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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PAPA Jul 22. 2023

돌파구를 찾아내는 사람

K

2023년 상반기. 회사 내에서 가장 많은 애정을 쏟았던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났다.

많은 준비와 기대를 하였지만 결론적으로 전혀 만족할 만한 성지 못했다.

물론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쌓인 경험과 향상된 역량들이 분명 있겠지만,

사람인 이상 가시적 성를 얻어내지 못한 것에 후회나 미련이 아예 없다고 한다면 거짓일 것이다.

프로젝트에 대한 내부 니즈부터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에서부터 사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

내부의 니즈부터 꿰뚫어 보지 못했는데 어찌 외부 시장의 니즈를 얘기할 수 있었겠는가.

결과적으로는 준비가 덜 된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고, 만 10년의 회사 생활을 했지만 갈 길이 멀다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그 시간 동안 오히려 내 시야가 좁아진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Pixabay


그래도 빨리 훌훌 털고 남은 하반기 새로운 시도들을 회사 내외부에서 다시 도전해 보겠노라 마음먹었다.

다음날 출근길 유튜브가 귀신같이 추천해 준 '김창옥TV'의 영상 의외의 곳에서 영감과 힘을 기도 했다.

'연인과의 이별에서도 늘 최선을 다해 아낌없이 사랑한 쪽은 지나간 사랑에 후회나 미련도 덜하다.

이후에도 더 좋은 인연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업무나 다른 인간관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

진심으로 열정과 애정을 쏟았다면 또 다른 기회가 있지 않을까?'

주변 가족들이나 지인들, 그리고 지난주 K 부서장이 그의 청첩 모임에서 해준 얘기도 큰 격려와 위로가 되었다.




K는 외부에서 경력직으로 회사에 합류를 한 사람이었다.

우리 회사의 문화약간 보수적인 면이 있긴 하나, 비단 우리 회사만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조직은 외부에서 온 경력직에 대해 다소 배타적인 측면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해당 부서의 이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금방 또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라는 초기의 예상을 모두 깨고 오히려 그는 이른 시기에 부서장까지 되었다.

본인의 스타일대로 조금씩 조금씩 저변을 넓혀온 그는 조직 내에서 이례적인 기회를 잡았다.

물론 이전 부서장이 불가피한 사유로 갑자기 떠난 것과 그의 업무가 전문직 분야라는 것도 큰 요인이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그가 회사에서 보여준 적응력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빠른 시간 내 쌓아 올린 신뢰나 호감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내가 켜본 그는 본인만의 기준이나 기호가 분명한 사람이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선호를 명확하게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맞추기 위해서도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업무협업이 많은 부서이기도 했고 그가 나의 이전 부서장이나 현 부서장과도 친분이 있어 종종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저녁모임 자리를 갖게 될 일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그와 처음으로 소규모 저녁약속을 추진하던 날, 그의 대답이 생각난다.

'해산물을 좋아하신다고요? 저도 멍게나 해삼류만 아니면 해산물 다 좋습니다!'

'술은... 막걸리만 다음날 숙취가 심해 피하고 싶고, 나머지 주종은 무엇이든 좋습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부분은 명확히 밝히면서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주려는 것이 느껴졌다.

보통 술자리를 중심으로 한 모임이 잦아지면 어느샌가 말을 놓거나 편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는 늘 나이가 어린 나에게도 높임말을 썼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아마 내 이야기에 동의하겠지만 몇 번의 단체만남과 별개로 가장 가까워지게 된 계기는 지난해 여름 단둘이 동네에서 낮술을 했던 때였다.

서울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협력사와의 미팅을 그와 같이 가게 되었다.

그의 부모님께서 사시고 계 동네가 우리 집에서 멀지 않아 그가 본가에서 하루 자고, 내 차로 그를 태워 오전 일찍 바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알고 보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내게는 오히려 이사 온 지 몇 년 안 된 지역이지만 그에게는 학창 시절부터 아주 오랫동안 살았던 지역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차피 회사 출근은 불필요하니 이른 저녁 겸 술 한잔 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는 연신 친구들과 어울리던 동네에서 같은 회사사람과 낮술을 해보는 건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나도 그날 새롭게 게 된 그의 시시콜콜한 유년 시절 이야기들이 오히려 그를 더 가깝게 느끼게 했다.




