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굳이 굳이 낭만 찾기

원정 야구관람

by 이와테현와규
SNS에서 <낭만을 찾으려면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라는 글을 봤다. 예를 들면 굳이 굳이 조개구이를 먹으러 서울사람이 인천으로 가는 낭만?


이 글을 발견한 나는 때마침 부산에서 대구로 야구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3교대 근무자인 나는 그날 굳이 굳이 나이트 근무가 끝나고 3시간의 선잠을 잔 뒤에 비몽사몽 한 상태로 준비를 하고 기차를 타러 신해운대역으로 향했다. 14시가량에 출발하는 신해운대발 동대구행 열차에 몸을 싣고 대구로 향하는 길 잠이 덜 깬 나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잠깐씩 조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동대구역에 도착을 했고, 그곳에서 나의 야구친구(야친)인 현희를 만났다. 우리는 삼성 라이온즈파크(라팍)로 향했다.


"근데 라팍은 원정팀이 1루래. 특이하다 그지?"

티켓을 예매하면서 발견한 라팍의 특이점. 야구는 집주인인 홈팀과 손님인 원정팀이 있는데, 통상적으로 1루는 홈팀이 자리하고 3루는 원정팀이 자리한다. 이상하게 3루는 만석이고 1루는 자리가 비어 알아보니 그러한 특이점이 있었다고 한다. 1루가 땡볕에 노출되어 있고 3루가 그늘이 잘 형성되어 있어서라고 하는데 설마 그런 갑질(?)을 할까 하며 입장했다.

오우, 1루의 절반 이상이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특히 우리 자리는 해와 1대 1로 대면하는 곳이었다. 그 덕에 체력은 금방 고갈이 되고 응원이고 뭐고 간에 피부가 미디엄으로 구워지는 기분을 느끼며 '다시는 여기 안 와.'라는 말만 연신 뱉어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악명 높은 대프리카에서 입장부터 복잡한 라팍에 그것도 제일 뜨거운 자리에 앉아서 이런 고생을 하는지.

17시에 시작한 경기가 18시 30분이 지나가면서 해가 서쪽으로 지기 시작했고 그제야 기온이 낮아지는 것이 느껴지면서 기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선수들도 지쳤던 탓인지 5회까지는 0:0으로 동점인 상황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응원을 하기 시작했고, 롯데가 2점을 먼저 득점함을 시작으로 삼성과 엎고 뒤집 고를 반복하면서 9회가 되었고 가까스로 동점이 되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이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전하게 이기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주고받는 심장의 쫄깃함이 있어야 이게 야구지.'

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경기를 관람하고 싶은 마음에 기차표를 변경했다. 변경하고 나니까 지는 것은 무슨 일? 결국은 10회 때 강민호선수의 끝내기 홈런으로 인해 6:4로 졌다. 너무나도 황당했다. 황당은 했지만 일방적으로 진 것이 아니기에 아쉽지 않았고, 귀찮음과 지침을 감수하고 온 것이 아깝지 않았다. 굳이 대구까지 와서 야구를 봐서 결과적으로 재밌었다.


아쉬운 마음과 그래도 즐거웠던 기분을 안고 우리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는 길에 봤던 낭만에 대한 이야기를 현희와 나눴다.

"음, 나는 말이야 낭만에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하루는 내가 디저트를 먹으러 카페에 갔어. 먹고 싶은 것은 2가지인데, 둘 다는 먹을 수가 없고 먹다가 남겨서 포장하면 매장에서 먹던 그 맛이 안 난단 말이야? 그러면 1가지를 골라서 맛있게 먹고 가야 하는데, 이때 2개를 다 먹지 못하는 내 작은 위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1가지만 골라야 해서 '뭘 고르지?' 하는 두근거림 같은 거? 관점의 차이 그리고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심적 여유인데 이것 또한 나한테는 낭만이야."

현희다운 비유에 꺄르륵 웃었다.


낭만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론은 마지막에 행복했음이 아닐까? 우리는 다음 각자의 낭만을 찾으러 일상으로 돌아갔다.

부산에서는 먹지 않는 노상 컵라면을 굳이 경산역에서 우리의 열차를 기다리며 먹는 것도 꽤 낭만적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