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부엌 창으로 들어온 햇살을 받으며 엄마가 탁탁탁 당근과 양파를 다지고 있다.
우리 삼 남매는 침을 꼴깍 삼키면서 별미를 기다린다. 그때만 해도 햄버거 같은 음식이 없을 때라 고기 간 것에 다진 당근과 양파를 섞어 만들어준 함박스테이크는 맛도 맛이지만 특별한 음식을 먹는다는 뿌듯함을 선사했다. 우리 엄마는 이런 것도 만들 줄 안다, 그런 자부심이 섞인. 함박이란 발음을 변용해서 “한바꾸 두바꾸 빨리 주세요.” 노래하며 기다리던 시간. 항상 해가 비쳤던 것은 아닐 텐데, 그 장면은 환한 빛으로 채색되어 떠오른다.
넷플릭스의 화제작 <흑백 요리사>에 나와 인기를 끌었던 에드워드 리 셰프는 최고의 음식이란 ‘셰프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창’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엄마가 ‘한바꾸’에 담아낸 영혼은 자식들이 건강하게 잘 크기를 바라는 기원이었겠지. 그 바람대로 우리는 제비새끼들처럼 맛있게 받아먹으며 무탈하게 자랐다. 다른 사람 눈에는 특별해 보이지 않아도 그에 담겨 있는 추억이 있기에 ‘한바꾸’는 잊을 수 없는 영혼의 음식이 된 것이다.
한편으로, 무엇을 먹는가는 단순히 취향을 넘어서 식습관이나 생활수준을 나타내기도 한다. 컵라면을 좋아해서 먹는 사람도 있겠으나, 지불할 수 있는 호주머니 사정과 시간이 많지 않은 여건 때문에 컵라면을 선택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과 멋진 레스토랑에서 천천히 우아한 식사를 즐기는 사람 사이에 나는 어디쯤 서 있을까?
100년 전, 간절히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인물을 통해 가난을 구체화시킨 소설이 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다. 1924년에 발표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인력거꾼 김첨지이다. 근 열흘 동안 돈 구경을 하지 못했는데, 이상하게 손님이 많은 어느 날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 달포가 넘었는데,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첩 써본 일이 없다.”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지도 모른다. 반듯이 누워서 “일어나기는 새로 모로도 못 눕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하다. 이렇게 심해진 것은 열흘 전 조밥을 먹고 체한 때문이다. 오래간만에 돈을 벌어 좁쌀 한 되를 사 왔는데, 채 익지도 않은 것을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붉어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하더니 그날 저녁부터 “가슴이 땅긴다, 배가 켕긴다고 눈을 홉뜨고 지랄병을 하였다.” 그러고도 먹는 데 물리지 않고 사흘 전부터 설렁탕이 먹고 싶다고 조르는 중이다.
설렁탕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이다. 특히 추운 겨울날 뜨끈한 국물은 속을 따뜻하게 덥히며 원기를 북돋아 주는 듯하다. 아주 비싼 음식이 아님에도 설렁탕은 가난한 인력거꾼 형편에, 하물며 “조밥도 못 먹는” 처지에 언감생심이다.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던 김첨지는 돈이 들어오자 설렁탕을 사줄 수 있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릴 만큼 기쁘고 “마음이 푼푼하였다.”
그런데 현진건은 이 행운을 아이러니로 만든다. 손님이 끊이지 않는 이상 현상에 대해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다고 표현하면서, 설렁탕을 사 들고 집에 빨리 돌아가느냐, 아니면 계속 돈을 벌 것인가의 갈등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집에 빨리 가지 않으려 하는 까닭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임을 암시한다. 곧 김첨지에게 집은 병든 아내가 있는 곳이고 나아가 아내의 죽음을 마주해야 할 곳이므로,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이 심리가 극대화된 장면이 친구 치삼과 술 마시는 선술집 장면이다. 돈을 많이 벌었다며 많은 음식과 술을 주문해 먹는 이 장면은 상당히 길게 묘사되어, 빨리 집에 가야 하는 당위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역할을 한다. 중언부언하다가 “안 죽었어, 안 죽었대도 그래.” 소리치는 장면에서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대면하게 된 아내의 죽음 앞에서 그는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중얼거린다. 이상하게 계속되는 행운의 끝에 놓이는 아내의 죽음. ‘운수 좋은 날’의 아이러니를 처절하게 느끼게 하는 이야기는 설렁탕 하나 온전히 사 먹지 못하는 삶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음식으로 위안을 얻는 이야기도 있다. ‘미국의 체호프’라 불리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아들 스코티의 여덟 살 생일을 위해 앤이 3일 전 케이크를 주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생일날 아침 아이가 등교하다가 차에 치인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서는, 엄마에게 일어난 일을 얘기하고는 축 늘어진다. 쇼크에 의한 가벼운 뇌진탕이라고 진단받고 입원하지만, 계속 혼수상태에 놓인다.
아이 곁을 지키다가 옷을 갈아입으려고 집에 돌아간 아빠 하워드는 정체불명의 전화를 받는다. 지금까지의 삶은 순탄했는데, “한 사람을 꺾어버리고 내팽개치는 어떤 힘 같은 게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불안해하던 차, 수화기를 들자마자 다짜고짜 흘러나온 말은 그를 당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케이크 왜 안 가져가는 거요?” 무슨 말이냐는 하워드의 대꾸에 전화 건 이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라고 답했고 하워드는 장난 전화로 여기고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그 후로 집에 들른 앤도 그 전화를 받지만, 케이크를 주문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었으므로 ‘자꾸 전화하는 미친놈’의 소행으로 치부한다.
아이는 계속 깨어나지 않아 부부의 두려움은 점점 커지고, 자신들이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에 불안하다. 결국 아이는 숨을 멈췄고, 위험한 상태는 지났다고 자신만 믿으라던 의사는 ‘백만 명당 한 명꼴로 발생하는 특이증상’이라고 하며 거듭 사과를 한다. 믿을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이들 부부는 통곡하다가 “안 돼.” “절대로 이해 못 해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집으로 돌아가서도 흐느끼다가 친척들에게 전화하며 울음을 터뜨리는데, 문제의 전화가 다시 온다. “스코티를 잊어버렸소?”라는 말에 앤은 화가 나 소리치고, 세 번째 전화가 왔을 때 분노는 극에 달해 “죽여버릴 거야.” 결심할 정도에 이른다. 그러다가 케이크 주문한 사실을 뒤늦게 기억해 내고 빵집을 찾아간다.
한밤중 빵을 만들고 있던 빵집 주인은 사흘이 지나도록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데, 앤이 아들이 죽었다고 말하며 오열하자 곧 용서를 구한다. 탁자 위를 치우고 의자를 가져와 그들을 앉게 한 다음, 커피와 갓 만든 롤빵을 가져온다. “이럴 때 뭘 좀 먹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라며 권한다.
갑자기 허기를 느낀 앤은 빵을 세 개나 먹고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외로움과 중년이 지나면서 찾아온 회한과 무력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둘은 더 이상 먹지 못할 정도로 먹는다.
새벽이 되어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마지막 문장에서 그들의 분노와 슬픔이 고자누룩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빵집 주인의 진심이 담긴 빵과 위로가 ‘별것 아닌 것’이 아님을 따뜻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