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문턱에서(2)

<그린에세이> 2025 11,12월

by 한혜경


김애란의 소설 <입동>은 겨울의 입구에 서 있는 부부의 아픈 이야기를 차근차근 펼쳐낸다.

‘입동’이라는 절기는 이 소설의 배경이면서, 이들의 삶이 겨울로 들어서고 있음을 상징한다.

사실은 이미 엄청난 한파를 겪는 중이다.


현시점이 11월인데, 봄에 52개월 아이를 잃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졌다.

이 끔찍한 일을 당하기 전과 이후의 고통이 남편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아이를 잃은 부부의 치유되기 어려운 슬픔만이 아니라, 타인의 무감함과 잔인한 시선, 그리고 불안한 현실을 아울러 드러내고 있다.


아이를 잃은 후의 참담함은 직장을 그만두고 집안에 틀어박혀 울고만 있는 아내,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 남편, “냉장실 안 하얗게 삭은 김치와 라면에 풀자마자 역한 냄새를 풍기며 흐트러지던 계란” 등으로 묘사된다.


이들을 더욱 힘겹게 하는 것은 타인의 무심함이다.

어린이집은 보험회사를 통해 민사상 손해배상을 해주고 일이 마무리됐다고 여긴다.

추석 때 모든 가정에 돌리는 선물을 이들에게도 보낸 것은 그들의 “무감”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알고 보냈으면 나쁘고, 모르고 부쳤으면 더 나쁜 거라고 흥분”할 만하다.


이웃들은 처음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했으나, 시간이 지나자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이들을 피하고 수군거린다.

게다가 화자가 보험회사 직원이란 근거로 동네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문”이 돈다.

듣고도 믿을 수 없어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는데, 몇몇은 그 말을 정말로 믿었다. 이런 정황은 누군가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이가 없으며, 천박한 호기심으로 대할 뿐인 잔인한 현실을 잘 드러낸다.


작가는 이와 같은 상황을 “절벽처럼 가파른” 벽 아래 서 있다고 표현한다.


1년 전 봄, 집값의 반 이상을 대출로 끼고 집을 마련했을 때 느꼈던

“이제 막 어딘가 가늘고 연한 뿌리를 내린 기분”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는 안도”가 헛된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면 밀려오던 “이상한 자부와 불안”은 이제 증폭된 불안만 남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어딘가 가까스로 도착한” 것이 아니라, “정착했다고 안심한 곳이 허공”이었음을 처절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수많은 상실과 고통을 어떻게 감당해 나갈 것인가.


이 소설은 얼룩진 벽면을 도배하는 것으로 미약하나마 일어서려는 의지를 표상한다.

곧 입주 전부터 아내가 가장 공들였던 벽면에 어린이집에서 보낸 복분자액이 튀어 검붉은 얼룩으로 “엉망이 되어” 버렸는데, 이를 도배하기로 한 것이다.


도배지를 사놓고도 한참을 방치하다가 11월의 어느 날 드디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고 한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지만, 이들은 도배를 시작한다.

두 사람이 “협동”하며 도배를 하는 도중, 아내가 보험금을 헐어 빚을 갚자고 말한다.

그동안 외벌이로 생활비와 이자 등을 감당하기 어려워 잠을 설치던 터라, 남편은 눈물을 쏟을 뻔할 정도로 뭉클하다.


그런데 작가는 도배를 마치지 못한 상황에서 소설을 마무리한다.


아내가 바닥 먼지를 닦다가 아이가 벽에 써놓은 글자를 발견하고 오열하기 시작하고, 남편은 벽지를 든 채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끝나고 있다.

벽지를 들고 있는 모습을 “두 팔을 든 채 벌서듯” 서 있다고 묘사하며, “한파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두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로 끝낸다.


이제 겨울의 시작인데 떨고 있으니, 앞으로 얼마나 매서운 추위가 닥칠지 두려운 결말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함께라는 것에 가녀린 희망을 품어본다.


거의 대부분의 문장 주어가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사실에서 암시하듯이, 이들은 한 몸이며 같은 편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며 “다른 사람들은 몰라.” 아내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이 춥고 “벌서듯”한 것일지라도, 훼손된 삶에서 일어서려는 지금 마음을 잃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아울러 풍경과 계절,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해도, 두 사람이 서로 감싸며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빌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기억의 풍경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