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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Sep 23. 2024

승무원의 자질: 사소한 배려심

EP. 준비일기

 승무원이 되기 전부터, 승무원이 된 후 일을 하면서 나 스스로의 강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사소한 배려심'이다. 오늘은 소심한 내 자랑(?)도 하면서 사소한 배려심이란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내가 승무원 준비를 하던 시절, 다른 것들보다도 공을 들여서 준비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자기소개'이다. 남들처럼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고, 서비스 경력은 ###입니다. 저의 강점은 ~~ 이고... 이 항공사에 오기 위해서 블라블라...' 하기가 너무 싫었다. 면접관 입장에서도 똑같은 비슷한 얘기를 반복해서 들어야 하니 지루할 거라 생각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자기소개에 약간의 재치와 함께 나의 강점을 곁들인 스토리텔링을 했는데, 그 강점이 바로 오늘의 주제인 '사소한 배려심'이다. 나의 자기소개는 추후에 시간이 된다면 여러분에게 소개해주겠다. :) 실제로 내 자기소개를 들은 모든 면접관들은 다들 웃으면서 귀엽고 기억에 오래 남는 거 같다고 칭찬해 주셨었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시절, 나의 가방은 매우 빵빵했다. 학교에서 챙겨 오라는 준비물이 있으면 나는 하나만 챙겨가도 될 것을 두세 개는 챙겨갔던 학생이었다. 왜냐면 분명히 준비물을 깜빡해서 안 챙겨 오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들을 위해 여분으로 챙겨갔었다. 원체 남에게 도움 주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J의 성격이 강했던 탓에 여분으로 준비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었다. 여유가 있으니 마음도 편했고, 친구들에게 도움도 주니 일석이조라는 생각이었다. 친구들은 이런 내 마음을 몰랐다. 친구들 입장에서 나는 그냥 항상 뭐 빌려달라면 거절 없이 잘 도와주는 착한 친구였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도 좋았다. 나만 뿌듯하면 됐어. 어릴 때부터 나는 사소한 배려심이 넘치는 아이였다. 

 사회생활 중에도 사소한 배려심은 일을 하면서도 발동됐다. 평소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외국인 손님들이 꽤나 왔던 비즈니스호텔에 일했을 당시, 영어에 어려움을 겪던 손님들을 위해 오프데이나 퇴근 후에 간단한 대화를 위한 중국어와 일본어 공부를 했었다. 정말 간단하게 '예약했습니까? 오늘 몇 박 며칠이시고, 방은 몇 호이고, 식당은 어디이고..' 등등이었다. 메모에 적어서 입에 달달 익숙해지도록 말했다. 그러고 영어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면 바로 외운 것들을 활용해서 말을 했다. 또한 중국에서는 8이라는 숫자가 행운의 숫자니까, 항상 중국인 손님들에게 8이 들어간 방을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손님들은 좋아했다. 나의 그들을 위한 사소한 배려심이 언어로 발휘된 케이스였다. 아, 다만 이 방법의 단점이라 하면 내가 그 언어를 잘하는 줄 알고 와 다다다 다 말을 거신다는 거였는데, 그럴 때 참 난감하긴 했다. 

 승무원이 되고 나서 나의 사소한 배려심은 꽤나 자주 발동된다. 

  서비스가 끝나고, 장비행의 경우 승객들에게 항상 먼저 다가가서 좌석을 편안하게 만들어드려도 되겠는지 물어본다. 화장실을 기다리는 승객들에게 기다리시는 동안 혹시 이불도 드리고, 좌석을 편안하게 해 드릴까요?라고 하면 환하게 고맙다고 말해주는 승객들. 면 요리를 주문하신 서양인 승객. 왠지 젓가락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먹는 데 불편하실 것 같아 조용히 포크를 여분으로 챙겨 와서 놓아주니 방긋 웃어주던 승객분. 

 다른 커트러리(수저, 포크, 나이프 등의 식기류)가 필요 없는 식전 음식을 드시는데, 소스가 입에 맞으셨는지 소스까지 다 드시고 싶었으나 숟가락이 없어 불편하게 접시 채 들고 먹으려는 걸 본 순간 나는 조용히 뒤에서 수저를 가지고 와서 놓아드렸다. 그러자 너무 고맙다면서 웃어주는 서양인 어르신. 지인 없이 혼자 탑승한 임산부이신 승객에게 시큼한 오렌지 주스를 먼저 권하거나, 양말도 가져다 드린다. 뒤에 여분의 베개를 드리고 허리를 편안하게 하게끔 도와드리고, 착륙하실 때에 자리에 앉아계시면 나중에 내가 짐까지 다 내려드릴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맨발로 비행기 복도를 다니시는 호주 아저씨에게 조용히 슬리퍼를 가져다가 바닥에 놓아드리니 고맙다면서 큰 목소리로 말해주는 덩치 좋은 승객분.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하셔서 뜨거운 물을 줄 때 꼭 드시기 전에 온도 체크해 달라고 말해주는 나. 

 솔직히 굳이 승무원이 아니어도, 내가 한 일들은 나보다 더 대단한 직업을 갖거나 일을 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 비하면 절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정말 사소하고 소심하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하지만, 원래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어쩌면 더 어렵고 실천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해줄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그래서 더 사소하게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나의 사소한 배려심이 좋다. 이건 내가 가진, 내가 승객과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나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 사람을 조용히 관찰하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승무원 준비생들이라면 "Pay attention to detail"이라는 단어를 많이 공부하고 사용할 것이다. 어쩌면 이게 바로 사소한 배려심이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것.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함과 동시에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따듯한 눈길이 바탕이 되는 자질이다. 다른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 대단한 것들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하나의 직업이되, 사람과 사람사이의 따듯한 온도, 관심, 생각, 그리고 배려가 다른 직업들에 비해서 더 요구가 되는 것뿐이다.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좀 더 가까운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사소한 나의 배려심(?)으로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을 위해 내가 좋아하는 글씨체가 아닌 가독성이 좋은 글씨체로 글을 쓰고, 좀 더 친근한 내용으로 주제를 잡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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