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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PAPA Oct 14. 2023

잘 맞춰주는 사람

I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누구와 함께 일하고 싶으십니까?

1. 일 잘하는데 성격이 나쁜 사람
2. 일 못하는데 성격이 좋은 사람


얼마 전 출근길 버스의 TV 동영상에서 회사원 배역을 맡게 된 배우들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하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내가 신입사원 일 때도 같은 질문이 있었는데...'

회사에서 하는 사람들의 고민의 본질은 여전히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정답은 없는 질문.

재미 삼아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지만 현실은 이분법이 아니기도 하다.

과거의 나는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니 강아지든 망아지든 일 잘하는 것이 최고라 생각한 적도 있다.

대개 일을 못 또는 안 하는 사람들이 다른 부서에 사람 좋은 척 사내정치를 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시각에서 보이기도 했다.

회사 생활이란 단순 업무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관련된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위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나중에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위에 대한 질문을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받는다면 난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차피 서로 부족한 부분을 맞춰야 하는 거라면 나랑 더 잘 맞는 사람!"




잘 맞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연인으로서의 이상형을 말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감적으로 결이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I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해외 생활을 마치고 바로 인사팀으로 배정이 되었을 때였다.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조직도를 보니 우리 어머니의 성함과 같은 예쁜 이름의 후배가 눈에 띄었다.

업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이라는 것은 직급을 보고 알 수 있었고,

프로필 사진을 아직 등록해두지 않았기에 나는 당연히 여자직원인 줄만 알았다.

해당 부서의 첫 출근일에 시커멓고 큰 남정네가 인사를 하며 그 이름을 밝히기 전까지.


[노라 정(Nora Jeong) @무한도전]


그래도 그는 내게 이름뿐만 아니라 정말 예쁜 후배였다.

본인보다 조금 늦게 부서에 새로 온 나를 알뜰살뜰 나를 많이 챙겨주었다.

나의 기준에서 착하다는 건, 자신의 편의나 원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착한 그는, 그와 함께 업무를 하는 시간 동안 신혼과 출산을 거친 나를 진심으로 배려해 줬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할 무렵, 우리는 새벽에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추운 겨울날은 정말이나 고욕이었다.

교통이 끊긴 새벽. 택시를 잡아야만 집에 갈 수 있는데 외곽 도시로 장거리를 뛰지 않는 이상 택시는 쉬이 잡히지 않았다.

둘이서 벌벌 떨며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할 때도 그는 늘 먼저 온 택시에 나를 태워 보냈다.


"형수님 기다리시니 얼른 먼저 타고 들어가세요."




아내의 직장동료 중 메뉴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의 줄임말)라 놀림받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녀는 무엇을 먹을지 늘 묻는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생각나는 메뉴를 얘기해도

결국에는 그녀가 먹고 싶은 것으로 좁혀진다고 한다.


I는 그런 점에서 정반대의 인물이다.

뭐 먹고 싶냐고 물으면 그는 늘 한결같이 대답한다.


"아무거나 먹어요."

"형님 좋아하는 걸로 드시죠!"


아무리 물어봐도 선호를 밝히지 않는 그.

호불호가 강한 나로서는 그가 정말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단순히 식사 메뉴뿐만 아니라 업무에서도 그의 성향은 일관되었다.

업무경계가 불분명하게 갑작스럽게 내려오는 긴급 업무들이 몰려도 그는 늘 싫은 소리하나 하지 않고 묵묵히 일을 했다.


물론 당시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의 업무 완성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다.

그걸 알고 있는 부서장도 그에게 품은 많이 들지만 중요도는 높지 않은 업무들을 주로 배정했었다.

문서 작업 전 방대한 사전 데이터(Raw-Data)를 취합하거나 정리하는 업무들이 많았다.

스트레스가 많을 법한 업무임에도 그는 크게 동요하거나 내색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내가 인사부서를 떠나고 시간이 꽤 지났을 무렵,

그 또한 인건비 관리와 평가업무를 맡았던 연장선에서 협업이 많았던 기획부서의 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부서 이동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한 가지 추진하게 되었다.

