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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혜경 May 15. 2024

뜻밖의 정경
- 고양이와의 시적(詩的) 조우

조재형 <묘한 이야기>를 읽고 


 “내가 지켜본 고양이는 간첩이다.” 


 조재형의 <묘한 이야기>는 고양이를 ‘간첩’이라 명명하면서 익숙한 관습의 세계를 허물고 뜻밖의 정경을 구축한다. 

 작가를 “포섭해 자연으로 유인”하려고 ‘자연’이 파견한 ‘간첩’이라는 기발한 착상에서 일반적인 애묘인의 이야기와는 다르리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과연, 고양이는 인간을 자연으로 유인하는 안내자로서, ‘인공의 현실’에 취해 잊었던 본연의 삶으로 돌아가게 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자연은 ‘땅’이며 ‘어머니의 집’으로, 근원적 삶을 의미한다. 


 자연을 떠난 삶은 ‘도시’와 ‘인공의 현실’로 고층 아파트와 아스팔트, 콘크리트의 미로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돈도 벌고 비싼 것을 먹지만 즐거움이 증발된 불안한 삶이며, 요란한 소음 속에서 의욕을 잃고 지쳐가는 삶이다. 


 그리고 ‘하늘을 담을 만한 창’이었던 눈이 “짜증과 수치들이 뒤엉켜” 있는 ‘깨진 창’으로 변한 삶이다. 그러므로 근 30년을 살았어도 도시에서의 삶은 정착이 아니라 ‘유랑’이다. 진정한 뿌리를 내리지 못한, 허공에 뜬 삶인 것이다.

 

 의욕의 속도가 느려지고, 내일은 보이지 않는 무거운 나날을 보내던 작가에게 어느 날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야옹 하는 소리가 도시의 소음에 빠져 있는 나를 깨웠다.” 

고양이가 빈사상태에 놓인 작가의 영혼을 깨어나게 한 것이다. 



루이스 멘도의 작품 



이처럼 ‘불안의 숲’에서 빠져나오게 한 고양이는 상투적 일상을 뒤흔드는 시인과도 같다. 

“먼 산을 오랫동안 응시”하는 존재이며, ‘침묵을 경청할 수 있는 경당’이자 ‘봉쇄된 자연의 수도자들’이다. 

“평생 맨발로 다니고 말을 아낀다. 그들의 눈빛은 형형하다.”

 또 “타고난 옷 한 벌로 일생을 때운다.” 

“그들이 좇는 건 강건한 추위와 바닥난 굶주림과 무일푼의 침묵이다.”


“고양이의 경로를 따라가 보고 싶긴 하지만 생각만 그럴 뿐”, “불 켜진 인간의 방으로 돌아오고 만다”라고 작가가 고백하고 있듯이, 자본주의적 욕망이 팽배한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대척점에 놓인 이러한 삶이 가능할 것인가? 

인공의 세계가 뿌려놓은 달콤한 맛에 마비된 우리 영혼이 굶주림과 무일푼의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고양이처럼 살진 못할지라도, 최소한 ‘자연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음을 이 글은 넌지시 일러준다. 


‘땅’으로 돌아오니 불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음을, ‘영혼이 없는 아파트’에서 고양이가 ‘심장’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부와 명예를 향해 질주하는 세상 한 길모퉁이에서 문득 내 모습을 마주할 때, 획일화된 세계의 민낯이 생경하게 다가오리라는 것을, 그 순간 야옹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아울러 보여주고 있다.    



** 데일리한국 2024. 5.13 게재 

https://dai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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