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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혜경 Jul 23. 2024

여름의 소리, 여름의 언어 2

<메밀꽃 필 무렵>과 <여름의 정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에게 찾아온 눈부신 여름날을 그린 소설이다. 

왼손잡이요 ‘얽둑배기’로 여자와는 연분이 먼 장돌뱅이 허생원이 우연히 성서방네 처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 일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낮에는 장에서 물건을 팔고 밤에는 산길을 걸어 이동하는 장돌뱅이의 실제 삶과는 유리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나, 지리멸렬한 우리 삶에서 한 번쯤 꿈꿔 봤음직한 환상을 그려내 독자를 끌어당기고 있다. 


여름밤, 허생원은 더워서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왔다가 달이 너무 밝아서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울고 있던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치게 되어 ‘기막힌 밤’이 이루어진다. 이 경험은 허생원에게 ‘산 보람’을 느끼게 하면서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각인된다. 그래서 허생원은 이야기를 통해서 그 시간을 끊임없이 재생하는 것이다. 


꿈만 같은 이 사건은 밤과 달빛의 화학작용으로 빚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긴장의 연속인 낮과 달리 밤은 이완과 휴식의 시간이다. 각박한 현실의 시간이 아니라 평화와 화해의 시간이다. 낮이 이성이 지배하는 시간이라면 밤은 본능이 강해지는 시간이므로, 낮에 할 수 없는 일들이 가능해지는 마법을 부린다. 


이 마법을 한층 강화하는 것은 달이다.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고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어” 있는, 몽환적이며 아름다운 장면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봉평에서 제일가는 일색인 성서방네 처녀와 ‘얽둑배기’ 허생원의 연분이 맺어지고, 충주집을 사이에 두고 갈등을 겪던 동이와의 관계가 업고 업히는 정겨운 사이로 변화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메밀꽃 필 무렵”이란 여름날은 인생의 정점이자 꿈의 시간으로 피어난다.




 백수린의 소설 <여름의 정오>는 정점 중의 정점을 뜻하는 제목과 정반대로 추락하는 아찔함을 토로하는 이야기이다. 10여 년이 지난 겨울, 스무 살의 여름을 돌아보는 여성 ‘나’를 통해 풋풋하고 활기차야 할 때 어둠 속에 가라앉아 있던 날들을 불러올린다. 


 대학 첫여름방학, 오빠가 공부하고 있는 파리에 와서 지내는 동안 ‘나’는 오빠 친구인 타카히로와 많은 시간을 보낸다. 

타카히로는 열심히 사는 것과 거리가 멀다. 도서관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고 공원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종일 영화관에서 쓸데없는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낭비한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주입하려 하지 않는다. 


“도쿄는 너무 커.” “도쿄는 너무 시끄러워.” 타카히로의 말에 “서울도 그래.” 맞장구치는 모습에서 대도시의 불필요한 경쟁과 소음에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을 감지할 수 있다.  


‘나’는 타카히로의 자살 시도로 충격 속에 있다가 귀국 전날 타카히로를 만난다. 다시 보지 못하리라는 예감에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을 하려 한다. 그러나 끝내 발화되지 못하고 내면의 목소리로 묘사되는 그 말은 ‘말로는 표현해 전할 수 없는 것’으로,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J의 투신에 대한 것이다. 


그녀는 J가 그토록 다니고 싶어 했으나 점수가 모자랐다던 학교에 입학했지만,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열심히 해도 아무것도 되지 않는 세상’을 목격한 셈이므로,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아버지의 말이나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 해.” “열심히 하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라는 오빠의 말이 공허할 수밖에 없다. 


J의 죽음과 타카히로의 자살시도는 이후 9.11 테러와 현재 파리에서 마주친 시위대 대열까지, 수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죽어가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타카히로가 죽지 않고 파리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살아 있으니까 “그것이면 충분해.” 안도했다가, “그렇지만 정말 그럴까?” 의문을 갖는 것은 이런 현실에 대한 자각을 의미한다.     


성적 때문에 피어나기도 전에 생을 포기하고, 테러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공장이 붕괴되어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현실에서, 살아 있기만 하면 충분할까? 


 “누군가가 내 등을 떠미는 악몽을 자꾸만 꿔.” 

 “아닌가? 누군가를 내가 떠미는 악몽이라 했었나?” 


그녀를 괴롭히는 악몽은 나의 여름만 환하고 빛나면 끝이 아니라, 여름이란 시간을 고통스럽게 통과하는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한 다짐으로 나아간다. 이는 ‘커피의 씁쓸한 이물감’을 잊지 않으려는 행위로 묘사되며 진한 여운을 남긴다.      



** <그린에세이> 2024, 7,8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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