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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PAPA Jun 17. 2023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

L

나의 회사생활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중의 한 명.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를 졸업한 L선배.

직무도 서로 다르고 지금은 근무지도 떨어져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언제든 고민이 있거나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부담 없이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회사의 선배 중 한 이기도 하다.


단둘이 만날 때 종종 그에게 농담 삼아하는 얘기가 있다.

선배는 내가 이 회사에 있도록 한 은인이자 원수라고.

좋은 일이 많을 때는 은인이고,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 때는 원수 중의 원수다.

어느 쪽이든 나의 이야기에 그는 늘 호탕하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야. 내가 언제 너한테 오라고 한 적 있냐. 허허허."




대학교 신입생이었을 때 다섯 학번 위의 복학생이었던 그를 처음 만났다.

지금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지만 내가 대학교에 다닌 10여 년 전의 이야기.

젊은 남학생들의 수많은 인간관계와 진로 계획을 단절시키는 인생의 분단선. 군대.

남자 선배들은 둘 혹은 세 학번만 차이나도 대학을 다니는 동안 친분을 쌓을 기회조차 드물었다.

서로 병역 문제를 해결하는 시기가 겹치지 않고 달랐기 때문이다.

한쪽이 병역 문제를 해결하고 복학하면 다른 한쪽이 휴학으로 부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신입생 때 자주 만날 수 있는 남자 선배들은 바로 위 학번 선배들을 제외하면 대개는 '복학생'으로 불리는 고학번 선배들.

지금에서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당시에는 병역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 자체로 경외로운 선배들이었다.

학과의 행사나 과사무실에서 첫 대면을 하게 되면 다가가기도 어렵거니와 왠지 모르게 깍듯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였다.


고학번 복학생 남자선배들 중에서도 예외적으로 편한 경우가 간혹 있었다.

권위적이지 않고 다정한 스타일이거나, 입담이 좋거나 친화력이 남다른 사람들.

L선배는 후자와는 거리가 었고 전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매력적인 호탕한 웃음과 우리 과의 '안정환'이라고 불렸을 만큼 하얀 피부에 준수한 외모가 그를 더욱 탈권위적으로 보이게 하는 후광효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첫 학기의 술자리 모임에서 이상형으로 그를 얘기하던 여자 동기들도 있었다.

적다 보니 탈권위적 요소가 아니라 그의 귀공자 같은 외모가 다른 차원의  강력한 권위였던 것 같다.

[안정환 선수의 리즈시절 @JTBC '냉장고를 부탁해']


그는 당시에 경영학과를 복수 전공하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서로 조금 더 가까워질 수가 있었다.

우리 단과대학에서 경영대학까지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었다.

 학기에 교양 수업을 듣고 경영대까지 이동하는 동선과 시간이 겹치는 요일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나는 경영학과 수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절친한 동향 친구와, 그 친구의 소개로 친해진 대학교 친구들이 경영대에 많이 있었던 것이 내가 경영대학 건물로 자주 가던 이유였다.


단과대학뿐만 아니라 경영대학 인근에서도 자주 마주하게 되면서 그는 내가 친하고 편하게 생각하는 복학생 선배 중 한 명이 되었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를 앞둔 어느 여름날, 학과 동기들과 선후배들이 마련해 준 송별회에도 그는 찾아와 줬다.

그리고 내가 입대를 하고 난 하반기, 그는 현재의 회사에 입사를 확정받고 졸업을 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전역 후 약간의 진로에 대한 고민과 방황의 시간을 갖고 나도 2년 반 만에 복학생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병역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 외에는 신입생 때보다 적응이 힘든 복학생이 돼 보니, 입대 전 만났던 복학생 형들이 유독 생각났다.

하지만 이미 학교를 떠난 선배들보다는 아직 학교에 남아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어 마주치는 선배들과의 교류가 잦았고, 가끔씩 그들을 통해 졸업한 선배들의 근황 전해 들을 수는 있었지만 따로 연락하기에는 이미 멀어진 사이였다.


그렇게 또다시 진로고민, 학점이수, 교환학생, 인턴생활 등을 지나 취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마지막 해.

문득 오래전 취업을 준비하던 복학생 그가 내 모습에 겹쳐 생각이 났다.

직접 연락하기는 애매하고 학과 사무실에서 조를 하고 있던, 그와 친한 다른 선배에게 그의 안부를 물었다.


"나름 만족하며 지낸다던데. 대리 달았다고 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갑자기 해외 법인에 한국인 재경 담당자가 필요하게 되어 나갔다 온다고 하더라. 그 소식 이후로는 서로 통 연락 못했고."


얼마 안 된 근속연수에도 해외 근무의 경험이 주어지는 회사,

멋진 우상이었던 선배가 만족하며 다닌다는 회사.

내 머릿속에는 무조건 지원해야 하고, 무조건 합격해야 할 회사였다.

