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원보다 벚꽃

by 황인득

아내의 낮잠 시간을 벌어줄 겸, 요즘 날씨가 좋아 딸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사실 얼마 전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다 슬쩍 들러보려 했는데, 예약제라는 말에 딸아이가 꽤 실망하며 발길을 돌렸던 곳이다. 그 눈빛이 생각나 이번엔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딸은 아빠랑 데이트 간다며 엄마에게 한껏 자랑을 한다. 여자아이라서 그런 건지,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시간이라 그런 건지 유난히 즐거워 보였다.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딸도 나에게 핸드폰을 내밀며 찍어달라고 한다. 정성껏 몇 장을 찍었는데 왜 이렇게 못 찍냐고 타박이다. 주변의 다른 분들은 예쁘게 잘만 찍던데, 내가 봐도 참 못 찍는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똥손'이다.


​안에 있는 카페는 세 분이서 일하고 계셨는데, 정신없이 일하시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표정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딸은 음료가 맛있다며 나 보고도 먹어보라고 권했다. 달달한 음료가 아이 입맛에 맛이 없을 리가 있나. 내가 만든 것보다 맛있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란다. 나는 “다행이다”라고 했고, 우리는 마주 보며 웃었다.


​“아빠는 아메리카노야?”
“응.”


​어릴 땐 나를 그저 ‘주스 만드는 아저씨’ 정도로 알던 녀석이, 이제는 아빠의 아메리카노를 알아본다. 훌쩍 커버린 녀석의 시선만큼이나 우리의 시간도 그만큼 흘렀나 싶어 기분이 묘했다.


​온실 안의 신기한 식물들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지만, 내 눈엔 시원한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공원의 벚꽃이 훨씬 예뻐 보였다. 안은 조금 후끈했고 밖은 바람이 시원해서였을까. 가꾸어진 화려함보다는 역시 자연스러운 풍경이 더 근사해 보였다.


​딸은 아주 어릴 때 이곳에 와봤던 기억이 없다더니, 조금씩 둘러보며 기억이 난다고 했다. 하지만 감동은 짧았다. 한 시간 남짓 둘러봤을까, 힘들다며 집에 가자고 한다. 빵이 먹고 싶다더니 덥다며 메뉴를 아이스크림으로 바꾼다. 카페나 마트 아이스크림은 시시하다나. 결국 녀석의 까다로운 취향이 멈춘 곳은 베스킨라빈스였다. 건방진 꼬맹이 녀석.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가 왜 벌써 왔냐고 묻는다.
“얘가 지쳤어. 저질 체력.”
내 말에 우리 셋은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입장료가 조금만 더 비쌌으면 괜히 화날 뻔한, 딱 그만큼의 유쾌한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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