디가 있을까? 참 의문이긴하다. 그러니 다들 승무원은 물경력이다, 항상 다음을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무직에서 항상 1년마다 안전관련해서 시험을 보는 경우를 보았는가?
여섯째. 항상 미래를 생각해야하는 불안한 직업이다. 코로나를 생각해보자. 바이러스하나로 여행업계의 그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닫혔던 시절. 그 때 트레이닝을 받던 승무원들, 그리고 근무한 지 얼마 안된 주니어승무원들 등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나가라고해서 퇴사하게 되었다. 그렇다. 힘이 없는 것이다. 또 우리의 미래에 코로나같은 바이러스가 안 생기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니 미래가 불안한 직업 중에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많은 승무원들이 승무원이라는 꿈을 이루고나서는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 지,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된다. 꿈을 이루고나니 그 다음 노선을 정하는 것이 정말 어려워지는 것이다. 항상 미래를 생각해야하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버티고 버텨서 직급을 달 것인지,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나이를 생각해서라도 다음 거주지를 어디로 잡을 것이며, 어떤 직업으로 어떤 다음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말이다. 이 부분은 국내보다는 외국항공사승무원들에게 더 많이 적용되겠다. 그렇다. 항상 다음을 위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하는 것이 승무원이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물쩡거리다가는 시간은 금세 흘러간다. 승무원? 오래 할 수 있겠지만 과연 오래 일할 수 있는 정년까지 할 수 있는 직업임에는 맞을까? 정말 소수밖에는 나는 잘 보지는 못했다.
이렇게가 내가 여러분들께 간단하면서도 굵직하게 언급할 수 있는 승무원의 단점이다. 물론 더 깊게 파헤쳐보자면 더 많겠다만 내가 느끼는 것들만 전달해주고 싶었다.
정리하고보니, 승무원의 단점이라하면 "건강적인 부분 + 항상 미래를 생각하는 불안정한 삶" 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마다 물론 느끼는 부분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결국 살아가면서 내가 어떤 부분에 더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서 나의 인생의 방향성은 달라지겠지. 그러니 어떤 직업이든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이 누군가에게는 장점이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는 거고, 다른 이에게는 단점이 크게 와닿는 것이겠다. 어느 부분을 더 크게 바라보고 선택하는 냐는 바로 각자의 몫이겠고.
나의 이런 글들이 여러분들과 더불어서 내게도 좋은 지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