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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승무원 Sep 29. 2024

음식+사람+공감대 = 스트레스 타파

EP. 직업일기

"How would you manage your stress when you become a cabin crew?" 

(네가 승무원이 되면,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할 거야?)

승준생 기간과 실제 면접 중에 위의 질문을 수도 없이 많이 기출로 접했었고 또 질문을 받았었다. 아무래도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람들한테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한 직업인지라 퇴사율이 높은 승무원. 회사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일할 인재를 찾는 입장이기에 위의 질문을 통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과연 이런 직업적인 환경에서 오래 버티고 살아남을까라는 걸 바라보기 위함이다. 위의 질문 역시 나도 파이널 면접 때 받았던 경험이 있다. 그 당시에 어떻게 대답했는지 여전히 기억이 남는다. 

 "저는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들로 스트레스를 관리할 것입니다. 음식을 만들어서 소중한 제 사람들과 먹는다는 건 제게 그저 먹고 논다는 의미 그 이상입니다. 함께 음식을 만들어서 먹고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경험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저만의 이야기, 생각, 에너지를 전달하고 마찬가지로 저 역시 타인의 모든 것들을 전달받게 됩니다. 이렇게 공감대 (Bond of Sympathy)를 만들고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저의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저는 사람과 음식이 주는 공감의 힘을 믿습니다."

 당시에는 합격을 염두에 두고 말한 답변이지만, 시간이 지나 실제로 승무원이 되어보니 내 생각이 맞는다는 것을 느낀다. 일을 하면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빨리 스트레스를 해소해야만 해!'라고 생각하거나 다그치지 않는다. 쉬는 날, 이렇게 나의 경험을 글로 정리해서 공유하는 것 역시 스트레스 관리이지만, 더욱이 크게 와닿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바로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인연들과 함께 쉬는 날을 맞춰, 우리 집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 떠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만남 덕분에 나는 스트레스와 향수병을 날리고 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라는 말이 어쩌면 내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바에 맞는 말일 수 있다. 너무나도 다른 스케줄 속에 다 같이 쉬는 날짜를 어렵사리 찾아 맞춰서 만나는 날. 가족들보다도 더 반갑게 서로 잘 살고 있냐,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나눈 뒤, 아주 무섭게 우리들은 한국 여자들의 소울 푸드인 떡볶이를 시작으로 각자 갖고 있는 밀키트와 재료들을 꺼내서 마구마구 음식들을 만든다. 누가 승무원 아니랄까 봐, 분업을 해서 몇 명은 음식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식탁을 차린다. 그렇게 완성된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여자들의 진정한 수다 타임이 시작된다. 

 최근에 다녀온 비행은 어땠는지, 어떤 비행에서 싹수없는 사람들을 만났는지, 아직 가보지 못한 노선을 갔다 온 사람에게는 레이오버는 어땠는지 등등부터 시작해서 요즘 본인들이 느끼는 생각, 미래에 대한 고민 등 일상들을 공유한다. 그렇게 시작된 수다는 음식들을 다 먹은 뒤 2차로 간식을 먹는 동안에도, 4-5시간 동안은 지속된다. 

 가족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등지고 꿈을 향해 이곳에 모인 우리.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인연이 닿아 서로가 같은 배치, 동기라는 명목 하나로 모였다. 그렇게 동고동락하면서 힘든 트레이닝을 이겨낸 우리들의 끈끈한 인연을, 나는 각자의 스케줄에 따라 비행을 시작하게 되어 얼굴 보는 것이 너무 어려워진 이 상황에서 더없이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내 동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내가 지금까지 씩씩하게 잘 살아 버텨왔다. 동기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소중한 시간을 부정적인 감정이 더 큰 '향수병'과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으면서 갖는 우리들의 시간을 단순히 외노자 승무원 여인네들의 수다 타임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겉으로 보이는 수다 타임보다는 이 시간이 우리에겐 각자가 가지는 두려움, 고민, 생각, 그리고 스트레스를 방출해 내는 '공감대'로 뭉쳐진 소중한 시간으로 봐주길 바란다. 내가 외국인 승무원으로서 가지는 두려움과 생각들을 승무원이 아닌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말한다면, 과연 그들이 내 고충과 스트레스를 잘 이해해 줄 수 있을까? 아니다. 내 경험상 절대 아니었다. 어쩌면 동상이몽의 현상이 나타날 확률이 더 높았다. 떡도 먹어본 놈이 더 맛있게 먹는다고, 직접 그 일을 겪어보고 일해본 사람이어야 그나마 상대방이 어떤 심정인지 잘 알 수 있는 법이다. 

 우리 여인네들은 약 2주 전에 만남의 광장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 치킨과 떡볶이로 뭉쳐졌던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공감했다.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내년에 인생에 있어서 큰 변화가 있는 사람도 있었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나아가려는 다짐을 한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다 같이 모이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더 남았을까? 잘 모르는 앞날이기에, 그리고 힘든 생활 와중에 만난 인연들이기에 이 시간에 내겐 있어 더없이 소중하다. 

 소중한 사람들, 맛있는 음식, 그리고 그 속에 공감으로 피어나는 이야기꽃. 이것이 외국인 항공사 승무원인 내가 스트레스와 향수병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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