지금의 혜안을 가졌더라면 낮은 연차의 직원들까지 해외로 보내야 했을 만큼 불안정했던 당시의 인력 구조도 간파했겠지만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선배님을 따라 이곳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오실 일 있으실 때 꼭 한 번 뵙고 싶습니다.'


입사하고 얼마 안 되어 조직도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여 메일을 보냈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메일은 회신이 없었다.

해외에 나가면 메일 주소가 바뀌는 건가? 조직도에 메일 주소가 잘못 입력되어 있나?

알 수 없는 의문의 시간들이 지나고 그에게 메일을 보냈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던 그해 겨울.

퇴근 시간이 지나 야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저 멀리서 인사를 하면서 다가왔다.


"야. 잘 지냈냐?"

"(두리번. 나한테 인사하는 건가?) 아... 안녕하십니까."

"자식. 못 알아보네. 나 L이다. 허허허."


정말로 못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껍고 하얀 겨울잠바까지 입고 터질 듯 한 얼굴로 나타난 그는 귀공자 안정환이 아니라 전한 백곰 모습이었다.

 @ Pixabay

짧은 한국휴가 일정에 재경 부서원들에게만 살짝 인사하고 가려고 퇴근시간 맞춰 왔다가 내가 입사해서 근무하고 있다는 게 생각났다고 했다.

생각난 김에 우리 부서에 잠시 들러봤는데 때마침 내가 자리에 남아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메일 보낸 건 봤었다. 정신없을 때라 회신한다고 하고 완전 깜빡했었다. 미안. 답장은 못했지만 한국 휴가 올 때 인사하려 했어. 기약은 없지만 다음번 한국에 올 때는 제대로 보자."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가 근무하던 해외법인 국가에 신사업이 확대되면서 4년 차에 나도 대리가 됨과 동시에 장기 출장 지원을 가게 되었다.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다시 만나게 된 그와 오랜 회포를 풀며 또 다른 추억의 시간들을 쌓을 수 있었다.

내가 한국에 복귀한 반년 뒤에 그도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복귀하면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회사밖에서 서로의 친구와 지인들도 소개해주고 어울리게 되면서, 가까웠지만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학연. 한국사회에서는 부정적으로 많이 쓰이지만 같은 대학교, 같은 학과까지 나와서 같은 회사를 왔다는 공통점과 추억들이 필연적으로 그와 나를 더 돈독한 관계로 만들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 후배들도 그를 늘 편하게 해 주시는 좋은 분이라고 얘기했던 걸 보면, 연고를 떠나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을 가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가 정말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다.


"편한 사이가 제일 좋은 사이다."

"나한테는 그냥 편하게 해라. 괜찮다. 예의 차린다고 괜히 애쓰지 말고."


몇 년 전 술자리에서 '이 형님, 많이 취하셨네.'라고 했더니,

'이 형님'과 발음이 비슷한 그의 이름을 부른 줄 알았던 그.

'야. 아무리 그래도 형 이름을 그렇게 막 부르는 건 아니지.'라고 오해에서 비롯된 정색했던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후배들한테 군기를 잡거나 태도 지적을 하는 일은 그에게서 찾아볼 수 다.

외모는 점점 더 곰돌이 푸(Pooh)처럼 푸근한 모습으로 변해가면서도 귀공자 같은 넓은 아량은 변하지 않고 있는 그이다.




"친한 고등학교 후배 중에 자기 일 관련해서 책 몇 권 낸 녀석 있다. 혹시 네가 필요한 부분 있으면 만나게 해 줄 테니 말하거라."

"딸내미 글은 잘 쓰고 있나? 계속 쓰고 있다고? 잘하고 있다. 응원한다. 열심히 해라."


올해는 조금 달라지고 싶다고,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을 때 그가 했던 말들이다.

어디에 글을 쓰는지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를 쓰는지 묻지 않는 언뜻 무심해 보이는 그의 말투지만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는 늘 상대방이 말하기를 원할 때, 도움이 필요할 때 먼저 편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먼저 글을 쓰는 공간과 회사이야기도 쓸 거라고 말한 적 없기에 그는 내가 본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쓰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덕분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이 공간에 편하게 써본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승부를 봐야 할지,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더 과감히 준비해서 회사를 떠날 새로운 시도를 해볼지 고민의 줄타기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내 욕심에 여러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사실 고되고 피로한 일이기도 하다.

그를 떠올리며 글을 써보면 뭔가 마음의 편안함이 들 것 같았다.

그에게 고민을 얘기했다면 분명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편하게 해라. 네 마음이 편한 것이 제일 좋은 선택이다."


확실한 건 내가 일주일에 한 편은 글을 쓰기로 한 다짐을 지켜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사실이다.

글을 쓸 여유가 많지 않았던 이번주는 수월하게 써질 것만 같은 그라는 소재를 그렇게 꺼내 보았고...

역시나 나의 마음은 편해졌다.


이 형님처럼 편하게 대해주는 인연이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어디서든 편히 의지할 수 있는 좋은 관계로 계속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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