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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Sep 23. 2024

나는 승객들에게 어떤 승무원일까?

EP. 감정일기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간다. 많은 수만큼 존재하는 다양한 생각과 삶의 방식들. '승무원'이라는 같은 직업을 가졌지만 다양한 본인들만의 생각과 방식으로 승객들을 응대하는 우리.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는 과연 승객의 입장에서 어떤 승무원일까? 

 '승무원'이라는 직업 환경이 다른 서비스직들과 어떤 점이 가장 다를까라고 본다면, 바로 우리는 '승객의 모든 것들을 다 볼 수 있다'는 승객 오픈형 환경이라는 것이다. 

 승객의 보딩패스를 보고 좌석을 안내하는 순간부터 짐을 올려주는 것, 이륙 준비를 하고 식사서비스를 진행하고, 이후에 쉬는 시간이며 착륙 준비를 하고 내릴 때 배웅해 주는 그 모든 순간, 비행시간이 짧든 길든 승무원들은 승객의 모든 것을 볼 수가 있다. 승객이 입을 벌리고 코를 드렁드렁 고는 잠자는 모습 (기내는 건조하니까 웬만하면 이런 모습을 감추는 것과 동시에 목을 위해서 마스크를 지참하시는 것은 꿀팁), 외국인 승객이 열심히 과자를 까먹으면서 '선재 업고 튀어'를 열심히 보는 모습, 화장실에 가려고 줄을 서는 모습, 커플이 서로 싸우는 모습, 이착륙 자리에 앉아 마주 보게 되는 승객들이 서로 내려서 어떤 걸 먹을 계획인지까지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것이며...  그야말로 먹고 자는 모든 것들을 볼 수 있다. (아 물론 배출하는 생리현상은 제외..^^)

 이런 환경 덕분에, 승무원들은 승객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접점이 확실히 다른 직업보다는 훨씬 많다. 화장실을 기다리는 승객과 어쩌다 보니 화장실을 청소하기 위해 대기하는 순간에 아무 말 없이 있는 것보다는 대화하는 것이 나아서 스몰톡을 하게 되는 순간도 있고, 장비행에서는 심심하거나 스트레칭을 위해서 갤리로 놀러 오시는 승객들이 많은데, 그럴 때 간식과 음료를 추천해 주면서 스몰톡도 한다. 나도 이런 경우에는 곧잘 승객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대화의 시작을 알리는 주제는 '혹시 다른 연결 항공편이 있으신지 여부' 그리고 '어떤 목적으로 해당 나라에 가시는 건지' 및 ' 유명한 곳 있으면 추천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승객에게 대화를 걸고 다가가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조심스러운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제 막 자리에 앉아서 한숨 돌리려는 승객들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다. 회사와 직책이 있는 시니어들은 승객들에게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니, 좌석 안내를 할 때부터 최대한 승객들에게 살갑게 다가가고 친근하게 다가가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에 맞게 대화를 잘 건네는 크루들도 많다. 확실히 한국인 크루들보다 외국인크루들이 정말 잘한다. 하지만, 내가 한국사람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어렵다. 나 혼자 이런 건지 싶어서 한국인 크루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나처럼 같은 일을 겪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한국의 정서와 문화 상, 이렇게 이름도 잘 모르고 처음 본 사람한테 살갑게 다가가는 것이 그리 일상에서 쉽게 겪거나 친근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런 상황을 겪는다면 분명 "뭐야.. 저 아세요? 왜 이러세요.." 하는 것이 뻔한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한국인으로서 우리는 서양권처럼 모르는 사람과 마치 이미 서로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건네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문화권이기 때문이다. 해서 인천 비행을 하면, 어떤 승객분들은 이렇게 내가 말을 거는 것에 대해서 좀 부담스러워하시는 분들도 종종 뵈었다. 


  또한, 승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비행기에 타는 것 자체가 곤욕인 경우 때문이다. 경유 없이 바로 해당 나라로 가는 승객들도 있다. 하지만, 바로 직전에 다른 항공사 비행기를 타고 우리 항공사로 경유하는 경우도 정말 많다. 그러면 그 승객들 입장에서는 이미 6~7시간, 아니 그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비행기에 꼼짝없이 갇혀서 앉아있었는데, 비행기를 갈아타고 또 7시간 이상을 더 앉아서 가야 한다. 얼마나 피곤할지... 저절로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승객의 표정이 매우 피곤해 보이 거나하면 대충 빠르게 나를 소개하고 내 업무로 바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뭐 어디서 오셨어요, 무슨 목적으로 가시나요 이런 것도 생략한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 이미 그들의 입장에서는 입을 떼는 것 자체가 피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는 추후에 서비스가 다 끝나고 화장실을 기다리실 때에 말을 건네거나, 착륙할 때쯤에 해도 충분하다.    

 실제로 나는 아까 설명했듯이, 갤리로 놀러 오시거나 화장실을 기다리시는 승객들과 대화를 나눌 때 항상 그들에게 '존경한다'라고 말한다. 

 "저는 승객분들은 존경해요. 저희 승무원들이야 일을 해야 해서 자주 걸어 다닐 수가 있지만, 승객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계셔야 하잖아요. 그게 얼마나 힘든 지 저는 이해합니다. 승객분들은 저희가 힘들고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저는 승객분들이 더 힘드실 거라 생각해요." 이렇게 말하면 승객분들은 웃으면서 맞다고 말하신다. 

 예전에 만난 노부부는 12시간을 넘어서 로마에서 오셨고, 또 7시간을 날아 우리와 함께 호주 멜버른으로 가셨어야 했다. 그 말을 듣고 와, 정말 리스펙 합니다 정말 피곤하시겠어요.라고 말하니 정말 정말 피곤하고 이륙하고 나서는 잠만 자고 싶다고 하셨다. 이에 나는 '제가 가셔야 하는 시간 동안 최대한 편안하게 해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굳이 말씀하지 않으셔도 제가 딱 맞는 타이밍에 나타나도록 하겠습니다. 말하는 것도 피곤한 걸 저도 잘 아니까요.'라고 말했고, 맞다면서 좋아해 주셨다. 그렇다. 승객에게 편안함을 제공하는 나의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꼭 필요한 순간에만 나타나고 말을 건네는 것이다. 

 물론, 승객들에게 보이는 첫인상과 끝인상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나 역시 항상 승객들을 처음 맞이하고 배웅할 때는 두 손을 마치 롯데월드 인사법처럼 좌우로 흔들면서 해맑게 웃음을 끓여 올리면서 인사를 건넨다. 이런 면에서는 누구보다도 적극적이고 밝은 것 같은데 말이다. 

 맨 처음 이 글을 시작하면서 내게 던진 질문 '나는 과연 어떤 승무원일까?'에 대한 대답을 글을 쓰면서 이제야 얼추 찾은 것 같다. 

 나는 조용하고 소심하지만, 없으면 허전한 배려심이 넘치는 승무원이다. 마치...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웅이' 같은 존재랄까..? 지우나 피카추처럼 승객들과 크루들에게 크게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지만 언제나 뒤에서 묵묵하게 내 할 일을 하고, 웅이가 친구들을 위해서 요리도 해주고,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 도움을 주는 조력자인 것처럼, 크루들과 승객들이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는 그런 존재 말이다. 

그렇다! 나는 포켓몬스터의 '웅이' 같은 감초 같은 승무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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