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샬롬. 에이레네.
죽음 앞에 있는 사람의 싸늘한 체온은 엄마의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짐작케했다.
그 시간 내게 기적과 같은 따뜻한 위로가 임했다.
하나님이 엄마를 꽉 안고 있다는 이 평안함에, “엄마. 믿을 수 없는데, 너무 감사해. 하나님이 엄마를 안아주고 계시고, 우리는 분명 천국에서 다시 만날 거야.” 임종의 자리에서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지금도 믿을 수 없다. 상주인 나는 조문 온 내 친구들을 앉혀놓고, 말할 수 없는 이 평안함에 관해 얘기했다. 우는 조문객들을 내가 위로하는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다. 누군가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라고 했지만, 15년 지난 오늘도 분명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평안은 인생을 바꿀만큼 큰 능력이 있음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걱정했을 존재. 외동딸인 나였다.
교회 모든 어른들이 좋아하셨던 남학생이 나의 남자친구가 되어, 이 친구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삶의 마지막을 준비했을 것이다. 참고로, 내가 다른 친구와 사귈 때도 “걔말고 이 친구같은 사람 만나서 교제해”라고 했었는데, 이 친구가 내 남자친구가 되었으니 내심 얼마나 좋았을까. 어른들 보는 눈은 무시 못하는 법이니까. 다만, 결혼하기도 전에 예비 장모님의 유언을 듣게 된 이 친구의 마음은 꽤나 무겁고 부담스러웠겠지.
평안 가운데 담담했고 장례 내내 씩씩했는데, 마지막 발인 날 눈물이 쏟아졌다. 화장이 끝나고 장지로 향하는 우리의 대형버스 차 넘버 9021. 9월 21일은 이 친구와 내가 사귀기 시작한 날이었다. 너무 많은 의미부여 일수도 있지만, 나와 이 친구는 엄마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며, 앞으로 함께 할 날들을 다짐하고 위로했다. 당시 섬에서 직업군인으로 근무했던 남자친구는 예비 장모님의 위독함을 전해듣고 상사에게 무릎까지 꿇고 어렵게 휴가를 받아 나오는 길에 임종 소식을 전해 들었다. 상주 자리에 있지 못해주는 그는 속상해했지만, 장례를 치루는 내내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존재가 있음에 감사했다.
배를 타고 다시 복귀해야 했는데, 기적같이 날씨가 좋지않아 배가 뜨지 않았다. 그것도 사흘 동안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였다. 다시 떨어져 각자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같은 시간이었다.
그 해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명. 우리엄마, 남자친구가 내 곁에 없는 외로운 시간이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늘 통화했던 엄마의 전화번호를 누를 수 없게 된 후, 나의 일상의 허전함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말씀, 기도, 예배였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광야의 시간이었다.
평안 가운데서도 엄마가 유난히 사무치게 보고싶은 날들이 있었다. 진지하게 ‘꿈에서라도 엄마 보고 싶어요’ 라는 나의 기도를 무시하지 않으셨다. 천국에 살고있는 엄마가 잠시 이 땅에 내려와 나를 만났고, 엄청 높은 곳에 있는 천국에서도 이 땅이 보인다며 그곳에서 아빠와 나를 보며 응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너무 행복하다며 웃는 엄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 행복감을 전달받으며 꿈을 깼다. 엄마 보고 싶다고 눈물로 베개를 이루며 잠든 그날도 하나님은 위로를 선물해 주셨다. 천국의 엄마와 만나는 3번의 꿈은 내 마음을 가득채운 놀라운 선물이었다.
우린, 친구에게도 말 못하는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같은 모녀였다. 가장 사랑했고 의지했던 존재가 내 삶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나의 전부가 없어지는 일이었고, 가장 큰 상실의 슬픔이었다. 그래서인지 때때마다 위로해주시는 그 사랑이 나의 삶 가운데 더욱 깊어져갔다.
상실의 크기보다 더 큰 그분의 사랑과 위로로 나의 마음은 늘 따뜻하게 덮여 있었다.
그 무엇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바다의 파도를 통해서까지 우리에게 반드시 선물을 주시는 분이시니까. 힘들고 아플때마다 더 큰 날개로 덮어주시는 그 사랑에 오늘도, 매일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