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잠화

by 여운

남산 둘레길에 올랐다가 시원한 향이 나는 꽃냄새를 맡았다.

이름이 뭔지 아냐고 묻는 그에게 나는 글쎄, 하는 미적지근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처음 보는 꽃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함께 영화를 보다가 한 대사가 스쳐 지나갔다.


“여자가 꽃 이름을 알려주면 남자는 평생 그 꽃을 볼 때마다 그 여자 생각을 하게 된대.”


나는 꼭 그 꽃 이름을 알아내고 싶었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끝에 꽃 사진을 넣으면 이름을 알려주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갤러리 속을 훑으며 당시 찍었던 사진을 넣어 그 꽃 이름을 알아냈다.

옥잠화. 모양이 왕비의 비녀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밤에 피고, 낮에 지는 꽃.


그리고 늦은 밤 전화로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 꽃 이름, 옥잠화래. 옥자마? 아니 옥. 잠. 화.

괜히 스피커를 살짝 가리고,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긴장하고 있는 게 들키기 싫었다.

그는 영화의 그 장면을, 대사를 기억할까.


그럼 나는 저 꽃 볼 때마다 네가 생각나겠네.

설렘과, 약간의 졸음이 묻은 목소리로 그가 천천히 말했다.


바라던 대답이 나오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내가 의도한 게 이거거든.

그 후로 몇 분간 더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다, 점점 낮아지고 느려지는 말들에 취해 잠이 들었다.


옥잠화의 꽃말은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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