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마음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별>에 나타난 아이

by 한혜경


어린 시절, 언제부터인지, 이유는 모르겠는데, 어른의 세계는 뭔가 오염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피터팬 증후군의 일종일까, 아이의 시간이 오래 지속되길 바랐다.

즐겨 보던 어린이 잡지에서 빨리 어른이 되겠다고 떡국을 여러 그릇 먹어서 배가 불룩 튀어나온 아이를 그린 만화가 있었는데, 어른 되는 게 뭐가 좋다고, 하며 한심해하던 게 기억난다.

이후 중학생 때인가, 워즈워드의 시에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시구를 읽고는 역시 내 생각이 맞다고 주억거리기도 했다.


주변에 추태 부리는 어른이 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텔레비전 드라마 속 악한들의 영향이었을까, 괜히 조숙한 티를 내려고 했던 걸까. 속에는 삐딱한 생각이 꽤 많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덕에 대체로 모범생 대우를 받으며 무탈하게 유년을 보냈다.


가끔 아이였을 때 마음을 떠올려 본다.

어른의 어떤 부분이 싫었을까. 위선과 기만? 허위의식? 사실 모든 아이의 마음이 천진하다고 할 수는 없다.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몰린다면 그 누가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문학작품에도 다양한 아이가 등장한다. 무구한 아이도 있지만, 이미 내면의 갈등으로 심경이 복잡한 아이도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겪는 시련이 성숙으로 가는 길목이라고도 말하지만, 어릴 때는 아이답게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흐뭇하게 그 시간을 떠올리며, 그 기억으로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1961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았던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1935)는 결혼한 지 일 년, 딸 옥희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남편이 죽은 스물네 살 여성과 사랑방에 하숙하는 남성 사이에 피어나는 연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3인칭 서술자 또는 어머니나 사랑 손님을 1인칭 서술자로 해서 전개했더라면 상투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가 여섯 살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진 덕에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옥희는 사랑 손님과 엄마 사이의 기류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기에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믿을 수 없는 서술자(unreliable narrater)”인 셈인데,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아이의 엉뚱한 짐작이 재미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가령, 외삼촌이 들어오면 아저씨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두고 외삼촌을 무서워하나 보다고 여기고, 엄마와 아저씨가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두고 “얼굴이 빨갛게 성이 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등, 독자와 옥희 사이의 거리가 웃음을 유발한다.


또 직접 대면하지 못하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기도 하며, 불쑥 나온 거짓말로 관계를 진척시키기도 한다. 옥희가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고 하니까 아저씨가 자신도 그렇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옥희는 좋아하면서 이 사실을 곧바로 엄마에게 알린다. 이후 엄마는 달걀을 많이 사서 아저씨의 밥상에 놓고 옥희에게도 준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가져온 꽃을 엄마에게 주면서 “사랑 아저씨가 엄마 갖다 주라고 줘.” 불쑥 말해서, 결과적으로 아저씨의 마음을 전달한 셈이 된다. 그리고 아저씨가 밥값이라고 준 봉투 심부름과 손수건을 갖다 주라는 엄마의 심부름을 하면서, 두 사람의 심정을 추측하게 한다. 엄마가 편지를 읽으며 “얼굴이 파랬다 발갰다 하고” 종이를 든 손이 “와들와들 떨리어서” 종이가 부석부석 소리를 낼 정도라고 표현한 것에서, 독자는 편지 내용을 보지 못했지만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이에서 더 나아가 옥희가 “우리도 아빠 하나 있으문.” 하고 말하게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엄마의 대답을 통해 당시 통념과 엄마의 속마음을 드러내 준다.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 “옥희 어머니가 홰냥년이다 이러구 욕을 해.” “세상 다른 건 다 소용없어. 우리 옥희 하나믄 그만이야.” 독자는 이 말들에서 엄마가 어떤 결심을 했는지 알게 된다.


