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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PAPA Jul 29. 2023

고민을 덜어주는 사람

H

운칠기삼(三).

운이 7할이고 재주(노력이나 능력)가 3할이라는 말.

예전에는 이 말 굉장한 거부감이 들었다.

여기에서의 운을 '운명론'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서 세상일이 다 정해져 있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거나 처음부터 잘못 방향성을 접근하여 안 되는 경우들도 있고, 반대로 예상치도 못했는데 의외의 기회가 올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영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몇 해 전 주변의 권유에 시작한 골프에 한동안 매진한 적이 있다.

처음 시작할 때 세게 치려하지 말고 '힘을 빼고' 가볍게 스윙해야 공이 더 잘 나간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었다.

어떻게 세게 치지 않는데 공이 더 멀리 나간다는 건지 내 몸과 마음은  따로 놀며 쉬이 적응하지 못했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 나 또한 나보다 늦게 입문한 사람들을 보며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에 글을 계속해서 쓰다 보니 느끼는 것이지만 어떤 글은 아무리 고민해도 생각보다 안 써질 때도 있고,

정말 공들여 썼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봤을 때 오히려 불만족스럽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문득 떠오른 소재를 한번 써봤는데 술술 써지는 경우도 있다.


모든 일도 그렇지만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나를 싫어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안 맞다고 생각하거나 별 생각이 없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각별해지는 경우도 많다.

H선배도 그런 점에서 나와 성향은 전혀 맞지 않지만 입사 후 10년을 각별하게 지내고 있는 사이다.




그는 나보다 반 앞서 같은 부서로 입사한 한 살 많은 형이었다.

사실 그 또한 갓 신입사원 티를 벗고 있는 신입사원이었지만, 말 그대로 완전 신입사원이었던 당시 내게는 반년이나 조직에서 먼저 생활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엄청 의지가 되고 대단해 보였다.

업무상 맡고 있던 파트는 달랐지만 같은 부서에서 같은 프로젝트들을 진행한다는 공통점과 비슷한 나이대의 동성(性)이라는 점이 우리의 결속을 강화시켜 주었다.

사무직이지만 가끔씩 A4용지 등 사무용품을 수령한다든지 하는 몸을 써야 하는 일은 어김없이 막내 남자 신입사원 둘의 몫이었다.

입사 초 몇 달 동안 의 빠른 적응을 돕기 위한 일환으로 그가 참석하는 외근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는 꼭 같이 다니도록 지시를 받기도 했다.

덕분에 다른 업무에 대해서도 깨너머로나마 경험해 볼 수 있었고, 와도 둘이서만 있을 때는 호형호제하게 될 정도로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실제로 둘이 다니면 이런 별명을 듣기도 했다]


앞서 말한 대로 둘의 성격은 상당히 상이했다.

나는 뭐든 맡으면 잘 해내야 한다는 욕심과 독기로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편이었는데,

그는 좋게 말하면 대범하고 나쁘게 말하면 굉장히 시니컬한 성격이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붙잡고 있냐. 얼른 대충 끝내."


 나에게 자주 이런 어투로 말하고는 했다.

그렇다고 그가 업무를 실제로 대충 하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뭔가 그는 늘 쉽게 쉽게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곤 했다.

그가 넓게 숲을 보고 방향을 잡아 빠르게 움직이 스타일이라면,

나는 숲 속을 달려가더라도 지나치는 나무들을 한 번씩은 들여다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성격은 달랐지만 회사 내외에서 그와 함께한 일들의 합도 잘 맞았고 그를 통해 가 보지 못했던 시선들에 대해서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돌아보면 서로 다른 성장 환경 등도 분명 성격 형성에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두 분 모두 공무원이신 부모님 슬하에서 외동아들로 서울의 유명 학군지에서 자란 그는 흔히 말하는 중산층으로 여유롭게 자란 사람이었다.

생각이 없거나 대책이 없는 것은 분명 아니었지만 뭔가 그를 보면 알 수 없는 여유로운 태도가 느껴졌다.


상대적으로는 그에 비해 나는 무슨 일이든 절박함이나 진지함이 강했다.

타고난 기질일 수도 있고 나만의 성장배경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섯 살 무렵 아버지가 회사를 그만두시고 작은 사업을 시작하시며 어머니도 잠시 부업으로 일을 나가셔야 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나 스스로와 더 어린 여동생을 오빠로서 챙겨야만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

남아있는 그때의 기억들이 지금의 나와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입사 후 몇 해 뒤 그가 영업 조직으로 부서를 옮기면서 업무적으로는 멀어졌지만,

서로 회사 내외부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도와주며 깊은 관계를 이어 나갔다.


"뭘 그렇게 스트레스받아. 회사일 적당히 하고 이것 좀 봐라."


그는 늘 월급은 종잣돈(Seed Money)라고 표현하며 재테크에 관심이 아주 많았고,

그 덕분에 나도 직장인으로서의 재테크에 조금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

이익을 본 적도 있고, 큰 손해를 본 적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내 성향에 맞는 투자가 무엇인지 분별하고 해당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며 시야가 넓어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재테크에 대한 관심은 몇 년 전 회사 생활에 한 차례 심한 번아웃과 매너리즘이 왔을 때 스트레스 해소구이자 활로가 되어주었다.

오히려 관심을 회사밖으로 돌리자 회사 생활도 더 효율적으로 하게 되는 경험도 해봤다.

회사의 일과 시간 동안 빠르게 일을 끝내야만 퇴근 후의 또 다른 삶에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늘 냉소적인 말투지만 애정 어린 조언을 아꼈던 그.

하지만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고 정작 본인은 재작년에 바뀐 부서장 밑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다가 육아와 건강상의 이유로 돌연 휴직을 결심하고 떠났다.

해당 부서장이 금방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을 보면 삼자로서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당사자인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지난 주말, 그의 집 근처에서 결혼식이 있어 끝나고 잠시 커피 한잔을 하기로 했다.


"애 보느라 정신없다. 육아가 쉽지 않네."


우리 딸 보다 두 살 어린 그의 딸.

예전에 육아의 고충을 토로할 때는 애들은 알아서 큰다더니 막상 본인이 휴직 후 육아에 매진해 보니 쉽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그 나름대로 본인의 미래에 대해서도 올해의 휴직기간 동안 여러 가지 준비들을 병행하고 있었다.

최근의 나의 근황을 묻다가 준비한 여러 가지 일들이 잘 되지 못했다는 대답에 그는 말했다.


"인생 운구기일(運九技一)이라 생각하면 마음 편해.

너무 절박해하지 말고 편히 생각해."


그 특유의 시니컬한 말투였지만 왠지 모를 큰 위안이 되었고, 내 안에도 뭔가 마음의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생지사 운구기일까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새옹지마 확실한 것 같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수밖에.

그리고 이 정도면 운까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인복은 많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에 감사하게 된다.

 고민을 들어주고 덜어주는 주변의 사람들.

나 또한 그들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예전부터 마음에 담고 좋아하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란 말.

사실은 그 둘 말의 내포된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란 생각문득 든다.

마침 오랫동안 기다려온 휴가.

지친 심신을 달래며 지난날들의 고민은 내려놓고 새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적당히 힘을 빼고 묵묵히 갈 길을 가다 보면
가끔씩은 운도 따라와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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