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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PAPA Sep 23. 2023

에너지가 많은 사람

J

넥타이의 기원

17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크라바트(Cravat)'라는 설이 유력하다.
'30년 전쟁' 당시 프랑스 왕실을 보호하기 위해 크로아티아의 병사들이 파리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모두 스카프를 목에 감고 있었다.
무사귀환의 염원을 담아 병사들의 아내나 연인이 감아준 일종의 부적이었다.
지금도 넥타이를 프랑스어로는 크라바트(Cravate)라고 부른다.
결국 넥타이의 기원에는 그 이름뿐만 아니라 간절한 소망을 담은
 '사랑의 징표'라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이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


몇 해 전부터 회사에서 자율복장 제도가 시행되면서 정장을 입을 일이 거의 없어졌다.

중요한 보고나 회의가 예정되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회사의 지침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편하게 입고 출근을 한다.

사실 정말 편하다.

예전에는 주말마다 직접 셔츠를 다리거나 세탁소를 들르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일과였다.

구두도 자주 닦고 신경 써야 했다.

지금은 한 분만 남아 계시지만 직원들의 구두를 수거하여 광이 나게 닦아주시는 아저씨들도 여러 명 계셨다.

요즘은 찾아보기가 힘들지만 회사 근처에 조그만 노상 구둣방도 참 많았다.


넥타이를 매야 할 일도 훨씬 많았다.

기본복장이 넥타이를 안 하는 정장이었고, 내부든 외부든 누군가와 미팅이 잡히면 넥타이를 꺼내 매고는 했다.

정장을 잘 입지 않게 되니 넥타이를 맬 일도 없어지고 대부분 옷장 안에 잠들어 있다.

그러고 보면 넥타이들은 거의 다 내가 산 것이 아닌 주변에서  선물이다.

요새도 아주 가끔씩 중요한 행사에 꺼내 착용하는 색상도 질감도 좋은 고급 넥타이는 100%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았던 것이다.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고 기념일에 받았던 것, 해외 프로젝트 파견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X 선배가 사준 환송 선물, 그리고 신입 사원이었던 해 J 선배가 선물해 준 것.




J선배는 입사 때 같은 부서에서 처음 만났다.

글로 표현하기가 참 어렵지만 그를 보면 딱 봐도 좋은 사람이구나가 느껴지는 아우라가 있었다.

하얀 피부에 웃는 상. 할 말은 다 하면서도 유머 가득한 말투와 제스처.

'J야' 'J야' 'J야'

사무실 여기저기서 그보다 윗 직급이었던 사람들이 그를 다정스레 부르는 메아리 같은 잔상들이 기억난다.

업무 외에도 전산기기가 잘 안 되거나 급하게 확인할 일이 있을 때면 다들 그를 1순위로 찾았고,

그는 귀찮아하는 기색 하나 없이 친절한 해결사처럼 사무실을 순회하였다.


그는 한 지점의 지원 부서에서 사무를 보조하는 계약직으로 근무를 시작했다가,

대인친화력이든 업무처리력이든 모든 면에서 출중한 부각을 드러내 정규직이 되었다.

해당 지점에서 몇 년 더 근무를 하다가 본사 조직에도 그에 대한 좋은 평판이 빠르게 퍼져,

우리 부서장이 인력 충원 시 영입을 했던 사례였다.

신입사원 때 그를 지켜보면서 업무역량은 학벌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오히려 명문대학 중 한 곳에서 석사까지 했던 다른 선배는 인성으로든 업무에서든 모든 부서원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기에 더 대조가 되기도 했다.

그는 지방의 인지도가 높지 않은 한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학과를 나왔었다.

컴퓨터를 공부하며 스스로를 고도의 인공지능으로 프로그래밍하는 비밀 연구라도 시도했었던 것일까.

최근 화두였던 용어로 표현하면 그는 정말 인간의 모습을 한 ChatGPT 같았다.

['Bicentennial Man', 2000年]


삶의 경험이 풍부했던 그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자동차에도 조예가 깊어 다른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 또한 나중에 처음 차를 살 때 그에게 큰 조언과 도움을 받았었다.

단순히 맛집을 잘 알거나 요리를 잘한다는 수준뿐만이 아니라 재료의 산지나 취급정보 등에도 빠삭했다.

사람들과의 친화력도 좋아서 관련 유관업체 외에도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과도 친분을 유지하면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입사 후 1~2년간의 시기 그와 수많은 야근을 함께 하며 퇴근 후 많은 술잔을 함께 기울였었다.

그 덕분에 지금도 회사에서 큰 의지가 되는 F 선배 등과도 각별해지고, 관계적으로나 업무적으로나 회사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혼을 일찍 하여 지금의 내 딸아이 나이만큼의 아들이 있었던 그가 어떻게 그렇게 회사와 가정에 다 에너지를 쏟을 수 있었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혀가 내둘러지지만 말이다.




"내가 요새 자료 확인 차 옛날에 했던 프로젝트들 다 뒤져보고 있는데,

지금 보니 너 뭐 엄청 열심히 많이 했더라?"


얼마 전 그로부터 사내 메시지를 받았다.

열정이 더 충만했던 시기, 지금은 회사를 떠난 여자선배 Y와 같이 굵직한 몇 건의 프로젝트들을 배정받아 전략이나 기준을 수립하는 업무를 주로 맡았다.

