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산 이후 안전안내문자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온다.
확산 초기엔 감염자의 이동 경로도 확인하며 챙겨 봤지만, 요즘엔 또 왔구나 할 뿐 무시한다.
그런데 어느 날, 코로나 관련 안내가 아니라 실종자를 찾는다는 내용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00구에서 실종된 000 씨를 찾습니다.”로 시작되는 문구이다.
이어서 실종자의 키와 체중, 나이, 실종 당시 옷차림 등이 명시되어 있었는데, 체격이 너무 왜소한 데 눈길이 갔다. 여성 노인이었는데 145cm에 40kg 조금 넘었으니.
그 뒤로는 안전안내문자를 종종 들여다본다. 그러고 보니 실종자를 찾는 문자가 꽤 자주 올라오고 있었다.
오래전엔 신문 심인(尋人) 칸에 나오던 광고였는데, 그 내용을 그대로 시로 읊은 황지우의 [심인]이 생각나기도 했다.
당시엔 가출한 젊은이를 찾는 내용이 많아 그 팍팍한 삶이 연상되곤 했는데, 요즘은 주로 노인을 찾는다. 아마 인지장애가 있는 분들 아닐까 싶다.
드물게 찾았다는 문자가 온 적도 있다.
딱 한 번 왔으니(물론 내가 놓친 것도 있겠지만) 다른 실종자는 못 찾았다는 뜻이겠다. 노인이 여전히 실종 중이라면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까, 남 일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키나 체중이 표준 이상이 되는 경우엔, 이 사람은 괜찮을 거 같다, 어디에 있든 잘 챙겨 먹을 거 같다는 안도감이 들지만 작은 체구인 경우에는 먹먹해진다.
오늘 온 문자는 양천구에서 실종된 노인을 찾는 내용인데, 남자이고 87세이다.
키가 158센티에 48kg로 여성 보통 체구보다도 작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강서구에서 배회 중이라는 문자가 연달아 온다. ‘배회 중’이라는 단어가 괜히 가슴을 쿵 친다.
어딜 돌아다니는 걸까, 집을 찾는 것일까, 오래전 떠나온 고향을 찾아가는 걸까, 제대로 걸음을 옮기기는 할까, 밥은 먹었을까, 상상하다가 노희경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인지장애가 온 김혜자가 아기라고 생각한 베개를 소중히 업고 하염없이 도시 다리를 걸어가는 장면이다.
친구들이 산지사방 찾으러 다니다가 옛 고향 어귀에서 김혜자를 발견하는데, 그녀가 가장 친한 친구 정아에게 악다구니를 쓰는 장면은 너무 마음이 아팠다. 젊은 날 아이가 아픈데 도와주는 사람 하나도 없던 막막함이 오랜 시간이 지나 터져 나온 것이다.
약을 먹였는데도 아이가 낫지 않아 무섭다고 친구에게 전화했는데, 친구는 나도 힘든데 징징대지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결국 아이는 그녀 등에서 죽었고, 그때의 원망과 두려움과 절망과 슬픔과 아마도 분노까지 복잡하게 뒤엉킨 감정은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슴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지장애가 온 후에야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원망이 비로소 표출된다는 아이러니라니......
- 전창운 화가의 작품
엄마를 뵈러 갔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자주 누워 계실 때였는데 그날은 소파에 앉아 계셨다. 힘이 좀 나셨는지 외출하겠다고 하셔서 막 옷을 갈아입은 참이라고 간병인이 귀띔했다.
나를 보자마자 얼굴이 왜 이리 못됐냐고 하셨다.
요즘 피곤이 쌓여 있던 차라 무심하게 “요새 일이 좀 많아서 그래요.” 했더니, “볼이 통통했는데 홀쭉해져 버렸네.” “피곤해서 어쩌니.” 하시며, 이어서 “네가 E대 강의한다고 모녀가 보기 좋다고들 하더라.” 덧붙이셨다.
잠시 황당했다가, 아, 지금 엄마 기억이 90년대 초중반에 가 있구나, 싶었다.
그땐 내 얼굴이 지금보다 통통했으니까.
그냥 모른 척 넘어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에이, 그건 옛날이지. 지금은 M대학에서 가르치잖아.” 했다.
그러자 조금 당황한 듯 멈칫하시더니 “아, 그렇지. 지금은 M대학이지.” 곧 정정하셨다.
그해 구순인 엄마는 3년 전 인지장애 초기 진단을 받고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는 중이었다.
수필가로 서예가로 동분서주하던 것을 내려놓고 편안해지신 것 같아 처음엔 다행이다 싶었는데, 점차 기력이 떨어져 자주 누워 계시는 걸 보면서 한없이 쓸쓸했다.
엄마 연배로는 표준 키임에도 더 크게 보이려고 80대에도 굽 있는 구두를 신고 머리 스타일과 옷차림에 신경 쓰던 엄마가 외모에 무관심해졌다. 그 시절의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탁자 위 탁상달력 날짜 칸 밑에 “집이 텅 비었다.”라고 쓰여있다. 약간 삐뚤 하게.
간병인이 약을 사러 잠깐 외출했을 때 쓰신 것 같다고 했다. 문득 혼자라는 사실을 자각하셨나 보다.
호방한 기운이 넘친다는 찬사를 받던 서예가였는데, 크기도 고르지 않은 글자를 보고 있으니 끝없이 저 아래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건강하셨을 때 나는 옳은 소리 한답시고 지적 잘하던 딸이었다.
엄마의 잘못을 짚어줄 자식은 딸이라는 신념(?)으로, 같은 말이라도 듣기 좋게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하곤 했다. 그래서 엄마는 늘 “딸 하나 있는 게 엄마 편을 안 드냐.”라고 서운해했다. 공감이 중요하다는 말을 늘 하고 다니면서 정작 엄마를 이해하려고 하진 않았던 것이다.
“어디 가시려고 옷을 갈아입었어요?” 묻는 내 말을 못 알아듣고 눈동자가 허공을 향했다. 엄마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철렁하면서, 엄마는 언제 어디를 배회하는 중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저 가슴속 밑바닥에 묻어놓은 뭔가가 있지 않을까. 딸에게 말할라치면 매몰차게 차단해 버려 꺼내지도 못한 말이 혹시 있지 않을까.
뒤늦게 후회하며 아무것도 짐작하지 못하는 나 역시 배회 중이긴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