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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Sep 14. 2024

승무원이 된 후 나는 P가 되고 있다

EP. 마음일기

"나 최근에 MBTI 검사 다시 해봤는데 나 N 나왔어."

"나는 원래 E였거든? 근데 이 일을 하고 나서 I로 나오더라." 

 MBTI 가 언제부터 유행이더라? 어느 순간부터 MBTI는 우리의 삶에 다가와 상대방과의 대화를 여는 하나의 소통의 주제이자 나 스스로와 상대방에 대해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평소에 마음공부에 대해 관심도 많은 나는 이런 MBTI 유행에 몹시 잘 휩쓸려가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의 창을 열 때 곧 잘 mbti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으로 물꼬를 틀 때가 매우 많다. 


 내 mbti는 ISFJ이다. 원래는 ESFJ인데, I와 E의 비율이 크게 차이가 많이 안나는, E가 좀 더 높은 사람이었다. 근데 승무원이 되고 나서는 I로 확 기울어졌고, 지금은 ISFJ이다. 그리고 요즘따라 다시 한번 더 해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J가 아니가 점점 P가 되는 것 같아서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인간은 모든 MBTI의 유형을 다 갖고 있다. 그중에서 어느 부분의 비율이 더 높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나도 어느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도 외향적이고 말도 잘 붙이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상상력이 풍부한 공상가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거나 할 때는, 마냥 감정적이지는 않다. 꽤나 단호하면서도 칼 같은 면모가 여실하게 드러날 때고 존재하고 굉장히 즉흥적이면서도 중간에 갔던 A길이 맘에 안 들어서 다시 되돌아서 B길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나 역시 모든 면을 갖고 있는 양면적인 인간이다. 

 나 스스로 P가 아닐까 의심이 되는 이유는 바로 승무원이 된 후, 다른 나라를 구경하고 경험할 때 나도 모르게 즉흥적인 행동이 튀어나와서이다. 예전의 꼼꼼하던 J의 성향이 짙은 나라면 분명 여행을 가기 하루 전에 꼭 노선을 정하고 장소를 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J의 모습을 띈 히히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미리 정하는 거? 그딴 거 없어졌다. 바로 그 나라에 도착하면, 씻고 나서 나갈 준비를 다 한 뒤에 천천히 찾아보았다. 나갈 채비를 마치고, 그제야 네이버와 구글 지도를 켜서 어디가 유명하고, 어디를 꼭 가야 하고, 무엇이 로컬 음식이니 이건 먹어봐야겠다고 정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대충대충말이다. 그렇게 얼추 정하고 나가면 그 루트대로 가는 경우도 많지만, 중간에 나도 모르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서 새는 경우도 많다. "아, 원래 A로 가려고 했는데.. 보니까 B가 더 끌리네. 그래. B로 가야겠다. 어차피 A는 내일 시간이 있으니까 내일 가도 되겠지 뭐. 그리고 나중에 또 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옛날 2차 성징 청소년 시기의 나라면 절대 생각지도 못할 즉흥성이 시간이 지나 승무원이 되니까 생긴 것이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도 모르게 '인생은 내 맘대로, 내 맘처럼, 내가 원하는 대로 절대 흘러가지 않는다.'라는 절대적인 법칙을 몸소 느끼고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서비스직에서 일을 하면서 항상 어디에선가 예상치도 못하게 사건이 뻥하고 터지면 그것을 즉각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이런 직업의 특성상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음... 내가 생각했을 때는 둘 다의 이유 때문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승무원의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쳐야 하고, 한정된 비행기 공간 내에서 일이 터지면 내가 갖고 있는 자원들을 가지고 최대한 해결을 해야 하니 그래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것에 대해 나는 마냥 부정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A라는 것만 바라보고 달려갔다면, 오직 A만이 보여주는 면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경험하고 끝이었을 텐데, B라는 것도 경험해 보고 함께 바라보게 되면서 나의 한정적인 생각과 시야를 좀 더 넓힐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속에 느껴지는 새로움과 낯섦에 대한 설렘과 재미란. 아마 극강의 J들이 느끼지는 못할 P들만이 느꼈던 재미가 아닐는지 싶다. 그리고 그 재미를 승무원이 된 이후로 나는 느끼고 있는 중이다. 

 어릴 적 나였다면 분명 내가 정한 대로 일이 안 흘러가고, 내가 딱딱 정해진 루트대로 일이 안 흘러가니까 모든 것에 짜증이며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터이다. 하지만 뭐, 이제는 그럴려니 한다. 앞전에 말한 인생은 내 맘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과 엄마가 항상 내게 건네는, "인간이란 뭐든지 예상치도 못한 일이 닥치면 어떻게든 다 해결할 수 있고, 또 해결된다. 무엇이든 간에 방법은 다 있기 마련이다."라는 말을 걱정이 많고 생각이 많을 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서 그런 걸지 두 모르겠다.  

 뭐 아무튼... 요즘 P의 재미를 느끼고 있는 나는 그냥 IESNFTJP 인간 하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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