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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Sep 14. 2024

짜증 날 땐 비빔밥!

EP. 비행일기_ 인천 

"짜증 날 땐 짜장면 ~ 우울한 땐 울면~ 복잡할 땐 볶음밥 ~ 탕탕 탕탕 탕수육!"

 이 노래를 알고 계신다면 여러분은 나와 같은 동년배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오늘은 짜증 날 땐 짜장면보다는 비빔밥을 외치게 된 며칠 전에 다녀온 인천 비행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한항공처럼 1년의 팀 비행이 아닌, 외국항공사의 매 비행마다 팀원이 바뀌는 환경은 어떻게 보면 참 좋다가도 짜증 난다. 승무원의 자질 중 하나로 'Flexibility', 즉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어본 승준생들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바로 이러한 일 하는 환경 때문이다. 매번 바뀌는 상사들의 지시사항과 일하는 스타일에 맞춰서 매 비행을 완수해야 하고, 매 비행마다 새롭게 마주하는 승객들의 요구사항에 맞춰서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환경. 이것이 바로 외국항공사 승무원의 유동적인 환경이고 이에 따라 승무원들은 고정적인 관점이 아닌 유연적인 관점과 생각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이번 인천 비행을 함께 한 사무장은 정말로 깐깐징어였다. 물론 트레이너 출신이기에 그렇다는 거야 이해는 하다만,  정말 하나부터 쓸데없는 것까지 너무 사소한 것으로 태클을 거시니 참 힘들었다. 다행인 건,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크루들도 정말 싫어했다는 것. 어쩐지 공항 가는 길에 함께 일하게 된 여자 선배한테 저 사무장이랑 일해봤냐고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여러 번 일을 해봤다는 그녀. 그녀에게 저 사람 어떻냐고 물어보니 그저 웃으면서 한번 겪어보라고 하더라. 순간 싸했는데 역시나... 왜 선배가 말을 안 했는지 잘 알겠더라. 나도 얼추 일을 한 지 꽤 되었는데, 너무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괜찮냐면서 말을 거시니 참 짜증이 났다. 이런 그를 잘 아는지 함께 일하게 된 선임 승무원도 무시하고 그냥 우리는 할 일만 하자고 말을 해주셨다. 이런 당신들이라도 만났으니, 다행이었다. 그러고 서비스가 끝나고 그 여자 선배에게 말했다. "이래서 네가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한 거였구나?" 하니 웃었던 그녀였다. 

 정신없는 서비스가 다 끝나고 나서 함께 일하게 된 남자 승무원이 내게 '히히, 짜장면!" "비빔밥!"이라고 말을 하면서 파이팅의 제스처를 취하길래 그를 쳐다보면서 나는 "엥?" 했다. 그랬더니 그는 본인은 항상 인천 비행을 할 때마다 파이팅 대신에 "비빔밥" 아니면 "짜장면" 혹은 "고추장"을 외친다고 했다. 즉 파이팅의 의미가 곧 본인이 짧게 알고 있는 한국어 단어인 셈이었다. 그리고 혹은 화나거나 짜증 나도 똑같이 외친다고 했다. 차마 쌍시옷 비읍과 미친 x은 다른 사람들도 다 잘 아는 말이라 말할 수가 없어서, 본인이 방금 짜증 나고 힘든 마음을 담아 짜장면과 비빔밥을 외친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 크게 현우가 터졌다. 참으로 신선하고 웃기면서도 좋은 방법이었다. 나중에 한국인 승객들 앞에서 한번 그렇게 고추장! 하면서 외쳐보라고 했더니 기겁을 하면서 절레절레했던 그. 생긴 건 무표정에 마치 티베트 여우 같은 인상이었는데 막상 친해지고 말을 나눠보니 참 엉뚱하면서도 재밌던 말레이시아 남자 크루 선배였다. 

 그의 좋은(?) 가르침에 힘입어서 우리 둘만의 코드처럼 비행 내내 나는 승객들이나 사무장이 화가 나고 짜증 나게 만들면 조용히 갤리로 들어가서 떡볶이!!라고 외치면서 이것저것 심부름들을 했었다. 그런 나를 보고 그 남자 크루는 웃으면서 아주 좋아하면서 나를 도와주었다. 

 인천에서 본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승객들 역시 응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분명 본인들은 밥을 안 먹을 테니 본인들 식사는 무시하라고 말씀하시길래 진짜냐면서 2번을 물어보고 확답을 받았다. 그러곤 모든 서비스가 끝나고 나서 울리는 콜 벨. 다가가니 배고프다더라. 혹시 먹을 거 있냐 하길래 간식거리들을 바리바리 챙기고 줬다. 그러고 한 10분 뒤에 울리는 콜 벨. '뭐야' 생각하면서 다가가니 간식 말고 뭔가 라면이나 배를 채울만한 것이 있냐 하더라. 하아... 진짜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이 열불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웃으며 혹시 원하시는 것이 있냐고 물어봤다. 꾸역꾸역 뭐가 있냐고 물으시길래 확인하고 오겠다고 말했고, 남아있는 음식을 설명하면서 따로 식사를 챙겨드렸다. 그렇게 식사와 디저트까지 야무지게 드시고 나서 아, 이제 됐겠지 했는데 10분 뒤에 울리는 다른 콜 벨. 뒷북 손님 옆에서 울리는 다른 승객의 것이었다. '뭐지' 하면서 열심히 걸어가니 그분 역시 똑같이 안 먹겠다고 했었지만, 시간이 지나 보니 배가 고파서 음식이 있냐 하더라. 하아... 속으로 '제발 이러지 말아라'라고 외치면서 또 그분을 위해서 식사를 챙겨드렸다. 그렇게 이미 식사 서비스는 끝났지만 혼자서 왔다 갔다 10번은 하면서 일하느라 고생에 고생을 했다. 

 그런 속에서 일어나는 열 불과 목 끝까지 차오르는 쌍욕의 욕구를 참으며 갤리로 들어갈 때마다 온갖 한국 음식을 찾았다. 떡볶이, 비빔밥, 고추장, 짜장면,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등. 그러면서도 옆에서 낄낄 웃는 남자 선배 덕분에 참 화가 나다가도 덕분에 금방 가라앉았다. 참 좋은 거 가르쳐 줘서 고맙더라. 차라리 쌍욕을 하는 것보다 이렇게 나만의 단어를 찾아서 말하니 나도 모르게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10여 년을 일하고 있는 그 선배만의,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방법과 지혜를 내게 알려준 것이 아닐까?   

 앞으로 이렇게 짜증 나고 힘이 드는 날이면 쌍시옷 비읍이나 미친 x보다는, 조용히 내가 좋아하거나 먹고 싶은 음식을 나도 외쳐봐야겠다. 이번 인천 비행은 비빔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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