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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PAPA Aug 12. 2023

내공을 키워준 사람

N

최근에 주변에서 도인 같아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치열하게 달려왔던 지난 몇 달간의 시간 후 주어진 심신의 여유가 가장 큰 요인이리라.

휴가 시간 동안 좋은 글들과 한동안 못 봤던 무협지를 탐독하며 조용히 운기조식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부정적인 생각들을 흘려보내 다른 긍정적인 공력들이 빈자리를 채운다.


온라인에 꾸준히 나만의 수양록(修養錄)을 써보고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얼마나 컸었는지도 다시 한번 돌아본다.

아직 더 내공을 키우기 위해 아직 조금 더 정화해야 할 것들이 남았는데 N에 대한 기억도 그중 하나다.

@ 나무위키

N은 입사 시 내가 배정받은 파트의 장(長)이었다.

배치부서 면담 때 나는 1순위로 인사팀, 2순위로 내가 배정받은 팀을 적어냈었다.

나중에 들은 후문으로 내가 인사팀으로 배치될 예정이었으나 막무가내로 그가 남자직원을 요구하여

같은 희망순위를 제출한 여자 동기와 최종적으로 배치가 바뀌었다고 했다.

다른 부서로 전출된 다른 여자선배와 그와의 갈등으로 부서에 공석이 생겼던 터라 그는 그것을 성별의 문제로 단순히 치부해 버리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예전 직급 기준으로 만년과장이었던 그.

흔히 술톤이라 말하는 검은색 피부에 눈 밑의 검은 사마귀 점,

그리고 딱 봐도 표독스러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매일 단정히 빗어 넘긴 이대팔(2:8) 가르마가 심히 인상적이었다.

무협지의 등장인물로 표현해 보자면 흑도의 방주까지는 못 미칠 것 같고,

총관 정도에 어울릴만한 인상이었다.


실질적으로 차장급 대우를 받고 있었고 차장으로의 진급을 끊임없이 갈구했던 그지만,

이미 적절한 진급 시기를 놓쳐 실제로 진급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진급에 대한 피해의식과 보상심리 때문이었을까.

그는 협력사에 대한 갑질에 능했고, 문제가 될 만한 요구들을 서슴없이 지시했다.




"내가 허수아비로 보여?"


그는 자기 지시에 조금이라도 맞지 않게 업무를 진행하면 얼굴을 붉히며 위협적으로 서서 내게 말했다.

전혀 허수아비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그렇게 말하니 오히려 사무실 한복판에 그의 얼굴을 하고 서 있는 허수아비가 연상되었다.

화내는 사람이 하수고 방귀 뀐 사람이 성낸다는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뿐만 아니라 같은 부서의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와 충돌이 날 수밖에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내 위의 J와 H사형, Y사매를 비롯하여 성별을 막론하고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도 그를 따르는 세(勢)는 있었는데, 휘하의 만년대리 몇 분들과 다소 독특한 성격의 선배 한 명이었다.

부서 내 그와 가까운 사람과 가깝지 않은 사람들 간의 미묘한 갈등이 지속되었는데, 서로를 조직의 정파로 여기고 상대 진영을 사파로 여기며 경원시하는 일이었다.

단합을 일환으로 진행된 회식에서도 사실상 자리는 양분되었고, 일부러 자리를 섞어도 서로가 영혼 없는 대화와 미소가 냉랭하게 오갈 뿐이었다.


조직이 무서운 것은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회사라는 곳이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느낀 시기였다.

내가 입사한 다음 해, 양쪽 진영에서 한 명씩을 다른 부서로 전출시켰다.

회사에서 꼭 내 마음과 맞는 사람들과만 일할 수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낀 해였다.

@열혈강호 for kakao 게임


러다 그 해, 결국 사달이 나고 만다.

끝내 진급의 꿈을 이루지 못한 그는 선을 넘어 폭주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노골적으로 무리수들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실무자들이 극비로 하고 있는 내용들을 특정업체들이 알고 움직이는 경우들이 생겼다.

누가 봐도 그 이권의 중심에는 그가 있었다.


훗날 알게 된 이야기지만 그의 가정사에도 문제가 있었다.

새로운 살림을 시작하면서 경제적으로 몹시 궁해졌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회사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무리해서 전하려 했던 것 같다.

그의 행동들이 결국 윗선에도 피해를 미치기 시작했고, 그나마 그가 조직을 위해 헌신했던 과거를 치하하며 슬쩍 눈감아 주던 사람들도 더 이상 그를 비호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머지않아 조직의 한직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몇 년 뒤.

P선배 다른 몇 명의 선배들과 회사 근처의 횟집에서 퇴근 후 술 한잔을 하는 날이었다.

흡연을 하는 한 선배의 말벗으로 따라나간 식당 밖에서 우연히 그와 그의 일행을 마주쳤다.

굳이 아는 척을 하고 싶지 않기도 했거니와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살가워 보이지만은 않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날은 그의 마지막 출근 일이었다.

회사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그는 결국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강산도 변하듯 내 마음에서도 그에 대한 부정적 사념들은 거의 사라졌다.

이제 와서 그를 동정한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를 다시 떠올려보는 건 그를 반면교사로 삼아 앞으로 나는 더 큰 내공을 가진 사람이 되어 같은 후회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일환이다.

최근에 젊음의 10년을 보낸 회사에 대한 회의감 깊이 빠졌었다.

동시에 마음 한 편에 피해의식이나 보상심리가 꿈틀댄 것도 사실이었다.

나의 신입시절 당시, 10년의 2배가 넘는 시간을 보냈던 그의 마음은 오죽했을까를 잠시 생각했었다.


회사라는 문파가 주는 배경이 오롯이 나의 내공이라 착각하게 되는 건 큰 위험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본인의 내을 넘어서는 폭주는 주화입마에 빠져들고 말게 하듯, 무리한 욕심은 사람을 병들고 망치게 한다는 것을 그를 통해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언제든 스스로가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만의 내공에 정진하고 힘써야 한다는 사실도.


이제는 최소한 내가 하수라는 사실을 명확히 각했으니,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는 진정한 고수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 힘써보려 한다.


내 삶의 단전에 집중하고
나의 내공을 키우는 것에 정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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