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못 하는 아내와 만우절

by 황인득

어제 새벽, 브런치를 보다가 어떤 작가님의 만우절에 관한 글을 봤다. ‘아, 오늘이 만우절이구나’ 하고 글을 읽었다. 혼자 일하다 보니 누구랑 장난칠 일도 없고, 일에 치이다 보니 그 사실도 금세 잊어버렸다.


​아내는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서 4시 30분 퇴근이라고 했다. 연락이 없길래 ‘조금 더 일하나 보다’ 하고 있었다. 그때 카톡이 왔다.


​“나 바지에 똥 쌌어. 퇴근을 못 하고 있어 ㅠㅠ”


​“헐… 어쩌다가?”


“퇴근 못 할 정도야?”


​“응ㅜㅜ 바지를 빌렸어”


​“이구… 사람들도 알아?”


​“응ㅜㅜ 몇 명이 봤어”


​“그럴 수도 있지ㅜ”


​“어떡하냐… 회사 못 다님”


​사람들이 봤단다.
바지를 내렸...? 아니, 바지 밑으로...?
온갖 상상이 다 들었다. 회사 바닥, 의자, 사람들 표정까지 자동으로 그려졌다.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의심은 안 했다. ‘그럴 수도 있지’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똥 쌌다는 사람이 웃긴 영상을 보낸다.


​‘아, 진짜 이 여자 미쳤네.’ 똥 싸고 정신줄을 놨구나 싶었다. 수치심이 너무 커서 차라리 해탈한 건가 싶었다.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퇴근 후 세탁까지 머릿속으로 다 끝내고, 꽤 비장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건, 사악하게 웃고 있는 아내의 얼굴. 그제야 알았다.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던 만우절이 우리 집까지 들어왔다는 걸.


​다시 카톡을 보고 나니 나의 대답도 참 바보 같아 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평소에도 장난을 치고 서로 속이곤 했지만, 똥은 전혀 생각을 못했다. 이번엔 내가 완전히 솎았다.


​참 철없는 아줌마, 아저씨들이다.

(매를 부르는 입이지만, 실제로 맞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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