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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Sep 23. 2024

선택, 언제나 후회를 동반하는 설렘

EP. 인생일기

아마 오늘 웬일로 작가가 글을 많이 쓰지?라는 생각이 들으셨다면, 내 글을 평소에 자주 본 사람들이라면 눈치 했을 것이다. 그렇다. 오늘과 내일은 스탠바이, 5분 대기조 듀티이다. 요즘따라 자주 불린다는 말을 들었는데, 다행히 아직 불리지 않았다. 제발 불리지 말아 다오... 간절한 소망이 마지막까지 이뤄져서 내일까지도 쉬었으면 좋겠다. :) 

 세상은 BCD로 살아간단다. B = Birth, 출생. 세상에 태어난다. C = Choice, 선택. 모든 순간 선택의 기로 앞에 삶을 살아간다. D = Death, 죽음. 그렇게 본인에게 주어진 삶의 마지막 순간을 죽음으로 맞이한다. 그렇게 우리는 BCD대로 인생을 살아간다. 

 여기에 더해 나는 A도 추가하고 싶다. A = Accept, 받아들임. 내가 출생하기 이전에 서로 다른 각자가 만나 이 세상을 함께 헤쳐나가겠다는 부모님 서로의 Accept, 받아들임이 있어야 하고, 두 사람 사이의 자식이 될 나를 이 삶에 내놓겠다는 부모님과 하늘의 '받아들임'이 있어야지만 BCD가 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끼워 맞추기(?) 식의 논리라면 인생은 정말 ABCDEF... 대로 되는 걸지도 :)

 오늘은 C, 선택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같은 외국항공사 승무원이자 블로그에 글을 쓰는 공통점이 있지만, 승무원 인생 선배이시고 나보다 더 글의 주제와 생각이 깊어 배울 점이 많은 '비행하는 피리' 님의 한 글에서 영감을 얻어 나도 작성하는 오늘의 일기이다. 

 

선택은 내게 있어서 언제나 후회를 동반하는 설렘이라 생각한다. 시험을 볼 때, 1번과 2번의 보기 중에 골아야 하는 상황. 머리를 쥐어 싸매고 답으로 선택한 1번. 1번은 선택하면서도 내 마음에는 '아, 1번이 아니라 2번이면 어떡하지?'라는 후회가 동반되면서도, 1번이 답이기를 내심 바라는 설렘이 함께 물 믿듯이 흘러들어온다. 선택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그렇다. 아 오늘 뭐 먹지? 야채곱창, 육회, 초밥, 족발.. 당기는 것이 많네. 아.... 결국 15분을 고민고민하다가 육회로 정했다. 야채곱창, 초밥, 족발을 포기해서 좀 아쉽기도 하고 후회는 되지만 그래도 뭐, 육회도 맛있으니까. 얼마나 맛있을까? 설렌다. 

 누가 현직 승무원 아니랄까 봐, 승객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승객들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렇겠다. 아, 승무원이 오늘 쇠고기에 감자메뉴랑 닭고기에 밥이라고 하네. 그래도 여기는 외국항공사니까 양식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한데... 아 근데 한국인은 밥심인데 밥이 또 당긴단 말이지. 뭐 먹지? 아, 그래. 오늘은 소고기다. 닭고기가 더 맛있을 것 같다는 후회가 조금 들기도 하고 괜히 쇠고기 시켰나 후회도 들긴 하는데, 그래도 외항 사니깐 맛있겠지. 비행기에서 또 밥 오랜만에 먹으니까 설레네. 허허... 부디 이런 경우에 본인의 선택에 있어 만족하시기를 바란다 :) 아무튼 이렇게 선택은 우리의 삶 매 순간 존재하고, 항상 작든 크든 후회와 설렘을 동반한다. 

 아, 승무원의 입장에서 선택하고 후회하는 경우는 없냐고? 있다. 바로 COF (Change of Flight)을 한 경우. 즉,  비행스케줄을 바꾼 경우이다. 한 예시로 친한 언니의 경우, 인천 비행을 누군가가 바꾸자고 해서 좋다고 허락하고 바꿨다고 한다. 근데 이상하게 크루들이 자주 바뀌고, 심지어 한 한국인은 정말 라스트 미닛으로 아프다고 병가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지만, 설마 하고 비행에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직책 있는 시니어 크루가 정말 이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고생했던 비행이라고 하는데, 이런 경우에 승무원들은 선택에 있어 후회가 든다. 아, 비행 바꿔야지 헤헤. 오 바꿨네 좋다. 근데 괜히 바꿨는데 이유가 있어서 바꾼 거 아냐? 아 좀 후회되는데... 에이 그래도 인천비행이니깐 설렌다. 크루들도 괜찮지 않을까? 뭐 이런 설렘과 후회말이다. 친한 언니가 겪은 마음. 나도 잘 알고 아마 모든 승무원들은 격하게 공감할 것이라 믿는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선택으로 이뤄져 있는데, 하물며 밥을 먹는 것도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몇 시에 먹을까를 신중에 신중을 더해 고민하기도 하는데... 내 전반적인 인생에 있어 직업을 선택하고 말고는 정말 다른 차원의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요즘 그 무게를 더욱더 체감하고 있는 중이다. (직업도 이렇게 고민하기가 힘든데 내 나머지 인생을 함께 꾸려나갈 배우자를 선택하고 결혼을 결심하는 건 얼마나 더 힘든 선택 인지.. 흑... 아무튼..)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안정적일 수 있던 한국에서의 삶과 한 살이라도 더 어린 나이에 대한 후회를 두고 왔다. 그러고 해외 생활이라는 설렘을 가득 안고 떠나온 지 시간이 꽤나 많이 흘렀다. 이제 승무원이 아닌 그냥 인간 '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키가 아담하지만, 일할 때만큼은 높게 일한 만큼 넓게 바라볼 때가 찾아오는 중이다. 하지만 나 자신이 중요하지만 직업이 주는 안정감과 명예, 시선을 무시 못하겠다. 인간인지라,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란 있기 마련이지만 왜 이렇게 마음의 요동이 거센지 모르겠다. 한 살이라도 어린 나였다면, 선택에 있어서 덜 후회하고 큰 설렘을 동반했을 텐데. 아마 나이가 들어가면서 겁이 많아지고 생각도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인생을 막살 수는 없잖아?! 

 나중에 시간이 지나 나 스스로 추후에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덜 후회했으면 좋겠고 설렘이 좀 더 컸으면 좋겠다. 마치 비행을 시작하고 매달 나오는 스케줄에 다음 달에는 어디를 갈까? 미국을 갈까? 네덜란드를 갈까? 프랑스를 갈까? 하는 기대감이 크고 설렘이 가득한, 스케줄을 확인하는 그날처럼 말이다. 이런 설렘 역시 나이가 들어서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소중한 추억이 될 터이니 오늘도 이렇게 소중하게, 사소하지만 담백하게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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