그는 본인이 좋아하는 취미에 대한 기준도 높고 이상형에 대한 기준도 그에 맞춰 아주 높았다.

마흔을 넘긴 그가 자주 언급하는 이상형의 연예인을 듣고 솔직히 '이분, 결혼 못하시겠는데?'라고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결국 그는 심지어 나보다도 훨씬 어리시고, 그가 자주 언급했던 이상형의 연예인보다도 훨씬 아름다우신 신부님과 뜨거운 여름날 백년가약을 맺게 되었다.

역시나 그는 능력자였다.

가 항상 겸손하게 이야기했지만, 예비신부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수많은 시간 공들였을 하나하나의 노력(Build-Up)의 수준 또한 낮지 않았을 거라 감히 생각해 본다.


[KBS 개그콘서트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24화, '눈이 높다'의 기준]


얼마 전 자주 함께 만나던 몇몇 선후배와 함께 그의 청첩 모임에 초대받았다.

마음 한편에 해소되지 않은 고민들을 안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모처럼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머지 일행들을 먼저 택시를 태워 보내고 그와 단 둘이 같은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가 결혼 후 살게 될 신혼집을 우리 집과 가까운 그의 본가 근처로 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만 남게 되었을 때 그가 갑자기 나에게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본인이 을 때는 지금 나에게는 열정의 돌파구가 확실히 필요해 보인다고.

어떤 방향으로든 반드시 돌파구는 생길 것이니 계속 잘 준비해 보라고.

구체적인 얘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가진 고민과 생각을 꿰뚫어 본 그가 놀라웠다.


같이 버스를 기다리고 같은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그는 본인이 30대에 겪었던 고민과 고충들을 이야기해 줬다.

그의 표면적인 이력으로는 들여다볼 수 없는 말 그대로 그 개인의 경험과 배경의 이야기들이었다.

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본인의 지난 이야기를 솔직하게 얘기해 주는 그 마음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늘 어깨 위의 화려한 자신감을 얹고 사는 듯 해보이는 그였지만 그 역시 나름대로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왔다는 것.

그럼에도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내기 위해 드러나지 않은 치열한 노력을 했다는 것.

그가 먼저 버스를 내리고 몇 정거장을 더 지나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 동안 그의 말들이 여운에 남았다.


'인생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행복 기준은 불명확하며 상대적이다.

중요한 것은 행복의 추구가 아 나아지개선과 성장을 추구하 사는 것이다.'

정확한 문구는 아니지만 신입사원 때 인상 깊게 봤던 문장들과 매일매일 더 나은 나가 되자며 다짐했던 그때의 열정이 다시 생각났다.

어떻게든 어제보다는 더 나은 나와 주변의 삶을 만들기 위해 하나씩 하나씩 돌파해나가 보는 게 중요한 건 아닐까.

그 뒤에 행복한 길이 있을지 더 큰 불행의 길이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다.




며칠 전 저녁 시간, 동네 놀이터에서 딸아이와 딸아이 친구네와 같이 놀다 집으로 들어가려는 길.

딸아이 친구가 아파트 공동 현관문 앞 쪽 바닥에 매미가 떨어져 있다며 소리를 쳤다.

휴대전화 조명을 켜서 비춰보니 날개가 있는 성충이 아니고 짙은 갈색의 큰 유충이었다.

7년이 넘는 시간성충이 되기 위해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매미.

왜인지 모를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어서 현관문 근처 가장 가까운 나무에 잘 붙여주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보니 어제와 같은 그 친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놔줬던 곳과 거의 비슷한 위치에  자리 잡고 탈피를 준비하고 있는 유충이 있었다.

그리고 며칠을 오가며 가만히 지켜보았다.

부디 포기하지 말고 언젠가 껍질을 뚫고 나와 힘차게 울어보라는 마음이었다.

탈피 후의 짧은 노래  매미에게 다가올 또 다른 시련과 죽음은 피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날개를 한 번이라도 더 기 위해 기꺼이 나아가야 하는 일테니까.


그리고 K의 결혼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분명 그의 새로운 결혼생활 행복할 것이라고만할 수 없겠지만,

그는 그의 또 다른 한걸음을 내디딘 것이고, 본인만의 돌파구를 찾아 나아가는 삶을 살 것이 분명하다.


다시 한번 푸르른 여름날의 결혼을 축하하며,
나 또한 새로운 탈피를 다시 준비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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