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시절 동기와 약속이 있어서 시내에 나갔다.
한 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하고, 음식을 받는데 직원분 얼굴이 너무 낯이 익었다.
스치듯 17살의 동창 얼굴이 떠올랐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대로였다.
하나로 질끈 올려 묶은 긴 머리에 빽빽이 채워진 앞머리.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톤까지.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눈만으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17살 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경은에게 연락을 했다.
그게 벌써 9년 전이네. 경은의 말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직 17살의 여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이야기해보니 내가 몇 반이었는지 조차 가물했다.
경은이 몇 가지 에피소드들을 꺼내 주자 기억의 조각들이 듬성듬성 채워져 갔다.
열일곱에 내가 뭘 했더라.
통화를 끊고 침대에 누워 17, 17을 되뇌어봤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였다. 17살에 가장 인생을 재밌게 살았었고,
1학년 때 7반이었으며 17학번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심지어는 내 노트북 비밀번호까지
17이라는 숫자의 조합이었다. 17171771. 삐삐 번호로 사랑해.
맞다. 이래서 내가 17을 좋아했었지.
이제 기억은 점점 희미해질 일만 남았을 텐데. 마음이 아파졌다.
다음에 보면 내가 그 친구를 기억할 수 있을까.
요즘도 시내에 나가면 괜히 그 식당 쪽을 흘깃 본다. 만약 다음에도 그 친구가 있다면,
꼭 인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흩어져가는 열일곱의 기억을 되살려줘서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