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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혜경 Nov 20. 2023

안단테 칸타빌레

느긋하고 싶은 날

 입동 지나고 겨울이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다. 


환한 햇살이 거실 창 가득 밀려들어오는 게 감사한 계절이 왔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 바흐 첼로 협주곡을 틀어놓고 창가 의자에 앉아 본다. 

첼로 선율을 따라 둥그렇게 퍼져나가는 나른한 행복감.


문득 오래전 본 영화 하나가 떠올랐다. 같이 본 친구는 지루해 졸았다는.    


당시 여러 가지 일로 심경이 복잡했던가, 영화 포스터의 풍경이 확 다가왔다. 


 오오모리 미카 감독의 <수영장>이란 일본 영화이다. 

자그마한 수영장 앞에 다섯 명의 인물들이 정면을 향해 옆으로 나란히 서 있다. 

헐렁한 옷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영화배우라 할 만한 외모와 거리가 먼 모습으로. 


수영장 가에는 하얀 비치파라솔 아래 역시 하얀 비치베드와 의자가 놓여있다. 

수영장 너머 무성한 나무들이 있고 수영장 표면에는 숲의 그림자가 푸르게 드리워져 있다. 


마치 한 폭의 정물화처럼 조용히 놓여있는 수영장과 소박한 사람들. 

그 정적인 풍경과 '봄날의 따사로운 선물'이란 문구가 스산한 마음을 위무하는 듯해서 영화관을 찾았다.


태국 치앙마이의 한적한 게스트하우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극적인 요소가 없어 잔잔한 수면과도 같았다. 

영화의 첫 장면은 수영장 위에 뜬 나뭇잎들을 태국 소년 비이가 뜰채로 건지고 있는 장면이다. 


곧이어 쿄꼬가 준비한 음식들이 클로즈업되는데, "찌라시스시다!"라는 비이의 탄성으로 그것이 특별한 요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바로 쿄꼬가 딸 사요를 환영하기 위해 준비하는 식탁이다. 

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는 쿄꼬를 만나러 일본에서 사요가 도착하는 날인 것이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짧은 머리로 얼핏 소년처럼 보이는 사요는 4년 전 엄마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태국으로 떠난 것에 대한 원망이 있다. 

그렇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항변하는 모습은 나타나지 않는다. 

반가워하는 엄마 앞에서 무뚝뚝하게 인사하는 것, 준비한 음식을 마다하고 방에 들어가는 정도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무는 6일 동안 굳어있던 사요의 마음은 조금씩 누그러진다. 

이곳의 환한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 평화로운 정경과 선량한 주변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도 모르게 치유된다고나 할까.


따뜻한 마음으로 오갈 데 없는 개, 고양이들을 보살피고 고아인 비이도 키우고 있는 여주인 키쿠꼬, 

비이의 엄마를 찾는 일에 열심인 성실한 청년 이치오, 엄마처럼 비이를 돌보는 쿄꼬, 엄마가 없어도 이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비이는 사랑으로 맺어진 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와 함께 살지 못한 것이 힘들었던 사요에게 이치오는 서른 넘도록 부모님과 한 집에서 살아 갈등이 많았고 떨어져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말함으로써,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음을 알려준다. 

또 시한부의 삶이지만 삶의 기쁨을 충만하게 만끽하는 키쿠꼬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내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쿄꼬의 신념은 엄마랑 살고 싶은 어린 딸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모진 딜레마를 만나기도 한다. 

딸의 입장에서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 태도를 영화는 옹호한다. 

딸과 헤어져야 하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고 “항상 함께 있는 것만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생기 넘치는 일인가를 이 영화는 잘 보여준다. 

요리나 청소, 빨래 같은, 지루하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과들이 모두 반짝반짝 빛이 나기 때문이다. 


정성껏 요리한 음식을 맛있다고 감탄하며 행복한 얼굴로 먹는 것을 보면 소박한 바나나튀김도 지상 최고의 요리로 보이고, 싸리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는 이치오는 너무 평화로워 보여 눈물이 날 지경이고, 이곳에 와서 빨래가 좋아졌다며 볕 좋은 마당 한 편의 빨랫줄에 빨래를 널고 있는 쿄꼬를 보면 나도 그 행복을 같이 누리고 싶어 진다.




수영장은 이런 자족적인 삶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수영장은 수영하거나 물장구치는 곳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소통하게 하는 곳이다.


영화 초반 사요는 조용히 반짝이는 수영장의 수면을 바라보며 자신의 응어리진 마음을 응시한다. 

마치 수영장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듯이 이치오와 대화를 나누고 비이에게 마음을 여는 곳이다.

비치베드에서 잠든 키쿠꼬를 위해 이치오가 파라솔을 펴주고, 사요에게 주려고 쿄꼬가 정성껏 스카프에 수를 놓는 곳도 수영장 가이다. 


특히 후반부, 쿄꼬의 기타 반주에 맞춰 다 함께 노래하는 아름다운 장면도 수영장 가에서 이뤄진다. 

부드러운 표정으로 노래 부르는 사요를 보면서 그녀가 안고 있던 상처가 이제 치유된 것을 느낀다. 

이성적으로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사요가 일본으로 떠나는 날, 화사한 꽃들이 활짝 수 놓인 스카프를 목에 두름으로써 사요는 엄마를 받아들인다. 이치오가 운전하는 자동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는 쿄꼬와 사요의 얼굴은 평화롭다. 


이들을 축복하듯이 길 양쪽으로 맨발의 승려들이 줄지어 행진하고 있다. 

승려들이 입은 장삼의 진한 오렌지빛은 이들의 삶을 환하게 밝혀주는 불꽃의 행렬로 보인다. 

소원을 담아 밤하늘로 띄워 보내는 등불처럼.

'아름답다'는 쿄꼬의 외침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영화가 끝나자 편안해진 마음에 어딘가로 휴식여행을 다녀온 듯하다.     





삶이란 무엇일까? 어떤 삶을 원하는가? 

생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삶, 성취했을 때의 기쁨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사는 삶도 있지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순간순간 즐거움을 느끼며 물 흐르듯이 사는 삶도 가능할 것이다. 


삶의 기쁨이란 거창한 성취에서 오는 것만은 아닐 터. 

길 잃은 고양이나 개들을 돌보면서도 느낄 수 있으며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같이할 때, 환한 햇살 아래 있을 때, 싱그러운 바람을 느낄 때, 잔잔한 수면을 바라볼 때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과도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요즘 우리 사회의 시각으로는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아름다움을 놓치며 살아가는 것은 아깝지 않냐고 이 영화는 조용히 묻는다.

다 함께 부르던 노래처럼, 노래하듯이 살 수 있는 삶이 여기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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