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생일선물
나의 백엄마는 몸이 약했다.
초등학교 일기에 엄마가 아파 병원에 갔다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엄마는 나를 낳고 그 붓기가 빠지지 않아 살집있는 아줌마가 되었다. 그 살은 다부진 근육이 아닌 흐물거리는 말랑한 것이었다. 간이 좋지 않아 금방 피로를 느끼고, 운동과 활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침착하고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 특히, 아빠로 인한 스트레스는 엄마에게 제일 독약이었을 것이다. 만병의 근원.
내가 25살 되는 그 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에어컨 없는 우리집에서 열대야를 견디는 방법은 세숫대야에 얼음가득 찬물을 받아 발을 담그고 자는 것이었다. 좋은 아이디어라며 엄마랑 신나게 웃으며 잠들었다. 체온 1도가 암 환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까맣게도 모른채.
더위가 주춤해질 즈음 엄마는 통증을 호소했다. 소변이 잘 나오지않고 산통이 느껴진다 했다. 동네병원에 가서 호스로 소변을 뽑았는데, 많은 양에 놀랐고, 콜라색같이 진한 소변에 뭔가 잘못됨을 짐작했다. 대장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큰 병원을 가게 되었고, 직장암이 간과 폐까지 전위된 말기암 상태라고 듣게 되었다.
항암치료를 하면 1년, 안하면 3~6개월이라는 갑작스런 시한부 삶이 되어버렸다.
기초체력도 약했던 엄마에게 항암치료는 너무나 힘들고 버거웠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하기 일쑤고, 약한 엄마는 더 기운이 없어졌다. 더이상의 항암을 포기하고 엄마는 기도원에 가고 싶어했다. 약과 몰핀패치를 처방받아 우리가족은 기도원으로 향했다. 엄마의 시한부가 시작되어서야 바깥생활을 멈추고 들어온 아빠로 몇년만인지 온가족이 합체 되었다. 엄마는 앉아있기도 힘들어 누워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컨디션임에도 하루에 3-4번의 예배를 참석했고, 외에 시간엔 아빠랑 밤나무 밑에가서 밤도 줍고 그들만의 데이트 시간도 보냈다.
엄마는 아빠를 참 많이 좋아했다. 남자가 여자를 더 많이 사랑해야 결혼생활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부모님은 반대였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한 기도원에서의 시간들에 많이 행복해했던 것 같다. 아빠는 엄마가 얘기하는 그 순간에도 손바닥에 무슨 한자같은걸 쓰며 딴 생각하기 일쑤였지만.
더이상 몰핀으로도 견딜 수 없는 컨디션이 되어 찾아간 대형병원에서는 엄마가 너무 악화된 상태라 병실 입원이 불가하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퇴원을 강행하는 탓에 갈 곳없이 집으로 왔다.
엄마는 거의 의식없는 상태였고, 잠깐 의식이 돌아온 찰나의 순간엔 "아파.너무 아파" 울면서 절규했다. 진통제조차 스스로 넘기지 못해 아빠가 입으로 넣어줄 수 밖에 없었고, 의식없이 동공은 흐려지고 초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시 동네 대학병원 응급실을 향했다. 몸도 차가워지기 시작한 의식없는 엄마를 실은 침대는 뇌검사 실로 들어갔고 그 와중 검사를 진행했다.
그날 밤을 뜬 눈으로 지새며, 난 엄마에게 우리의 삶을 추억하며 행복한 모든 순간들을 속삭였다. 젊은 남녀커플 가득한 선유도 공원에서 엄마와 함께 우린 <백조커플>이라며 꽃잎 흩날리며 재밌게 놀며 함께한 많은 시간들을..
그리고 이 순간 절대 기억해야 하는 이름 "예수님"만 기억하고 붙잡으라고 얘기하고 계속 얘기했다. 죽음앞에 유일한 소망되는 것이 그 뿐이었다.
싸늘하게 차가워지는 엄마의 몸을 어루만지며 계속 속삭였다.
엄마.
그 긴 밤을 보낸 후 다음날 오전. 드라마같이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초점이 돌아온 엄마는 나에게 뭔가의 말을 했지. 산소호흡기를 껴서 정확히 못 들었지만, 동일한 음절이었구. 반복되게 뭔가를 얘기했던 엄마의 외침이 뭔지 나중에서야 아빠랑 얘기하다보니 알게되었어.
아빠가 그 자리에 없었더라고. 나는 울면서 엄마한테 얘기하느라 정신 없었는데, 아빠가 밖에 있었더라고.
엄마의 마지막 그 순간. 아빠 찾았던 거 맞지? 엄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빠가 마지막까지 엄마 아프게 했더라.
암이 간과 폐에 전위될 때까지 증상과 고통이 왜 없었겠어. 들어놓은 보험 하나 없던 우리집 어려운 형편을 보며 병원 갈 용기를 못 가졌던거지?
그래도 이건 너무 미련한거잖아. 무조건 참고 인내하는게 정답은 아니잖아. 배려하는 따듯한 성품 그대로 가족한테 피해주지 않고 투병생활 2달도 안되어 천국으로 가버린 엄마.
부모의 사랑이 원래 그런거라지만 엄마는 정말 끝까지 이게 뭐냐구. 이게 사랑이라면 너무 무겁고 아파서 내가 어떻게 웃으며 엄마의 사랑을 기억하고 추억하겠어. 엄마의 사랑은 특별히 내게 더 위대하고 가슴이 애려서 지금도 직면하려면 용기가 필요해.
25살의 나. 52살의 엄마.
엄마가 그 사투의 마지막 밤을 보낸 나의 생일 날. 견디고 견뎌 준 덕분에 매해 내 생일엔 엄마가 없다는 슬픔보다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딸 생일을 지켜주려 분투한 엄마의 사랑을 기억하며 온기 가득하고 사랑 넘치는 생일을 보내고 있어.
정말 지독한 사랑이야. 대체 자식이 뭐길래. 나도 엄마처럼 사랑하고 희생할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고 존경했던 나의 백 엄마.
엄마의 따듯한 성격과 인자한 성품을 닮고, 힘들고 아팠던 한 평생의 삶을 믿음으로 견뎌낸 위대함을 닮아가려 노력하며 살아갈께. 하지만 그 인내와 사랑이 내 자신을 해치는 그 미련함까지는 배우지 않을꺼야. 조금만 아파도 병원가서 검사 받을거고, 신랑한테 엄살도 부리면서 내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래. 같은 여자로써 엄마의 삶을 생각하면 너무 아프고 애려서 회피하고 싶어. 내가 닳아 없어질정도로 미련하게 살아가지 않을께. 삶으로 직접 알려주지 않아도 그렇게 살 수 있는데 너무 아픔 가득한 가르침이었네. 유쾌하고 즐겁게 웃으며 살아갈께. 엄마 몫까지 두배 세배로 행복하게 사랑받으며 살아갈께.
엄마. 고맙고 미안해.