결국 아저씨는 떠나게 되므로, 세상의 시선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억누르는 남녀의 비애가 애틋하게 다가온다. 이는 특히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짐으로써, 그들의 내면이 옅은 베일에 싸인 듯 아련해지는 효과를 준다.


마지막 장면은 달걀장수에게 “인젠 우리 달걀 안 사요. 달걀 먹는 이가 없어요.” 엄마가 맥없이 대답하는 장면이다. 이 말에 옥희는 떼를 써보고 싶지만 엄마 얼굴이 새파래져 어디가 아픈가 보다고 인형에게 속삭이므로, 엄마의 심경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보다 훨씬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전화백.jpeg 전창운 화백의 작품




황순원의 <별>(1941)에 등장하는 아이는 아홉 살로, 내면에 갈등을 안고 있는 아이이다. 아이에게, 죽은 어머니는 절대적 아름다움의 표상이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처럼 천상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데, 살아있는 누나가 그 환상을 여지없이 깬다.


“쟈 동복 뉘가 꼭 죽은 쟈 오마니 닮았디 왜.” 동네 과수 노파가 옆의 여인에게 무심히 건네는 말이 아이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너무나 엷은 입술이 지나치게 큰 데 비겨 눈은 짭짭하니 작고, 그 눈이 또 늘 몽롱히 흐려있는” 얼굴이며, “지나치게 큰 입 새로 드러난 검은 잇몸” 등, 누이의 얼굴은 아름다움과는 한참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누이처럼 미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누이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행위로 표출된다. 누이가 어머니처럼 굴수록 더 냉정하게 대하고 강하게 거부하는데, 이는 자신의 이상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라 할 수 있다.


누이가 비단 색헝겊을 모아 만들어준 예쁜 각시인형을 땅에 묻고, 당나귀에서 떨어진 자신을 붙들어 일으키려는 것을 “무지스럽게 손으로 뿌리치고”, 의붓어머니에게 혼나라고 누이 등에 업힌 이복동생 볼기짝을 일부러 꼬집어 울린다. 좋아하는 옥수수를 줬으나 뜨물 항아리에 버리고, 뒷집 아이와 싸움이 났을 때도 누이 편을 들지 않는다.


좀 더 자라서 열네 살이 된 소년은 “아버지처럼” 누이를 단죄하기도 한다.

누이가 어떤 청년과 만난다는 사실에 아버지가 노발대발하는 것을 본 아이는 누이를 불러 “초매 벗어라! 하고 고함을 치고” 치마를 빼앗아 땅에 길게 편다. “아버지처럼 엄하게” “가루 눠라!” 명령한다. 그러나 치마로 누이를 묶어 강물에 집어넣는 차례에 이르자, 누이가 “아무 항거 없이” “어머니다운 애정으로 따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누이를 남겨두고 떠난다.


이처럼 누이가 어머니와 같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누이를 거부해 온 아이는 누이의 부고를 받고 복잡한 심경을 나타낸다.

얼굴이 떠오르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았다고 하나, 오래전 인형을 파묻은 자리를 파헤쳐보고 당나귀 등에 올라타 “우리 뉠 왜 쥑엔! 왜 쥑엔!” 소리 지른다. 그리고 누이의 “데런! 하는 부르짖음을 들은 거로 착각하면서” 일부러 당나귀 등에서 떨어져 구른다, 어릴 때와 달리 어느 쪽 다리도 삐지 않았으나, 그제야 아이 눈에 눈물이 괴었다.


이 장면은 당나귀에서 떨어져 다리를 삐었던 때로부터 성장했음을 의미하면서, 비로소 슬픔을 느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어머니와 누이를 동일선상에 두는 것을 거부한다.


마지막 장면은 어느새 어두워져 돋아난 별이 아이 눈에 내려왔다는 아름다운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른쪽 눈에 내려온 별이 어머니라고 느끼며 그럼 왼쪽 눈의 별은 누이가 아니냐는 생각에 미치자, “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눈 속의 별을 내몬다.

누이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과 별개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 <그린에세이> 25. 5,6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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