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복의 나날들

추락하고 싶지 않아서 선택했다.

by Hannah

에피소드를 쓰자면, 사랑과 전쟁 5부작 즈음은 찍을 수 있다. 자극적이고 막장이라 사람들의 이목도 끌 수 있을 테지. 하지만, 이 글들의 목적은 인기나 끌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 용기이다. 회사 점심시간과 주말마다 도서관에 와서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한 3,40대의 여성을 생각한다.


혹시 나처럼 당신도 지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나요? 슬픔과 분노에 새벽마다 소리 없는 몸부림치나요?


당신과 나, 우리는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을 가고 싶지 않아서 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만 참으면,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할 거라고... 하지만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의 발자국을 보며 자란다. 그 발자국이 질척이고 더러우면, 결국 그 아이들의 인생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아이의 손을 잡고 봄바람을 느끼고, 입가에 묻은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닦아주고,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고, 새 하얀 눈을 맞으며 붕어빵 한 개씩 사 먹는 그런 소소한 행복의 소중함을 아이에게 주었으면 한다. 나 역시 소중한 사람이라 이런 즐거움이 내겐 필요하다.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금전적, 정서적, 신체적으로 모두 힘들다. 그래도 나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을 자꾸 늪으로 끌어당기는 그에게서 아무런 희망을 보지 못했다. 차라리 나 혼자 돈 벌어서 아이들과 적절히 아끼고 저축하면 덜 억울하다. 추락하는 나를 바라보면서 시들어진 내 삶에 아무런 미련 없이 사는 것보다, 어차피 죽을 인생! 잠들기 전, 감사기도가 나오는 인생 살아보고 죽자 싶었다.


자동차 와이퍼가 낡았는데 돈이 아까워 계속 미뤄뒀다. 안 그래도 지난달에 타이어 4개를 갈아서 빠듯한데, 와이퍼에 5만 원 쓰기가 쉽지가 않더라. 그래도 수요일부터 비소식이 있고, 봄비가 종종 내릴 예정이라 더 이상 그냥 둘 수는 없다. 검색해 보니 인터넷에서 와이퍼 사서 내가 갈아 끼우면 2만 원대에도 가능했다. 일사천리로 주문하고 갈아 끼우고 보니 세상에나, 비에서 그냥 흐림으로 예보가 바뀌었다. 조금 허탈하기도 했지만, 계속 비가 안오진 않을 거다. 우리나라에는 봄비, 장맛비, 태풍, 가을비, 겨울비 등등 일 년 내내 틈틈이 오잖는가.


와장창 큰 일을 겪고 나서 막막해하는 것보다, 미리 손볼 곳이 있으면 하나씩 채워나가면 좋겠다. 부산으로 이주하기 전 다들 뜯어말렸지만 나는 미리 직장을 잡았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고, 삼 개월 뒤의 집을 구하기 위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의 직장이 간절히 필요했다. 다행히 서울에서 파트로 일했던 경험으로 외국계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일은 즐거웠지만, 당시 파트의 한계로 충분한 생활비를 못 벌어 조금 불안해하며 다녔었던 것이, 오히려 내가 자리 잡는데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잘 다니고, 아이들과 소소한 일상을 보낼 수 있다. 나는 일 년 뒤 다시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 지금 사는 오피스텔은 아이들과 같이 지내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때를 위하여 나는 작은 파트타임 직장을 찾아보고 있다. 미리 준비하고 싶다. 그래야 그날의 추위가 되풀이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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