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풍경 (2)

조지오웰 <동물농장>과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기억하는 나무> 외

by 한혜경


조지오웰의 유명한 소설 <동물농장>은 또 다른 기억의 풍경을 그린다.


횡포한 농장주인 존즈를 쫓아내고 동물만의 나라를 세운 동물들. 농장의 이름을 “동물농장”으로 고치고 모든 동물들이 준수해야 할 일곱 계명을 정한다. 앞으로 모든 것이 동물들의 것이며 동물들만을 위해 일한다는 기쁨으로 충만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며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는 계명과 달리, 돼지들은 일을 하지 않고 우유와 사과를 먹으며 집안에서 지내고 침대에서 자는 것이다.


나이 먹은 어미말 클로버는 침대 사용을 금지한 규칙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고 “생각하고” 벽에 씌어 있는 계명을 확인해 본다. 거기엔 “어떤 동물도 ‘시트를 깔고’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라고 씌어 있었다.

“이상도 하지.”

그 계명에 ‘시트’가 언급되어 있었음을 클로버가 기억하지 못한 것이 이상했지만, 그렇게 씌어 있으니 자신의 기억이 잘못된 것이며 틀림없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돼지 스퀼러가 그럴듯하게 설명해 준다.

규칙이 금지한 건 침대가 아니라 시트라고 하면서, 말끝에 “존즈가 되돌아오길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를 덧붙인다.

이는 동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므로, 불평을 잠잠하게 하는 데 이 말 이상으로 효과적인 것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한 대로 동물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다짐했고, 이후 침대에서 자는 문제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다. 다른 의문에 대해서도 스퀼러는 존즈의 귀환 가능성을 들먹이며 교묘하게 설명하므로, 동물들은 번번이 돼지들의 말을 받아들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물들은 나이를 먹고 기억력도 쇠퇴한다.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여기던 것이 흔들린다. 동물주의 계명이 미묘하게 바뀌지만, 동물들은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반란 이전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므로, 돼지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존즈를 쫓아낸 후 농장은 부유해졌으나, 돼지와 개 외의 동물들은 “언제나 그 모양 그 꼴이었다.”

“늘 배가 고팠고 잠은 지푸라기 위에서 잤고 물은 웅덩이 물을 마시고 눈만 뜨면 밭에 나가 일을 해야 했다.

겨울에는 추위에 떨고 여름에는 파리 등쌀에 시달렸다.”

나이 든 동물들은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존즈를 마악 쫓아내고 났을 때가 지금보다 더 살기 좋았는지 아닌지 기억해 보려 했으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하급 동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을 감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동물들의 모습이 한없이 씁쓸함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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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꽃도 기억한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기억하는 나무>와 <기억하는 꽃>은 나무와 꽃의 기억을 뭉클하게 보여준다.


일곱 명의 여인들이 나뭇잎을 들고 둥글게 둘러앉아 있다.

한 시인이 아주 멀리 떨어진 고향마을 삼나무 밑에서 주운 마른 잎사귀 몇 개를 가져다준 것이다.

이들은 각자 나뭇잎을 하나씩 귓가에 대고 가만히 바스러트렸다.

그러자 나무의 기억이 열렸는데, 그것은 각기 귓가를 간질이는 바람으로, 나뭇가지가 부드럽게 흔들리는 소리로, 새들의 날갯짓 소리로, 비 내리는 소리, 작은 벌레가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소리, 목소리들의 메아리, 느린 발걸음 소리로 나타난다.


나무의 기억을 통로로 해서 물리적 거리를 초월해 이들의 귀에 내려앉는 고향의 소리들.

고향의 소리는 이들의 그리움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아마도 빠른 걸음으로 다녀야 하고 새의 날갯짓이나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는 작은 벌레를 보기 어려운 이곳에서의 팍팍함을 잠시 내려놓게 하리라.

그 순간 여인들의 표정은 반가움과 기쁨으로 환하게 빛나고 있겠지.


그리고 난초처럼 보이는 꽃이 있다. 하얀 날개 같은 꽃잎이 나비를 연상시켜 쿠바에서는 ‘마리포사’라고 불린다. 나비라는 뜻이다.


고향을 떠나 나폴리에 온 알렉산드라는 아바나에서 가져온 마리포사 알뿌리를 심었다. 낯선 땅에서 마리포사는 잎을 틔웠지만 꽃이 피지 않았다. 몇 년이 흘러도 잎사귀만 틔웠을 뿐이다.


어느 날 알렉산드라의 쿠바인 친구들 몇 명이 일주일간 그녀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노래하듯 말하는 고향 특유의 목소리들이 울리고 또 울렸다.

마리포사는 일주일 동안 밤낮없이 그 “음악적인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이 떠나는 날, 공항에서 친구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집주인은 갓 피어난 하얀 꽃을 발견했다.


고향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향의 하늘과 공기와 바람을 느꼈을 마리포사.

낯선 곳에서는 꽃을 피워 번식할 마음이 없었던 것일까.

고향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꽃. 뜻밖의 정경 앞에서 먹먹할 뿐이다.


** <그린에세이> 2025 9,10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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