엄청난 투입에 비해 실제 해당 프로젝트가 지속적으로 유지될지 매우 불투명했기에,

나는 사업계획수립의 실무를 담당하는 그에게 프로젝트의 존폐여부 가능성에 대해 솔직한 조언을 해줄 것을 개인적으로 요청했다.

지속 가능성이 낮다면 하루라도 빨리 다른 곳으로 에너지를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애매하게 웃고 말 뿐 내가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결과적으로 해당 프로젝트는 허무하게 사라졌다.

물론 그가 함부로 그것을 결정할 수 없는 위치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힘을 다했던 것이 어그러지자, 원망의 화살은 그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에게 건조하고 냉담한 감정을 보이자 그 또한 나를 어려워하고 피하기 시작했다.

그 점이 나는 더욱더 서운해졌다.


충격의 여파가 지나가고 나니 프로젝트를 경험해 본 자체 큰 의미가 있었기에 실질적으로 지속되지 못한 건 오히려 괜찮았다.

내가 그에게 정말 듣고 싶었던 대답은 사실 다른 것이 아니었다.

나의 고민과 노력의 과정을 알고 있는 그가 내게 정말 고생했다고, 신경을 더 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길 바랐다.

어찌 보면 끝까지 나를 지지하고 맞춰주길 바라는 나의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나 또한 마음 한편에서 당연히 그는 늘 불만 없이 내가 원하는 것에 맞춰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영화 '부당거래(2010)' 명대사]


일방향적인 관계는 영원히 유지가 될 수 없다.

나 또한 최선을 다해 맞추려 노력한 선배들이 나에게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할 때 힘들고 서운했듯,

그 또한 내게 서운함을 느꼈을 것이다.

잘 맞는다는 건 어느 한쪽이 무리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간에 이해하려 노력하는 그런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생활이 정말 어려운 것은 공적인 업무와 사적인 인간관계가 완벽히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 할 때는 감정을 섞지 마.'


많은 선배들이 조언해 주었지만 실제 업무를 하며 생기는 갈등 상황에서,

사람에 대한 감정을 완벽히 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방치하면 그 인간관계는 결국 파탄에 이르게 된다.

쉽지 않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생각은 의외로 단순하기도 하다.

지금 순간의 갈등 상황은 결국 일시적인 상황 때문이라는 것을,

인간적으로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오랜 기간을 사랑하며 맞춰온 배우자와도 수많은 갈등이 생기는데, 다른 사람들하고의 업무는 오죽하겠는가.


때마침 그와 나 모두와 사이가 각별한 S가 휴가를 떠나기 전 셋이 한 번 만나는 저녁자리를 마련했다.

나와 I 모두 서로는 느끼고 있었지만 주변에 내색은 하지 않았기에 S는 미묘하게 냉랭한 기류를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가 우리 둘을 초대하지 않았다면, I와의 관계는 점점 더 얼어붙었을지도 모른다.

얼굴을 보고 오랜 시간 함께 이야기를 차근차근 나누니 얼어붙었던 마음들도 조금씩 녹아내렸다.


그도 현 부서에서 인간관계와 쏟아지는 또 다른 업무들로 많은 고충을 겪고 있었다.

그의 업무 이야기 중 하나로 나와도 관련 있던 사업기획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 당시에는 나 자신이 굉장히 초라하게 느껴졌었다.'라고 우회적으로 그에게 서운함을 표현했다.

자리 막판에 거나하게 취한 그가 나에게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형 나한테 삐졌었죠? 그러지 마요. 내가 형 얼마나 좋아하는데!"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다.

지금의 상황에 대한 인식도, 처해있는 환경도.

서로가 완벽하게 맞춘다는 것은 일방의 완전한 포기나 희생이 수반되지 않는 한 애초부터 불가한 일이다.


한 겨울 두꺼운 얼음이 뒤덮어도 그 아래 깊은 곳에 물은 흐른다.

계절이 지나면 찾아올 봄바람은 두꺼운 얼음을 녹이고 또다시 조금씩 물길을 낼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흐르는 깊은 신뢰가 남아있으면 된다.


사랑하고 이해하며,
그렇게 맞춰 살아가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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