입사 후 극 초기에는 주로 그를 포함해 다른 남자 선배들과 실제 추진이 개시된 프로젝트의 초기 운영을 관리하는 쪽을 맡다가 기획 성격의 업무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주중 내내 야근할 정도로 밀려오는 업무를 쳐내기에 바빴던 당시 그는 상대적으로 내가 편한 업무를 맡게 되어 이상적인 탁상공론이나 준비한다고 생각했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도 이제 부서의 중간관리자가 되어 더 넓어진 시선으로 과거 자료들을 살펴보니 열정 가득한 고민의 흔적과 노력들이 눈에 띄었나 보다.

 

올해 경영진의 큰 변화와 새로운 성장 전략 기조 하에서 전사적으로 여러 가지 과제들이 부여되었다.

그가 이끄는 파트가 맡게 된 큰 과제가 사실은 오래전 내가 맡았던 업무와도 본질은 다르지 않아 그가 더 유의 깊게 봤던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때의 자료들은 내가 다시 봐도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정말 회사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가득 담긴 작품들이다.

윗선에서 생각하는 우선순위나 중요도와 달라 당시에는 크게 빛을 못 본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종종 다른 사람들로부터 업무 하는데 아주 유익한 참고나 도움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보람을 느끼며 나 자신도 그때의 열정을 상기해보곤 했다.

솔직히 미혼이었고 혼자만 챙기면 되었던 그 시절은 업무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을 만큼 에너지가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결혼을 하면서, 아이가 생기면서 등으로 점점 회사나 내 일에는 그만큼 쓸 에너지가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과연 그러한 변수들이 생각보다 영향이 큰 것일까란 생각도 최근에 했다.


지금의 나의 업무와는 크게 관련이 없지만 그의 요청이라서 그가 직원들과 함께하는 아이디어 회의에 배석한 적이 있다.

나는 일회성으로 참석하였지만 그 이후로도 회의실에서 열띤 토의를 하며 자료를 수정하고 있는 그의 모습들을 볼 때면 무언가에 대한 열정이나 애정도 타고난 선천지기(先天之氣)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 둘을 키우며 여전히 애주가에다가 주말에는 가족들과 거의 대부분 여행이나 캠핑까지 다니는 그의 에너지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MBC, '나혼자산다', 애정하는 아티스트 송민호 님과 기안84 님의 캠핑]


"그래서 후회해?"


작년 말 다시 회사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한번 크게 들 무렵 술자리에서 그가 내게 했던 말이었다.

사실 신입사원 시절 외부에서 생각했던 기대치와 너무 다른 회사의 모습과 사내에서의 스트레스로 기력이 소진되어 퇴사까지 생각했었다. (비하인드 스토리)

그때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나를 강하게 말리고 붙잡은 것이 그였다.

다른 선배들은 하루라도 빨리 다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얘기했지만,

그는 단순히 힘들다는 생각만으로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충분히 준비를 해서 나가라고 조언했었다.


결국에는 해외근무와 결혼이라는 회사의 내외부에서 받은 기회 혹은 명분으로 남는 길을 택했지만,

사실 내 마음은 늘 알고 있었다.

내가 도전보다 결국 안정적인 길들을 택해왔던 것이라는 걸.

도전이 좋고 안정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도전지향적이고 싶었지만 안정지향적인 사람이었던 나 자신에 대한 소회이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애매하지만 회사일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다시 바닥을 치기 시작한 작년 연말부터 강한 도전욕구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의 이상한 기류를 눈치챈 그가 술자리에서 내게 단도직입적으로 후회하는지를 물었던 것이다.

자리에 같이 있던 F 선배가 그가 듣고 싶어 할 이야기에 대한 말을 분위기 좋게 꺼냈다.

'후회하지 않는다, 옛날에 붙잡아 준 선배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거라고.

물론 나도 알고 있다. 그가 신입사원이었던 나를 얼마나 아꼈고 잘해줬는지,

그로 인해 지금의 회사에서 쓰러지지 않고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는지도.

하지만 그때 그가 듣고 싶었던 대답을 명확히 안 했던 탓일까,

아니면 올해 중반까지도 나의 고민이 계속되었던 탓일까.

올해는 그와도 조금은 멀어진 느낌이고 예년만큼 그를 자주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에게서 받은 애정은 언제나 늘 감사하게 마음에 매고 간직하고 있다.




"선배. 오후 늦게 미팅이 있는데 넥타이를 두고 온 것 같아요. 남는 것 하나만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거 그냥 너 가져."


입사 후 1년도 안되었을 무렵으로 시간을 더 돌려본다.

넥타이를 빌리는 내게 그는 옷장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제일 좋은 넥타이 하나를 선뜻 내주었다.

딱 봐도 비싼 명품 브랜드인지라 빌려만 쓰고 돌려드리겠다고 말했는데도 그는 계속 그냥 받으라고 하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의 동갑 친구이자 아들 둘을 키우고 있던 노련한 여자선배가 다가와 슬쩍 중재를 했다.


"oo 씨. 이런 건 그냥 고맙게 받아. 좋아해서 주는 거잖아."


그때 그는 내가 앞으로 힘든 회사생활 잘 버텨내고 잘하라는 '사랑의 징표'를 건네줬던 그.

이제는 나도 그때의 그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그와 간단히 저녁을 함께 했는데 그는 요새 좋아하는 캠핑도 못 갈 만큼 바쁘다고 했다.

그 또한 최근에 맡고 있는 정신없는 프로젝트가 정리되고,

나 또한 조금 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더 깊게 마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을 때 함께 캠핑을 한 번 가기로 그와 약속을 했다.

어두운 밤, 캠핑장에서 그와 술잔을 기울이며 도란도란 밀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앞으로의 인생의 길에서 마주할 시련들 또한
무사히 헤쳐나가 보자는 소망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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