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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Sep 19. 2024

승무원, 그 어떤 직업보다 공부 많이 하는 직업

EP. 직업 일기

혹시 승무원 관련 유튜브 영상이나 블로그 글을 통해서 "올해 생명연장도 완료했습니다." 혹은 "오늘은 트레이닝이 있는 날이에요."와 같은 내용을 보신 적 있을까? 승준생이거나 전현직 혹은 승무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무슨 말을 의미하는지 잘 알 것이다. 

 생명연장이란, 1년마다 본인이 트레이닝을 받은 비행기 기종의 안전교육을 공부 및 시험에 통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 연장에 실패하면 회사마다 다르지만, 생명 연장에 합격할 때까지 트레이닝을 가야 하고, 합격 전까지 비행을 하지 못한다. 심하면 퇴사 절차로도 진행되니 돈 벌어먹고살려고 온 마당에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돈 줄이 끊겨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최근에 회사에 생명 연장은 아니고, 새로운 비행기 기종 트레이닝을 다녀왔다. 이 역시 회사마다 다르지만, 승무원들은 회사에 입사하여 처음에 트레이닝을 받은 비행기 기종 이외에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비행기 기종 트레이닝 교육에 들어간다. 이때 회사에서 내게 새롭게 주는 비행기 기종은 랜덤이다. 해서 슬슬 회사에서 3번째 기종, 4번째 기종 트레이닝을 준다는 소문이 들리면 함께 트레이닝 교육을 받고 졸업한 배치들이 있는 조용했던 단톡방이 어느 순간 시끌시끌해진다. 예를 들어서 에어버스 380 기종 트레이닝 교육받은 사람 누구냐, 350 기종 트레이닝받은 사람도 있냐, 보잉 787 기종 트레이닝 혹시 누구냐, 언제 트레이닝에 들어가냐, 나는 이 기종 트레이닝받기 싫은데 짜증 난다 와 같다. 같은 배치여도 각자가 받는 기종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기피하는 기종을 받은 사람들은 좌절하기도 하고, 괜찮다는 기종을 받은 사람들은 기뻐한다. 나? 나는 운이 좋아 모든 크루들이 괜찮다고 하는 기종으로 받았다.  

 여러분들이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서 보는 승무원들의 삶이란, 대부분 비행을 통해 다른 국가를 경험하고, 그곳에서의 일상을 즐기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렇게 즐기는 삶 이외에도 승무원은 그 다른 직업들보다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다. 말 그대로,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와 같은 느낌이랄까? 겉으로 보기에는 매번 놀러 다니는 것 같지만 실상 그건 아닌다. 갑자기 어느 순간 회사는 마치  게임 퀘스트처럼 '너, 얼추 적응했으니까 이제 새로운 거 던져줄게. 공부해라.'라는 식으로 뭔가를 던져준다. 그러면 비행이 끝난 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쉬는 날이면 공부해야 하는 날이 많다. 

 굳이 비행 트레이닝뿐만이 아니다. 항상 비행 때마다 제공되는 식사서비스나 와인의 종류와 이름도 미리 공부해 간다. 어떤 음식이 있고 그 음식의 메인이 되는 재료와 단백질(감자인지, 밥인지 등등)은 무엇인지 미리 파악해 가는 것도 매번 승무원들에게는 공부이다. 간혹 승객들 중에 해산물이나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음식 안에 뭐가 있냐고 물어보는 경우,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승무원이 아무것도 모르고 냅다 먹으라고 줬다가 큰일 나면 안 되니깐 말이다. 음식을 공부하는 것도, 와인을 공부하는 것도, 해당 국가 특징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그 비행에 어떤 크루와 함께 일하게 되는지 크루의 이름을 알아가는 것도 다 승무원들이 해야 하는 공부인 셈이다. 

 승무원들에게 부여되는 새로운 비행기 트레이닝 관련해서는 크게 비행기 내부에 관한 공부, 서비스 교육, 그리고 안전 교육으로 크게 나뉘게 된다. 이 비행기는 갤리가 몇 개이고, 어디에 위치해 있고, 이코노미 좌석은 몇 개가 있고, 몇 명의 크루들과 함께 일하게 되며 내가 이 포지션으로 일하게 되면 어디에서 일하게 되고, 어떻게 서비스가 진행될 것이다를 배우게 된다. 또한 에어버스와 보잉 기종마다 실리는 안전 관련 물품들도 다르다. 때문에 안전과 관련해서는 그 어느 부분보다 더 디테일하고 자세하게 공부한다. 비상 탈출 시 문을 열  경우에는 이 기종은 어떻게 열어야 하며, 무엇을 반드시 체크해야 하는지 등등이다. 

 나는 다른 것들 보다 문 여는 Door Operating에 좀 신경 쓰게 된다. 그 이유는 인명 사고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비행 운항 시에 필요한 물품들을 조달해 주시는 지상직원분들을 위해 문을 열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에 승무원들은 문이 '일반모드', 즉 'Disarmed' 모드로 잘 되어있는지 체크해야 한다. 만약에 일반 모드인데, 비상모드인 Armed 모드로 되어서 실수로 문을 연다면, 모든 비행기의 기종이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비행기 기종은 Slide Raft, 즉 비상용 슬라이드가 저절로 펼쳐진다. 그 힘이 어마무시해서 펼쳐지면 그거에 맞는 사람은 저 멀리 날아가서 즉시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다행히 인명사고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실수로라도 비상용 슬라이드가 펼쳐지면,  슬라이드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그걸 접는데 하루 이상은 소요가 되고 그러면 그 비행기는 뜨지 못한다. 비행기가 공항에 마치 주차장에 차를 대면, 주차비용이 발생하는 것처럼 비행 주차료가 발생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아실까? 그 돈이 실로 어마무시하다. 결국 엄청난 인력 낭비와 돈 낭비는 바로 해당 승무원에게 퇴사라는 불명예를 가져다준다. 내 목숨과도 연관이 되어있는 이 문을 작동하는 것에 있어서 나는 다른 것들보다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사실 이렇게 내가 교육받는 기종이 많아지면 인간인지라, 굉장히 헷갈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스케줄로 움직이고 비행기 기종도 랜덤으로 주어지다 보니 어떤 달에는 380기종이 많을 수도 있고, 737기종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크루들도 가끔 스케줄 상 너무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 기종의 경우에는 Blur, 즉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처럼 멍해진다고 한다. 나도 너무 오랜만에 오퍼레이팅 하는 기종에 탑승하는 비행의 경우에는 가끔 갤리가 어딨었는지, 어메니티 카트가 어딨었는지 순간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내가 교육받은 기종이 많아지면 그만큼 갈 수 있는 국가 노선이 많아지는 거라 내게 있어서 더 넓은 경험과 다양한 크루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내일 드디어 트레이닝 교육 후에 가는 첫 비행이다. 설레기도 하지만 걱정도 많은 데, 부디 아무 일 없이 잘 다녀오기를 바란다. 오늘도 이렇게 일기를 쓴 뒤, 나는 내일 갈 비행의 서비스를 잠깐 공부하러 간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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