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병

by 여운

20대 초반의 나는 한창 예술에 취해있었다.

원하던 예술대학에도 진학했겠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다 너무나 멋있어 보였고 그 집단에 속해 있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용의 꼬리가 될 것이냐, 뱀의 머리가 될 것이냐

양자택일을 묻는 질문에 나는 당당하게

용의 머리가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살면서 유일하게 자존감이 넘쳤던 시기라

그때의 나를 귀엽게 봐주며 넘기고 싶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오만해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매주 한 편씩 영화를 보러 가고, 합평을 하고,

무대를 올린다는 이유로 새벽까지 학교에 남아

동이 틀 때까지 잡담이 섞인 회의도 하며 그렇게 청춘을 보냈다.


지금의 나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예술을 하진 않는다.

배 곯아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상황이 눈에 닥쳐보니 그게 참, 쉽지 않더라.


그래도 내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몇 안 되는 순간들 중 하나이기에

그 시절을 단순한 00병이라는 이름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

병이란 건 아픈건데, 그 때의 난 너무나 행복했으니까.


세상의 파도를 거쳐 와 잔뜩 겁을 집어 먹은 내가,

그 시절의 패기와 호기로 가득 차있던 나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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